[취재수첩] 외환보유액 낙관론만 펴는 정부·한은

스위스·러시아 비교 타당한지 의문
국제금융기구 권고에도 못 미쳐

조미현 경제부 기자
“외환보유액은 주요국 대비 상대적으로 소폭 감소했습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우리 경제는 비교적 양호한 대외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날 한국의 외채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단기외채 비율이 외환보유액 감소로 10년 만에 40%가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진 데 대한 입장 표명이었다. 한국은행 역시 “달러 강세로 신흥국들이 공통으로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며 외환보유액 감소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정부와 한은의 설명은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정확하게 맞는 말도 아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6월 말 기준)은 지난해 말 대비 5.4% 줄었다. 방 차관이 비교 대상으로 내세운 주요국인 스위스(-13.3%), 러시아(-7.4%), 인도(-7.0%)보다는 양호한 수준이다. 하지만 스위스는 미국과 상시적인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외환보유액 감소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는 현재 전쟁을 치르는 특수한 상황이다. 이들 국가보다 한국이 양호하다는 정부 설명이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이 기간 대만은 오히려 외환보유액이 6억달러 늘었다.

최근 외환보유액 감소 폭은 1997년 외환위기(-39.4%)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24.1%)에 비해 작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 경제가 벼랑 끝에 내몰렸던 극단적인 상황과 비교하며 국민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건 무리가 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0월(4692억달러)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줄곧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이 3억3000만달러 늘었다고 하지만, 0.07% 증가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물론 어느 수준의 외환보유액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정부 설명대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294억달러 많은 수준이다. 한국은 외환보유액으로 세계 9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IMF나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금융기구가 권고하는 적정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IMF 권고 최대치 기준 2073억달러(-47.3%), BIS 기준 3456억달러(-78.9%) 각각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보유액 감소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건 과거 위기를 경험한 국민적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위기감을 부추길 필요는 없지만, 정부의 지나친 낙관론도 국민의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듣기 좋은 말보다 외환보유액 급감을 막는 안전판 마련에 적극 나서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