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에 맞서 500조원 투입…美 IRA 세부 내용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2030년까지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에 3690억달러(약 500조원)가 투자된다. 미국에서 단일 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량을 기존 대비 40%를 감축하겠다는 미국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지난 8월 16일 시행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을 두 축으로 삼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청정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 안보 역량을 높이는 데도 비중을 둔다는 뜻이다. 러·우전쟁과 전 세계적 기상이변으로 올 들어 화석연료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에너지 공급난이 심각해진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동시 고려

IRA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부분의 주요 골자는 5가지다. 에너지 비용 절감, 에너지 안보 강화, 탈탄소화, 공동체 투자, 회복 가능한 교외 공동체 지원 등이다.

◆ 에너지 비용 절감: IRA에는 90억 달러 규모 에너지 환급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저소득층 가계의 에너지 효율화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가계 에너지 효율화를 지원하기 위한 10억 달러 규모 보조금도 별도로 운영한다. 청정에너지 도입, 열펌프 운영, 옥상 태양광 설치, 수력 난방 등을 가정에 도입할 경우 10년간 세제 혜택을 지원한다. 미국산 전기차에 7500달러 보조금을 세액공제 형태로 제공하는 방안도 에너지 비용 절감 방안의 일환이다.◆ 에너지 안보 강화: 에너지 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미 연방정부는 태양전지판, 풍력발전, 배터리 생산과 핵심 광물 공정 등의 가속화에 300억 달러 규모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전기차, 풍력터빈, 태양광 패널 등과 관련한 청정 기술 기반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데에는 100억 달러를 할당했다. 국방 생산 물자로 열펌프, 광물 공정 개발을 지원하는 데에도 5억 달러를 추가로 투입한다. 기존 자동차 공장을 친환경차 생산시설로 개조하는 데에는 20억 달러 규모 보조금을, 신규 친환경차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데에는 최대 200억 달러 규모 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했다.
◆ 탈탄소화: 탈탄소화는 특정 산업이 아닌 ‘경제 전 분야’에서의 실현이 목표다. 산업시설에서 전력 등의 에너지원을 친환경에너지로 바꾸는 데 300억 달러 규모 대출·보조금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했다. 특히 화학, 철강, 시멘트 등 탄소 다배출 업종에서 탄소배출 절감 시설을 구축하는 데 60억 달러 규모 세제 혜택이나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미국 우정사업본부 등 정부 운영시설에서 친환경 교통수단·기술 등을 도입하기 위해 90억 달러 규모의 정부 조달 사업도 추진한다.

◆ 공동체 투자: 친환경과 에너지 안보에서 소외될 수 있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투자안이 마련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3가지 프로젝트에 각각 30억 달러가 투입된다. 소외 지역의 공해와 기후변화, 공공보건 등의 문제를 다루는 커뮤니티센터를 구축하는 프로젝트, 소외 지역 개발과 공동체 연대 활동 등 지원 프로젝트, 항만 대기오염 프로젝트 등이 지원 대상이다.◆ 회복 가능한 교외 공동체 지원: 소위 ‘굴뚝 산업’이 아닌 업종에 대한 탈탄소 지원 방안도 IRA에 담겼다. 청정 스마트 농업 도입 지원에 200억 달러 이상을, 폭염과 가뭄으로 빈번해진 산불을 막기 위해 임업 여건을 개선하는 데에도 50억 달러 이상 지원하기로 했다. 바이오연료와 지속 가능한 항공연료 도입 등을 위한 생산 지원, 기반시설 마련 등에도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생물권 다양화를 위해 해안생태계 보호에도 260억 달러를 안배했다.

긍정 평가 속 법안 미비 우려도

IRA 시행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미칠 영향이 긍정적일 것이라는 데는 이견을 찾기 힘들다. 우선 ‘E’에 해당하는 내용인 온실가스 감축에 이 법이 크게 기여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에너지 전문 연구기관인 에너지이노베이션은 “법 시행으로 인한 연간 온실가스 감축량이 2030년 최대 11억5000만 톤에 이를 것”이라며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도 달성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S’ 분야에선 지역공동체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관련 업계에선 정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통해 사업 확장에 속도가 붙으면서 일자리 창출 효과도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정치경제연구소는 법 시행으로 향후 10년간 친환경에너지, 에너지 효율화, 전기차 등의 분야에서 일자리 900만 개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IRA의 맹점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제조업과 에너지업계 위주로 초점을 맞추다 보니 농·축산업 부문에선 탈탄소 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월 13일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는 “식품 산업은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11%를 차지하지만 IRA는 육류, 유제품 등의 생산 문제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축산업에서 나오는 메탄, 아산화질소 등의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 미비할 뿐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고려도 부족했다는 주장이다. 바이오연료 생산을 장려하지만,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탄소배출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생에너지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도입한 인센티브가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경제 매체 포브스는 풍력·태양광발전용으로 공공 부지를 임차하려는 에너지 사업자에게 일정 크기의 토지를 석유·가스 시추용으로도 공급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해상풍력발전의 경우에도 비슷한 투자 유인책이 적용됐다. 미국 친환경 비영리단체인 와일드니스 소사이어티는 “시추가 이뤄질 공공 토지를 보호하기 위한 자금 마련 방안도 빠졌다”며 “알래스카 등 북극권 야생동물에 대한 보호 방안도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이주현 한국경제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