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의 불’ 지속 가능 항공유…국내 공급사 ‘전무’

글로벌 항공업계는 지속가능한 항공연료인 SAF 사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는 연료 공급망이 없으며, 관련 대책도 미흡한 상태다. 글로벌 규제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국내 공급망 확보와 인센티브 도입, 고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올해부터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편은 지속 가능한 항공연료(Sustainable Aviation Fuel, SAF)를 1% 이상 구매하거나 SAF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항공사에 가해지는 압박이 탄소배출권 외에도 또 하나 늘어난 셈이다.SAF는 기존 항공유 대비 최대 80%까지 탄소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어 주목받는 차세대 항공연료다. 기술적으로도 효율성이 높다. 기존 항공기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현재 항공유에 최대 50%까지 혼합 사용해도 별도의 절차 없이 바로 사용 가능하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미래의 항공기는 중단거리까지는 친환경에너지로 움직이는 전기·수소 항공기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장거리 비행의 경우 기존 항공기를 대체할 만큼 안전한 항공기를 개발하는 데 기술적 어려움이 따른다. 온실가스의 주범은 내연기관 자체가 아니라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SAF 사용이 가장 빠르고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IATA는 선제적으로 기존 항공기에 SAF를 활용하는 것으로 2050년 넷제로(net zero) 방안을 발표하고, 업계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SAF 혼합 의무화 확산SAF는 곡물이나 해조류를 발효시켜 만드는 방식과 동·식물성 지방을 추출한 후 화학처리해 만드는 방식, 물을 전기분해한 후 이산화탄소를 결합해 만드는 ‘e-fuel’ 등으로 구분한다. 원료와 생산 방식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는 기존 항공유 대비 2배에서 5배 비싼 가격에 유통되고 있다.

항공기 운영에서 가장 큰 비용은 유류비가 차지한다. SAF 사용에 대해 항공사들이 주저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해외에서는 SAF 혼합 사용량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는 추세다.

SAF 사용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EU다. EU는 2025년부터 항공유 공급사는 SAF를 2% 이상 혼합해 생산해야 하며, 2050년까지는 85%(EU 집행위원회 원안 63%)까지 그 비율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2050년까지 민간 항공기 기준 SAF 100%를 달성해야 한다고 공표한 바 있다. 이렇듯 SAF 사용에 대한 의무화는 전 세계적으로 2025년을 기점으로 차츰 확대될 전망이다. 국제노선을 운행하는 국내 항공사가 모두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그러면 국내의 SAF 도입 현황과 과제는 무엇일까. 가장 시급한 문제는 SAF 공급 문제다. 현재 국내에서는 SAF 생산 및 공급이 가능한 곳은 전무한 상태다. SAF 연료 의무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연료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현장 종사자들도 국내 SAF의 물리적·제도적 인프라가 모두 미숙한 상태라고 평가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제도의 확립이다. 먼저 SAF가 석유 및 석유 대체 연료 사업법에 석유 대체 연료로 지정되어야 하며,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에 재생에너지로 포함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SAF 생산 시 생산 원료에 대한 엄격한 인증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실제 EU의 운송위원회에서는 팜오일을 SAF 원료 인증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팜오일이 산림파괴 및 아동노동 착취로 생산되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원료라는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SAF의 원료는 SAF 원가와 직결되므로 가장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SAF를 사용하는 원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국내에서 SAF를 생산하거나 유통할 경우 이 같은 점을 고려해 공급망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수급 불안정 해소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SAF 혼합 사용이 규제화된 후 수요에 속도가 붙으면 수급이 불안정해질 확률이 높다. 세계적으로도 SAF 테스트 비행 및 자발적 사용을 통해 수요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지만, 이에 비해 공급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비싼 비용을 치르더라도 생산량이 부족해 구매 자체도 어렵다.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지 않는 수급 불안정은 SAF 가격 인상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SAF 사용에 따른 인센티브 또한 빠질 수 없다. 미국의 경우 SAF 연료 이용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영국 히스로공항은 SAF 구매 비용의 최대 50%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고객에 그린 요금 선택권 주기도

항공사 역시 SAF 도입에 앞서 시장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SAF 사용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고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발적 탄소 상쇄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독일 루프트한자항공의 경우 일반 이코노미 요금제보다 가격이 높은 이코노미 그린 요금제를 선택지로 제공한다. 고객이 이코노미 그린 요금제를 선택할 경우 그 차액만큼 항공사가 SAF를 구매하거나 기후 보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따라서 본인의 비행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게 만들고, 추가적으로 마일리지와 인증서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에어뉴질랜드, 싱가포르항공, 캐세이퍼시픽항공, 터키항공의 경우 별도의 마이크로사이트를 통해 고객이 항공편 이용을 통해 발생한 탄소량을 직접 계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이 원한다면 탄소 상쇄가 가능한 활동에 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열어둔 것이다.

또 SAF 시장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만큼 이해관계자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국내 SAF가 생산된 이후에는 테스트 비행, SAF 사용 인증제 도입, 국내 탄소배출권 계산 시 SAF 사용량 반영 그리고 유류할증료에 대한 SAF 가격 연동 조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럿 남아 있다. 더 지속 가능한 여행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사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항공운송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의 약 3%를 차지한다. 탄소중립을 위한 SAF 사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으로 다가온다. 이는 항공사 하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여러 항공사, 항공유 공급사, 공항, 정부기관 등의 긴밀한 협력을 기대한다.

최석병 아시아나항공 ESG경영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