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서울 빗물터널에 2천250억 투입…빗물받이 청소 의무화

정부, 광화문-강남역 침수대책 발표…예타 면제하고 사업비 25% 국비로
AI홍수예보·취약계층 대피 지원…도시침수지도 2025년까지 완성
구체성 없고 기존 정책 '재탕'…재정자립도 높은 서울시 대상 '한계
정부가 서울시가 추진 중인 도심 지하 저류시설에 2천250억원의 국비를 투입하기로 했다.환경부가 23일 서울 광화문과 강남역 일대에 많은 비가 내렸을 때 물을 임시로 저장하는 지하 저류시설, 서울 도림천과 대방천의 물을 한강으로 신속히 빼내는 지하 방수로 등에 국비를 투입하는 내용의 도시침수와 하천홍수 방지대책을 내놨다.

이런 시설들은 앞서 서울시가 발표한 대책에 포함된 것들로, 환경부는 이 사업들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 신속히 추진되게 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에 상습침수지역 빗물받이 청소 의무를 부여하기로 했으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홍수예보체계도 구축하기로 했다.◇ 광화문·강남역·도림천에 빗물터널·방수로
정부는 광화문과 강남역 일대에 건설될 대심도 저류시설(빗물터널)에 국비를 투입한다.

이들 시설은 비가 하수관로 처리용량을 넘어설 만큼 내렸을 때 빗물을 잠시 저장하는 대형 관이다.

광화문 저류시설은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서 청계천까지 3.2㎞를 'ㄴ'자로 이으며 강남역 저류시설은 강남역과 한강 3.1㎞를 직선으로 연결한다.사업비는 각각 2천500억원과 3천500억원으로 추산된다.

사업비는 '대심도 터널 표준공사비'를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라 실시설계에 맞춰 변경될 수 있다.

저류시설이 마련되면 광화문과 강남역 일대는 각각 시간당 100㎜와 시간당 110㎜ 폭우에도 견딜 수 있게 된다고 환경부는 설명했다.정부는 또 도림천과 대방천 지하 방수로 건설에도 국비를 투입한다.

각각 보라매공원과 장승배기역에서 샛강까지로 이어지는 지하 방수로로, 추산 사업비는 3천억원이다.

방수로가 건설되면 시간당 100㎜ 비에도 홍수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기대된다.

각각 사업비 4분의 1이 국비로 투입되는데, 이들 3개 사업을 합하면 투입되는 국비는 2천250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로 광화문·강남역 저류시설과 도림천·대방천 방수로 건설사업을 신속히 추진해 내년 설계를 시작하고 2027년 완공시킨다는 방침이다.

앞서 서울시는 광화문·강남역 저류시설과 도림천 방수로 등을 포함해 6곳에 10년간 1조5천억원을 투자해 빗물 저류·배수시설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3개 사업은 동작구(사당역)·강동구(길동)·용산구(삼각지역)에서 한강을 잇는 저류·배수시설을 만드는 것으로, 환경부는 이 사업들 지원 여부 등은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규모 지하 저류시설과 방수로가 만들어지기 전 기존 시설을 활용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국가하천 정비 예산 증액…빗물받이 청소 의무화
이번 정부 대책에는 하수관로와 빗물펌프장 등을 개량하는 예산을 1천억원에서 내년 1천493억원으로 증액해 지방 도시침수 취약지구에 먼저 투자하고 국가하천 정비예산을 3천500억원에서 내년 5천10억원으로 늘리면서 정비가 시급한 지방하천을 국가하천에 편입시키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환경부는 이날 대책에서 내년 상반기 하수도법을 고쳐 상습침수구역 빗물받이 청소와 하수관로 상시 준설을 지자체 의무로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빗물받이가 담배꽁초 등 쓰레기에 막혀 무용지물이 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상습침수구역 빗물받이를 청소하지 않는 등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지자체엔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빗물이 역류할 때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위험 요소로 변하는 맨홀과 관련해선 '맨홀 빠짐 안전설비 설치 기준'이 연내 도입되고 설비개선이 추진된다.

환경부는 하천수위·강우량·기상예측자료 등을 빅데이터로 삼고 AI를 활용한 'AI홍수예보'를 만들어 내년 홍수기 전까지 도림천에 시범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대피경보가 내려져도 대피하기 어려운 취약계층 맞춤 지원대책도 추진된다.

환경부는 도시침수지도와 하천범람지도를 행정안전부 '생활안전지도'를 통해 24시간 제공하겠다고도 밝혔다.

2016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해 현재 181개 읍면동에 대해 제공되는 도시침수지도를 2025년까지 완성키로도 했다.
◇ 서울 중심 '재탕' 대책…구체성 떨어져
이날 환경부가 내놓은 대책과 관련해 서울 지하 저류시설·방수로 건설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미 발표한 것이고 대부분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해온 사업을 '더 잘하겠다'라고 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책이 서울 중심이라며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의 치수 사업에 국비를 투입하는 대신 다른 지역에 투자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집중호우로 서울만 수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이날 발표한 대책에서 침수·홍수 예방 기반시설 건설을 약속한 곳은 서울이 사실상 유일하다.

주민과 지하시설이 많은 서울 도심을 지나는 대형 관을 건설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도시침수와 하천홍수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으로 깊은 지하(대심도)를 활용하기에 사업이 가능하다고 환경부 측은 설명했다.

다만 지난 8일 밤 서울 동작구에 비가 1시간에 141.5㎜ 쏟아졌고 기후변화로 폭우가 더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시간당 100㎜ 정도 비를 견디겠다는 광화문·강남역 저류시설과 도림천 방수로의 '목표'가 너무 낮다는 지적도 있다.

이날 대책 구체성도 떨어져 물난리에 여론이 악화하자 쫓기듯 대책을 내놨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부는 '도시침수대응기획단'을 만들어 연내 종합대책을 추가로 발표하겠고 했지만 아직 단장을 누가 맡을지 등도 정하지 못했다.

환경부는 상습침수구역 빗물받이 청소를 의무화한다면서도 인력이나 예산을 추가로 지원할 계획은 없어 지자체에 부담만 더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취약계층 대피 지원과 관련 인력 확충 방침도 없어 기존 소방공무원과 지방공무원 일을 늘리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