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여성 최초 뉴스데스크 앵커, '尹心'을 브리핑하다 [김인엽의 대통령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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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사건·삼풍백화점 부실공사 알려"세상에 공짜는 없다"
MB 청와대 부대변인 맡으며 "정치 안해"
21대 총선에선 홀로 민주당 지역구 탈환
尹心 안고 첫 여성 광역단체장 노렸지만
새벽까지 접전 끝에 '0.15%P 차' 석패
'정치인' 없던 홍보라인에 정무감각 더해
대통령실 한 관계자가 김은혜 홍보수석의 언론 대응 능력을 두고 한 말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이 관계자는 "방송기자와 앵커 경력, 대변인 경험, 그리고 여러 번의 당선과 낙선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한 언론 대응 능력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수석이 대변인 역할을 맡은 것은 이번이 10번째입니다. 아래는 그가 정치에 입문한 이래 맡은 홍보 관련 직책들입니다.
2008. 2 ~ 2009. 8 청와대 외신담당 제1부대변인
2009. 9 ~ 2010. 7 청와대 제2대변인
2020. 1 ~ 2020. 3 혁신통합추진위원회 대변인
2020. 6 ~ 2020. 9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
2020. 9 ~ 2021. 4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
2021. 7 ~ 2021. 12 국민의힘 홍보본부 본부장
2021. 11 ~ 2021. 12 국민의힘 윤석열 선대위 대변인
2021. 12 ~ 2022. 3 국민의힘 윤석열 선대위 공보단장
2022.3 ~ 2022. 4 윤석열 당선인 대변인
2022. 8 ~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이처럼 김 수석은 '직업이 대변인'이라 할 만큼 다양한 홍보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방송기자 출신으로 살려야 할 대목은 살리고 까다로운 질문에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브리핑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지존파 사건' 알린 특종기자 … 여성 최초 뉴스데스크 앵커 이력도
'방송기자 김은혜'를 알린 최초의 사건은 1994년 '지존파 사건' 보도였습니다. 두목 김기환 등 지존파 일당 7명이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5명을 연쇄 살인한 이 사건은 세간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피해자를 강간하고 인육을 먹는 등 잔혹한 범죄 행위가 충격을 더했습니다.김 수석은 당시 문화방송(MBC)의 입사 2년차 경찰 출입기자였습니다. 김 수석은 2008년 MBC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지존파 사건을 취재한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추석 전날이었다. 서초 경찰서를 돌아다녔는데 강력반 사무실 하나가 불이 켜져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딸깍 딸깍 열어 봤더니 문이 안열리더라. 그래서 돌아나가봤더니 유리창이 조금 열려있었다.지존파 사건을 보도한 이듬해에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부실 공사' 사실을 확인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김 수석은 2001년 발간한 책 《나는 감동을 전하는 기자이고 싶다》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거기에 귀를 대고 들어봤더니 사람을 죽였다든지, 인육을 먹었다든지, 어떤 것은 묘지, 인육, 카드 이런 이야기가 들렸다. 인육은 팔지 않았으니 인육을 먹었을 것이고, 부자, 카드,백화점은 부자만 골라서 사람을 죽였다는 연상이 가능하지 않나. 새벽 3시에 들었는데 아침 6시에 방송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수사)반장 나오라고 문을 두드렸다.
백화점 사고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마련된 대형버스에 한 30대 남자가 들어왔다. 구조대원 중 한 사람이라며, 지하 사무실 캐비닛에 중요한 서류가 보관돼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김 수석은 1994년 이달의 기자상, 1999년 한국기자협회 특종상을 수상했습니다. 이같은 경력을 인정받아 1999년 여성 기자로서 최초로 평일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았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29살이었습니다.
그 중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고 있는 한 소방대원에게 접근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그로부터 모자와 119 대원복을 빌렸다. 드디어 나는 옷을 빌려 입고 무리져 들어가는 119 구조대원에 섞여 지하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보트를 타고 몇 분을 들어갔을까. 머리 부분만 남긴 캐비닛 안에서 서류뭉치가 눈에 띄었다.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밖에서 말려 보니 백화점 설계도였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그로부터 9년 뒤인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임명되면서입니다. 당시 김 수석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이나 정치쪽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국회의원 뱃지를 달게 됐습니다. 김 수석은 2010년까지 청와대 부대변인과 제2대변인을 지낸 후 2012년 KT 커뮤니케이션팀 전무이사로 근무했고 2014년에는 다시 MBN 앵커를 맡았습니다.
위기의 보수당, 경기에서 홀로 지역구 탈환한 '철의 여인'
2020년 4월에 시행된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김 수석에게는 선출직 선거 첫 도전이었습니다.그 해 봄은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에게 혹독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가면서 국가적인 위기감이 형성됐고, 민심은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후 더불어민주당으로 통합)은 총 180석을 얻어 개헌선에 이르렀습니다. 미래통합당과 그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의석수는 103석에 그쳤습니다. 경기도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민주당이 40석, 새누리당이 19석을 보유했으나 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51석, 미래통합당이 7석으로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 수석은 경기도에서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을 탈환헀습니다. 성남 분당 갑에서 50%를 득표한 김 수석이 김병관 민주당 의원을 0.7%포인트 차로 이긴 것입니다. 보수세가 강한 경기 교외지역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가 팽팽히 맞서던 수도권 중심에서 지역구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컸습니다. 이같은 성취는 김 수석이 향후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로 체급을 키워나가는 중요한 발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김 수석은 이듬해 4월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출마를 선언합니다. 만 50세의 젊은 나이, 여성, 초선 의원이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파격적인 행보였습니다. 예비경선에서 컷오프됐지만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초선 열풍'을 일으키며 국민의힘 세대교체에 힘을 보탰습니다.
2021년 12월에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으로 임명됐습니다. 그 전 달부터 선대위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중 조수진 공보단장이 사퇴하면서 단장직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김 수석은 이 때부터 본격적인 '윤석열의 입'으로 활동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선거를 마친 2022년 4월 다시 한 번 '당선인 대변인'으로 김 수석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을 하던 중 대변인직을 내려놓았습니다. 6·1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김 수석은 사상 최초 여성 광역단체장이라는 기록에 도전했지만 피말리는 접전 끝에 0.15%포인트 차로 석패했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49.06%, 김 수석이 48.91%를 득표했습니다. 김 수석은 선거 이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유학의 시간을 가졌으나, 지난 23일 윤 대통령의 두 번째 홍보수석으로 기용되며 다시 한 번 정치 일선에 나섰습니다.
'정치인' 없던 대통령실 홍보라인에 정무감각 더할 듯
김 수석이 국회의원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경기도지사 선거를 거치며 얻은 경험은 대통령실 홍보라인에 부족했던 정무감각을 보태줄 것으로 평가됩니다.윤 대통령 1기 홍보라인에는 정치인 출신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최영범 전 홍보수석, 강인선 대변인, 이재명 부대변인을 비롯해 비서관들(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 강훈 국정홍보비서관, 김영태 국민소통관장)도 모두 정치 경험이 없는 언론인 출신입니다.
김대기 비서실장은 김 수석의 인사를 발표하며 "홍보 및 언론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가지신 분이다. 선대위 공보단장, 당선인 대변인을 맡으면서 대통령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앞으로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과 국정과제 운용에 있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소개했습니다. ['대통령실 사람들'은 용산 시대를 열어가는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대통령실과 관련해 더욱 다양한 기사를 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