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시, '환매권' 통지 안 해 100억원대 손해배상 '위기'

서울대병원 유치 무산 후 기존 토지주에 환매권 통지 안해
시 "소송 없이 모든 토지주에 손해배상 추진…추경으로 예산 확보"

10여년 전 서울대병원을 유치하겠다며 500억원대의 혈세를 들여 사유지를 매입한 경기 오산시가 사업 무산 후 기존 토지주들에게 땅을 다시 사갈 권리인 '환매권'을 제대로 통지하지 않아 수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물게 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당시 땅을 수용당한 토지주가 모두 같은 소송을 제기할 경우 손해배상액만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돼 가뜩이나 가용 재원이 부족한 오산시는 민선 8기 시작과 동시에 재정 위기를 맞게 됐다.
◇ 서울대병원 유치 사업은?
오산시는 시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2007년 7월 '병원 설립에 대한 타당성 용역' 조사를 시작으로 서울대병원 유치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5월 경기도와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과 '종합의료기관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오산시는 당시 이미 병원 부지 매입에 쓸 예산 500억원을 확보한 상태였다. 이후 시는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업무협약만을 근거로 517억원을 들여 내삼미동 사유지 105필지, 12만3천여㎡를 74명의 토지주로부터 매입했다.

일부 토지주는 협의 매수에 불응해 수용재결 신청 끝에 어쩔 수 없이 땅을 내놓기도 했다.

시가 2010년까지 부지 매입을 완료한 사이 병원 부지는 2009년 2월 도시계획시설(종합의료시설)로 결정, 고시됐다. 하지만 사업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사업 부지가 수년간 방치되자 오산시는 1차 MOU 체결 4년 만인 2012년 재차 해당 기관들과 업무협약을 맺어 서울대병원 건립을 추진했으나 이듬해 11월 서울대병원 측으로부터 '경영 악화로 오산에 병원을 건립하기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

이후 오산시는 병원 부지 활용방안 논의를 시작했고, 2015년 1월 병원으로부터 '재정 상황 등으로 인해 양해각서에 따른 협약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최종 통보를 받자 이듬해 9월 도시계획시설(종합의료시설) 실시계획인가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 환매권 통지 의무 위반 '줄소송'
병원 부지로 방치돼 있던 내삼미동 땅은 2016년부터 관광형 테마파크로 조성되고 있다.

현재 이곳엔 드라마세트장, 미니어처 빌리지, 경기도국민안전체험관 등이 들어섰다.

방치된 땅이 지역 관광자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오산시의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존 토지주가 제기한 소송을 통해 최근 밝혀졌다.

국민의힘 이상복 오산시의원이 제공한 '오산시 환매권 손해배상 소송 결과 및 대책 방안 검토 보고'에 따르면 병원 부지 중 일부를 소유하고 있던 A씨 등 3명은 2020년 8월 오산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시가 공익사업을 한다며 사유지를 취득하고도 정작 사업 무산 후 기존 소유자에게 다시 사갈 권리(환매권)를 고지하지 않아 재산 피해를 봤다는 이유에서다.

환매권 통지 의무를 명시한 토지보상법 제92조 1항은 '사업시행자는 제91조 1항 및 2항에 따라 환매할 토지가 생겼을 때는 지체 없이 통지해야 한다'고 돼 있다.

시는 "2014년 '토지보상법 제91조 2항에 의거, 취득일로부터 5년 이내에 해당 사업에 이용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해 기존 토지주 전원에게 환매권 통지를 한 바 있다"고 맞섰다.

그러나 법원은 오산시(피고)가 2016년 도시계획시설 폐지 고시 후 '토지보상법 제91조 1항에 의거, 토지 취득일로부터 10년 이내에 해당 사업의 폐지 등으로 땅이 필요 없게 된 경우'에 해당하는 환매권을 통지하지 않아 기존 토지주(원고)들에게 재산상 피해를 줬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토지보상법 제91조 1항에 따른 환매권과 2항에 따른 환매권은 요건을 서로 달리하는 '별개의 권리'"라며 "서울대병원 유치 사업은 도시계획시설 폐지(2016년) 때 1항에 따른 환매권을 고지했어야 했다"고 판시했다.

손해배상액은 원고가 환매권을 상실해 얻지 못한 지가 상승분으로, A씨 등 3명의 배상액은 2억3천여만원으로 책정됐다.

오산시 항소로 진행된 항소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고,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해 판결은 최근 확정됐다.

이 사건 외에도 현재 기존 토지주 33명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추가로 제기된 상태다.

나머지 토지주들이 모두 소송을 제기할 경우 손해배상액은 1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시는 추산했다.
◇ 소송 없이 일제 손해배상…재원 확보 '비상'
2014년 오산시가 토지보상법 제91조 1항에 따라 기존 토지주에게 환매권을 통지했을 당시 실제로 권리를 행사한 토지주는 단 3명(1천72㎡)에 불과했다.

따라서 오산시가 절차를 제대로 지켜 환매권 통지를 했더라도 권리를 실제 행사한 토지주는 많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100억원에 달하는 배상액도 물어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상복 시의원은 "6년 전 담당 부서 공무원의 실수로 환매권 통지를 적법하게 하지 않는 바람에 지금에 와서 혈세로 100억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어주게 됐다"며 "절차를 무시한 행정 편의주의 탓에 거액의 혈세를 낭비하게 됐으나 이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A씨 등 3명에게 2억3천여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줘야 하는 오산시는 일단 예산을 예비비에서 충당해 배상할 계획이다.

추가로 제기된 소송이나, 앞으로 제기될 수 있는 소송에 대한 배상금은 일제 조사해 소송 없이 토지주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변호사 비용 등 소송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100억원에 달하는 배상금은 기존 시 예산으로 충당할 수 없어 추경을 통해 확보할 예정이다.

하지만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그간 추진해오던 대형 사업을 줄줄이 보류한 오산시가 1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추가로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거란 게 중론이다.

실제로 지난달 이권재 오산시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시 재정 상황이 위기에 직면해 초긴축재정이 불가피하다"며 "2026년 가용재원이 마이너스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힌 바 있다.

오산시 관계자는 "당시 담당자는 2014년 한차례 환매권을 통지한 후 2016년 즈음 변호사 자문을 받았으나 '환매권은 이미 상실됐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아 더 고민하지 않고 일을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환매권 통지에 대한 절차를 위반하는 바람에 시 입장에서는 안 줘도 될 돈을 주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해 더 꼼꼼하게 절차를 이행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