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 없이 위패만 덩그러니…'수원 세모녀' 공영장례식(종합)

연고자가 시신 인수 포기해 수원시서 지원…조문객 "너무 안타까워"
정치권 발길 잇따라…김동연 지사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책 만들 것"

투병과 생활고에도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빈소가 24일 마련됐다.
이날 오후 5시께 경기 수원시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빈소에서는 으레 놓이는 영정 사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단상 위에는 60대 여성 A씨와 40대 두 딸의 이름이 적힌 위패 세 개만 덩그러니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A씨 가족의 장례를 진행하는 수원시 관계자는 이들의 사진을 전해줄 친지나 지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빈소 입구에 마련된 상주석에는 시 관계자 등이 앉은 채 자리를 지켰다.

A씨 가족의 장례식은 무연고자·저소득층 사망자 등을 위해 사회가 지원하는 공영장례로 진행된다.

A씨 가족의 먼 친척으로 알려진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포기하면서 이들이 무연고자가 되자 수원시는 이같이 결정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통상 무연고자의 경우 시에서 하루 동안 공공이 애도할 수 있는 빈소를 차린 뒤 발인하지만, A씨 가족의 경우 고인이 3명이고 조문객도 비교적 많을 것으로 예상해 삼일장을 치르기로 했다"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례식 첫날인 이날 빈소는 대체로 한산했으나 밤이 되자 시민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따금 이어졌다.

2년 전 병을 앓던 아들과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은 A씨와 두 딸까지 한날한시 유명을 달리한 이들 가족의 사연에 조문객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광진구에서 온 직장인 지모(31) 씨는 "고인들께서 경제적인 이유로 죽음을 택하셨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빈소를 찾았다"며 "도움이 조금 될까 싶어서 부의금도 준비해왔는데 공영장례라서 받지 않는다고 하시더라"며 울먹였다.

이어 "매번 이와 비슷한 사회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데 정치권과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빈소를 찾은 한 노부부도 "근처에 살고 있는데 빈소가 차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며 무거운 표정으로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당 대표 후보, 염태영 경기도 경제부지사 등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오후 10시 10분께 빈소를 찾은 김 지사는 "어제 아침 SNS에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이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조차 부끄러운 심정에 삭제했다"며 "어려움에 처하신 분들이 언제든 (지자체 등에) 쉽게 연락해 자신의 사정을 알릴 수 있도록 관계 부서 간 협력, 도민 의견 수렴 등을 통해 관련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용진 후보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었던 우리 사회 복지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드러난 것 같아 정치인으로서 죄책감을 느낀다"며 "우리나라 복지체계가 단순한 신청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행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염태영 경제부지사도 "우리 사회의 복지안전망이 미흡함을 드러낸 비통한 사건"이라며 "고인들께서 이제 부디 평화를 누리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추모의식은 25일 오후 2시 원불교 경인교구 측에서 거행한다.

시는 다음날인 26일 오전 발인을 마친 뒤 오후 1시 수원시 연화장에서 화장을 하고 연화장 내 봉안담에 유골을 봉안할 예정이다.

A씨 가족은 지난 21일 오후 2시 50분께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암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었고 두 딸 역시 각각 희소 난치병을 앓았으며, 유서에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힘들었다"고 적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2020년 2월 화성시에서 수원시의 현 주거지로 이사할 때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화성시와 수원시 모두 이들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이들에 대한 긴급생계지원비나 의료비 지원 혜택,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서비스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A씨 가족의 정확한 사망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으나, 최근 국과수로부터 "시신의 부패 정도가 심해 당장 사인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구두 소견을 전달받고 정밀 감정을 진행 중이다.

한편, A씨 가족의 죽음이 알려지자 정부는 이날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위기가구의 소재 파악이 안 될 경우 실종·가출자에 준해 경찰의 도움을 받아 소재를 파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사회안전망 재점검에 나서고 있다. A씨 가족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였던 화성시도 '고위험가구 집중발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주거 불명 등을 이유로 복지서비스 '비대상'으로 등록된 가구들에 대해 전수 조사에 나서는 등 도내 각 지자체도 후속 대책을 마련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