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하늘처럼 큰 눈 가진 이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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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보는 달(蔽月山房詩)
산이 가깝고 달이 먼지라 달이 작게 느껴져
사람들은 산이 달보다 크다 말하네.
만일 하늘처럼 큰 눈 가진 이가 있다면
산이 작고 달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을 텐데.山近月遠覺月小, 便道此山大於月.
若人有眼大如天, 還見山小月更闊.
* 왕양명(王陽明, 1472~1529) : 명나라 시인.
-------------------------------------명나라 시인 왕양명이 열한 살 때 지었다는 시입니다. 자연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마음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을 절묘하게 표현했지요? 단순한 원근법을 넘어 우주의 근본 이치를 꿰뚫는 혜안이 놀랍습니다.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얘기한 게 1543년이고, 갈릴레이가 이를 확인한 것이 1632년인데, 1483년에 10대 소년이 이런 시를 썼으니 천재가 아닐 수 없지요. 세상을 하늘처럼 큰 눈으로 보려는 시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왕양명은 그의 호(號), 본명은 수인(守仁)입니다.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말이 트이지 않아 부모가 애를 태우다가 이름을 수인으로 바꾸자 말문이 터졌다고 해요. 이후 워낙 총명해서 아버지가 개인 교사를 붙여줬습니다.하루는 “천하에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눴는데, “과거에 급제하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선생의 말에 어린 양명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학문을 하여 성현이 되는 것이 천하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이렇게 조숙했던 그는 14세 때 이미 활쏘기와 말타기를 배우고 병서를 읽었지요. 15세에는 집을 떠나 용관, 산해관 등 변방 지역을 유람하며 영웅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녔습니다. 21세에 향시에 합격한 뒤로는 본격적인 유학 연구에 매진했지요.
하지만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과거시험에는 25세가 될 때까지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그를 위로하자 “세상은 낙방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나는 낙방한 일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네!”라며 호탕하게 웃었지요.그는 28세에야 급제해 관직에 나갔지만, 이후 학문과 시문 모두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능가할 만큼 시각이 남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중 제가 정말 유쾌하게 감동한 건 초등학교 1~2학년쯤 되는 녀석의 ‘고해’였습니다.
‘아빠 그동안 말 안 드러서 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
햐, 녀석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높은 곳에 오르면 누구나 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걸! 산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집니다. 자연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그 개구쟁이의 글귀가 아주 살갑게 다가왔습니다.
그날 밤 발왕산 이마에 걸린 달은 유난히 커 보였죠. 같은 달도 보기에 따라 달라지더군요. 늘 거기 있는 산이지만 그 품에 들어 자신을 비춰보면 마음이 달라지고, 큰 잘못이 없더라도 막연히 사죄하고 싶어지는 이치와 닮았습니다.
실제로 달은 하늘 높이 떠 있을 때보다 지평선 가까이에 있을 때 더 커 보인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달 착시’라고 부르는 현상이죠. 발왕산에서 본 그날 밤의 달도 그랬을 겁니다.
육체적인 ‘뇌의 인식작용’은 종종 착시현상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감성작용’은 우리 영혼의 촉수를 움직이게 만들죠. 세상의 높낮이와 내면의 크기를 스스로 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말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달은 저를 따라왔지요. 그 달의 이면에는 높은 데 올라 잘못을 비는 아이의 해맑은 얼굴과 세속도시에서 자주 착시에 빠지는 제 얼굴이 겹쳐져 있었습니다. 오, 옛 시에서 발견한 시인의 달과 여행지에서 만난 달의 저 절묘한 표정이라!■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산이 가깝고 달이 먼지라 달이 작게 느껴져
사람들은 산이 달보다 크다 말하네.
만일 하늘처럼 큰 눈 가진 이가 있다면
산이 작고 달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을 텐데.山近月遠覺月小, 便道此山大於月.
若人有眼大如天, 還見山小月更闊.
* 왕양명(王陽明, 1472~1529) : 명나라 시인.
-------------------------------------명나라 시인 왕양명이 열한 살 때 지었다는 시입니다. 자연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마음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을 절묘하게 표현했지요? 단순한 원근법을 넘어 우주의 근본 이치를 꿰뚫는 혜안이 놀랍습니다.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얘기한 게 1543년이고, 갈릴레이가 이를 확인한 것이 1632년인데, 1483년에 10대 소년이 이런 시를 썼으니 천재가 아닐 수 없지요. 세상을 하늘처럼 큰 눈으로 보려는 시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한시 원문 제목에 나오는 폐월산방(蔽月山房)은 절강성 금산(金山) 위에 있던 승방이었다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는군요.왕양명은 그의 호(號), 본명은 수인(守仁)입니다.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말이 트이지 않아 부모가 애를 태우다가 이름을 수인으로 바꾸자 말문이 터졌다고 해요. 이후 워낙 총명해서 아버지가 개인 교사를 붙여줬습니다.하루는 “천하에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눴는데, “과거에 급제하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선생의 말에 어린 양명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학문을 하여 성현이 되는 것이 천하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이렇게 조숙했던 그는 14세 때 이미 활쏘기와 말타기를 배우고 병서를 읽었지요. 15세에는 집을 떠나 용관, 산해관 등 변방 지역을 유람하며 영웅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녔습니다. 21세에 향시에 합격한 뒤로는 본격적인 유학 연구에 매진했지요.
하지만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과거시험에는 25세가 될 때까지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그를 위로하자 “세상은 낙방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나는 낙방한 일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네!”라며 호탕하게 웃었지요.그는 28세에야 급제해 관직에 나갔지만, 이후 학문과 시문 모두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능가할 만큼 시각이 남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높은 곳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진다
이 시를 읽는 동안 용평 발왕산 숲에서 본 달을 떠올렸습니다. 어느 해 여름, 발왕산 정상에 올랐다가 전망대 식당 벽에 붙어 있는 수백 장의 편지를 발견했지요. 아무개 왔다 간다, 하는 메모부터 가족 건강과 성공을 기원하는 문구까지 갖가지 ‘말씀’들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너무 경치가 좋아 꼭 다시 찾아오겠노라는 외국인의 헌사도 있었죠.그중 제가 정말 유쾌하게 감동한 건 초등학교 1~2학년쯤 되는 녀석의 ‘고해’였습니다.
‘아빠 그동안 말 안 드러서 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
햐, 녀석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높은 곳에 오르면 누구나 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걸! 산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집니다. 자연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그 개구쟁이의 글귀가 아주 살갑게 다가왔습니다.
그날 밤 발왕산 이마에 걸린 달은 유난히 커 보였죠. 같은 달도 보기에 따라 달라지더군요. 늘 거기 있는 산이지만 그 품에 들어 자신을 비춰보면 마음이 달라지고, 큰 잘못이 없더라도 막연히 사죄하고 싶어지는 이치와 닮았습니다.
실제로 달은 하늘 높이 떠 있을 때보다 지평선 가까이에 있을 때 더 커 보인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달 착시’라고 부르는 현상이죠. 발왕산에서 본 그날 밤의 달도 그랬을 겁니다.
달의 반사경에 비친 내 모습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단순한 착시가 아니었을 수도 있지요. 낮에 전망대에서 본 꼬마 녀석의 ‘고해성사’가 뇌보다 가슴에서 우러난 것처럼 산꼭대기의 그 달은 어떤 광학계로도 측량할 수 없는 제 속의 ‘둥근 거울’이었습니다. 저는 달의 반사경이 비추는 제 모습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지요.육체적인 ‘뇌의 인식작용’은 종종 착시현상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감성작용’은 우리 영혼의 촉수를 움직이게 만들죠. 세상의 높낮이와 내면의 크기를 스스로 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말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달은 저를 따라왔지요. 그 달의 이면에는 높은 데 올라 잘못을 비는 아이의 해맑은 얼굴과 세속도시에서 자주 착시에 빠지는 제 얼굴이 겹쳐져 있었습니다. 오, 옛 시에서 발견한 시인의 달과 여행지에서 만난 달의 저 절묘한 표정이라!■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