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 옹호에도 목소리…가치 중심 기업행동이 신뢰성 비결”
입력
수정
지구와 인간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고민해온 파타고니아가 내년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지속가능성 모델을 제시한다. 파타고니아는 환경 문제뿐 아니라 최근 낙태권 위헌 논란 등 사회 이슈에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업 미션과 철학에 충실한 선택이 신뢰도로 이어진다는 판단이다[한경ESG] ESG NOW - 파타고니아 인터뷰파타고니아는 제품의 지속 가능성뿐 아니라 임직원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패션산업이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바꿀지 늘 고민한다. 김광현 파타고니아 코리아 환경팀장을 만나 파타고니아의 지속 가능성 철학에 대해 물었다.- 환경팀에서는 어떤 업무를 합니까.
“공통의 글로벌 가이드에 따라 각 국가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파타고니아 본사는 2014년부터 강하천에 건설된 댐처럼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는 인공 구조물을 철거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020년부터 강하천에 버려진 5000여 개의 장기 미사용 농업용 보를 철거하는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현장에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환경단체나 활동가를 직접 지원하기도 합니다. 파타고니아 코리아는 현재 긴급성, 지원성, 현장성 3가지 우선순위에 따라 전국 환경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한국지사 매출액의 1%, 즉 약 6억5000만원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 환경뿐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한 목소리도 내고 있는데요.“얼마 전 미국에서 낙태권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났습니다. 이에 파타고니아는 여성의 건강과 결정권을 존중하고 낙태권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이를 회사 자체의 이슈로 가져왔습니다. 라이언 갤러트 파타고니아 CEO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우리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권을 옹호하며 직원들이 낙태 시술이 불법으로 규정된 주에서 합법 시술을 받으러 가기 위해 다른 주로 이동해야 한다면 관련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내부적인 소통 외에도 외부 채널을 통해 파타고니아의 기업 행동을 적극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게 기업 매출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나요.
“오히려 파타고니아가 다른 기업과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환경영향뿐 아니라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일반 기업과 다르게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이를 지지하기 위한 실제 행동을 하니까요. 파타고니아의 기업 미션에 따른 선택이 단기적으로는 매출에 영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기업 신뢰도가 올라가는 비즈니스적 결정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와 여론조사 기관 해리스폴이 진행한 ‘액시오스 해리스폴(기업 브랜드 평판 조사)’에서 파타고니아가 지난해 1위, 올해 3위 기업에 올랐습니다. 파타고니아가 홍보성 마케팅을 하지 않는데도 조 단위 매출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적극적인 활동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환경단체에 가까운 활동을 많이 하는데, 비즈니스적 측면은 어떤가요.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는 기업 미션을 지닌 파타고니아는 오히려 환경을 위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비즈니스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물론 제품의 가치가 아무리 좋더라도 품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소비가 지속되기 힘들다는 사실도 알고 있죠. 파타고니아는 매년 환경 이슈와 관련한 테마 컬러를 설정하고 고유한 디자인 철학, 색감에 맞게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마니아층을 확보했습니다. 품질 기준 또한 상당히 높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매출도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죠.”
- 지속가능한 상품과 MZ세대는 키워드로 함께 묶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타고니아에 대한 MZ세대의 선호도는 어느 정도인가요.“사실 직접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소비자의 취향이나 가격이 되겠죠. 다만 재구매가 이루어지거나, MZ세대가 브랜드를 인식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MZ세대의 정보력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영향을 주는 듯합니다. MZ세대는 그린워싱에 잘 현혹되지 않는 세대이기도 해요. 브랜드를 선택할 때 그 브랜드의 역사, 이미지, 혹은 과거의 이슈 등을 되짚어보고 구매하는 경향이 있죠. 광고나 단순 마케팅으로는 구매를 위한 설득이 되지 않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지난 50년간 꾸준히 환경을 위한 경영을 선택해 온 파타고니아가 경쟁력이 있습니다.”
- 패션산업 자체가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가장 쉬운 환경보호 방법은 옷을 생산하지도 사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생산이 곧 비즈니스인 기업으로서는 고민이 되는 지점이기도 했죠. 수십 년 전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창립자도 이러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기업을 팔아 재단을 만들고 좋은 일에 쓰느냐, 환경보호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모델을 만드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죠. 파타고니아는 생산자로서 늘 환경보호를 기반으로 한 성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수명을 다한 티셔츠를 수거해 새로운 티셔츠로 만드는 ‘티-사이클(Tee-cycle)’라인도 출시했습니다. 순환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첫 번째 티셔츠입니다. 재생 소재를 만들고, 그로 생산하는 것이 1차적인 시도라면 궁극적으로는 모든 제품 라인이 순환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파타고니아는 내년 50주년을 맞아 지속 가능 경영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려 합니다. 진정한 순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고민해야죠.”
- 파타고니아는 기업 이념 자체가 환경과 맞닿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이 훨씬 많지 않나요.
“파타고니아는 창립자이자 소유주가 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업보다는 이해관계자가 적어요. 그래서 어떠한 경영적인 선택을 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이 축소되죠. 지배구조 측면은 차이가 있는 게 맞지만, 환경보호의 입장에서 기업이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공유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그 방법을 활용하는 것을 리스크로 받아들일지, 기회로 받아들일지는 장기적인 관점을 고려해 결정할 일입니다. 기업이 변하는 중요한 계기는 비즈니스에 위기가 닥쳤을 때입니다. 기후위기가 코 앞으로 다가올 10년, 2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생산할 수 있을지 판단하고 지금부터 대응해야죠. 다만 모든 책임을 기업에 묻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변화에는 정책적, 제도적 변화도 함께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기업이 잘 변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정책적인 규제가 뒷받침 되어야죠.”
- 파타고니아가 지속 가능성을 내재화하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파타고니아는 ‘회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선택하는가’를 지속적으로 임직원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환경, 인권, 여성의 건강 등 이윤과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미션과 철학에 기반한 선택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이 기업의 철학을 직원들에게 내재화하는 훌륭한 방식이라고 봅니다.”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