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우리 몸은 짠 맛이 당기도록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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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3
딜리셔스
롭 던·모니카 산체스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333쪽|1만8000원
진화생물학자·인류학자 공동 저술
인간은 식물보다 나트륨 농도 50배 높아
생존 위해 '짠맛=맛있다' 느끼게 진화
쓴맛이 싫은 건 상한음식 피하기 위해
<딜리셔스>는 그 기원을 찾아 나선 책이다. 진화생물학자와 인류학자인 두 저자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생존을 위한 식사’를 넘어 ‘맛있는 것’을 추구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책은 이 가설을 좇아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현대인은 음식에 어떤 영양분이 들어 있는지 안다. 부족한 영양소를 쉽게 보충할 수 있다. 고대 인류와 동물은 어떻게 이를 파악했을까. 바로 맛이다. 포유류를 비롯한 육지 척추동물은 식물보다 체내 소듐(Na·나트륨) 농도가 거의 50배 높다. 그만큼의 소듐이 몸에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혀에 짠맛 수용체가 생겨났다. 어느 정도의 짠맛을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다. 대신 너무 짜면 불쾌감을 부른다. 일종의 안전장치다.
인간의 미각 수용체도 언젠가 변할까.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맛을 떠나 무엇을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없는지 아는 지능이 있다. 쓴맛이 느껴지는 차와 커피, 맥주를 즐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혀는 ‘위험하다’라는 신호를 보내는데 머리는 ‘괜찮아’라고 한다. 매운맛도 그렇다. 매운맛은 원래 맛이 아니다. 통증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를 즐긴다. 책은 번지점프에 비유한다. “번지점프와 똑같은 전율을 매일 느끼기 위해서 위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은 것들을 우리 입에 넣는다.” 통증과 공포는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한다. 매운 것을 먹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다.
인간이 마늘과 양파, 오레가노, 시나몬, 겨자, 고수 같은 향신료를 즐기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인간은 하나의 사건만으로 어떤 향을 싫어할 수 있다. 이를 ‘가르시아 효과’라고 한다. 한 번이라도 식중독에 걸려 고생하면 그 요리의 향은 나쁜 것으로 학습된다. 반면 향신료를 넣은 음식은 잘 상하지 않는다. 박테리아 증식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향신료는 안전하고 즐거움을 주는 재료로 인식되고, 대를 거듭해 먹으면서 맛있다고 느끼게 된다.맛은 동물의 멸종에도 영향을 미쳤다. 매머드가 그런 예다. 이제 학자들은 매머드가 기후 변화보다 고대 인류의 과잉 사냥 탓에 멸종했을 것으로 본다. 매머드는 덩치는 크지만 온순했고 특히 맛이 좋았다. 매머드와 비슷한 코끼리 역시 맛있는 동물로 손꼽힌다. 인류학자들이 현재 수렵으로 살아가는 부족들을 연구했을 때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이들은 흰입페커리, 파카, 목도리페커리 등 맛있는 동물을 발견하면 끈질기게 쫓아갔지만, 맛없는 고함원숭이는 죽이기 쉽고 흔해도 거의 추격하지 않았다.
이 책을 맛으로 표현하자면 담백한 맛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맛있고 영양이 풍부하다. 문장은 쉽고 탄탄하다. 인류학, 생태학, 식품과학, 화학, 생물학 등 여러 과학 지식을 하나로 엮어내는 솜씨도 일품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