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황금빛의 클림트 명화 속 숨겨진 사연은?[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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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강렬하고 화려한 그림이 있을까요. 작품과 마주하는 순간, 황홀함에 취해 온 마음과 시선을 빼앗깁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그린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입니다.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리는 이 불후의 명작을 영화로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2015년 개봉한 사이먼 커티스 감독의 영화 '우먼 인 골드'는 그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영화 첫 장면부터 클로징까지 이 작품을 전면에 내세워 매혹적인 아우라로 관객들을 사로잡죠. 아름다움 이면에 숨겨진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하며 찬란한 감동과 짜릿한 전율도 선사합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조카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그리고 이들은 이 그림을 되찾기 위해 8년에 걸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델레는 성공한 사업가 페르디난트 블로흐 바우어의 아내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유대인이었죠. 당시 유대인들은 사업을 통해 큰 부를 쌓았는데요. 이를 활용해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높였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문화가 꽃 피게 된 것엔 이런 유대인 부호들의 힘이 컸습니다. 이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사람의 집은 클림트, 브람스, 말러 등 빈 주요 문화계 인사들이 드나들던 살롱의 역할을 했죠.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클림트가 페르디난트의 요청을 받아 그린 겁니다. 클림트는 '키스' 등 다양한 황금빛 작품을 남긴 화가로 잘 알려져 있죠. 그가 황금 장식 작품들을 만든 것은 세공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황금은 불멸의 아름다움, 부와 명예를 상징합니다. 그는 이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 반짝이고 빛나는 그림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때 유럽 전역에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도 결합했습니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예술'이란 뜻으로, 정형화된 전통 예술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양식을 만들기 위한 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섬세한 곡선, 우아한 여성, 아름다운 꽃과 자연 등이 아르누보 양식에 해당합니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황금 장식과 아르누보 양식이 결합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클림트 그림 중 가장 많은 양의 금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르누보 양식의 곡선도 두드러집니다. 아델레의 몸 전체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뤄져 있죠. 덕분에 마치 황금빛 여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클림트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그림에 인물 내면의 심리를 담아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작품에도 아델레의 숨겨진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아델레는 기품 있으면서도 강인한 여성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감추고 싶은 사실이 한 가지 있었는데요. 어릴 때 사고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크게 다친 겁니다. 그림에서 아델레가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고 있는 것은 오른손의 장애를 감추려는 모습입니다. 클림트는 얼굴을 제외한 대부분을 황금 장식으로 표현했지만, 손은 그대로 그렸습니다. 아픔을 숨기려 하기 보다,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을 담아 표현한거죠. 클림트는 아델레의 초상화를 두 번 그렸는데요. 영화에 나온 1907년 작품, 5년 후인 1912년에 그린 작품입니다. 그가 초상화를 두 번 그린 인물은 아델레가 유일합니다.
두 장의 초상화 이외에 다른 작품에도 아델레가 등장합니다. '유디트' 속 인물이 바로 아델레입니다. 이 그림에선 아델레의 모습이 매우 관능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클림트와 아델레가 연인 관계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영화는 실제 이 소송의 진행 과정과 결과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아델레는 세상을 떠나며 페르디난트에게 클림트가 그린 그림들을 전부 오스트리아 정부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나치가 이 그림들을 전부 몰수해 갔습니다.
종전 직후 페르디난트는 세상을 떠나며 그림의 소유권을 조카들에게 넘겼는데요. 그중 한 명인 알트만은 그림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그림 자체에 대한 소유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나치의 위협으로 가족을 뒤로한 채 미국으로 급히 망명해야 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아껴주었던 숙모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찾고 싶었던 거죠. 알트만이 제기한 소송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림은 알트만에게 반환됐습니다. 그림의 주인이 아델레가 아닌 남편이었다는 판결이 난 겁니다. 실제 그림을 요청한 사람도, 그림의 값을 지불한 사람도 페르디난트였으니까요.
이후 이 그림은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미국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 창업자의 아들 로널드 로더가 2006년 1억3500만 달러(당시 1297억원)에 작품을 사들였기 때문입니다. 클림트 애호가였던 그는 역대 최고가로 이 작품을 낙찰 받았습니다.
알트만은 판매 조건으로 그림이 대중에게 공개될 것을 내걸었고, 로더는 이를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작품은 로더가 공동 투자한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됐고,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난 법적 소유권 문제가 아닙니다. 그 속에 담긴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며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 나아가 모두가 함께 그 사실을 되새기며 그림의 감동을 나누고 간직한 것에 주목해야겠죠. 그래서인지 작품 속 황금빛이 더욱 눈부시고 찬란하게 다가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리는 이 불후의 명작을 영화로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2015년 개봉한 사이먼 커티스 감독의 영화 '우먼 인 골드'는 그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영화 첫 장면부터 클로징까지 이 작품을 전면에 내세워 매혹적인 아우라로 관객들을 사로잡죠. 아름다움 이면에 숨겨진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하며 찬란한 감동과 짜릿한 전율도 선사합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조카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그리고 이들은 이 그림을 되찾기 위해 8년에 걸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델레는 성공한 사업가 페르디난트 블로흐 바우어의 아내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유대인이었죠. 당시 유대인들은 사업을 통해 큰 부를 쌓았는데요. 이를 활용해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높였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문화가 꽃 피게 된 것엔 이런 유대인 부호들의 힘이 컸습니다. 이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사람의 집은 클림트, 브람스, 말러 등 빈 주요 문화계 인사들이 드나들던 살롱의 역할을 했죠.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클림트가 페르디난트의 요청을 받아 그린 겁니다. 클림트는 '키스' 등 다양한 황금빛 작품을 남긴 화가로 잘 알려져 있죠. 그가 황금 장식 작품들을 만든 것은 세공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황금은 불멸의 아름다움, 부와 명예를 상징합니다. 그는 이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 반짝이고 빛나는 그림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때 유럽 전역에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도 결합했습니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예술'이란 뜻으로, 정형화된 전통 예술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양식을 만들기 위한 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섬세한 곡선, 우아한 여성, 아름다운 꽃과 자연 등이 아르누보 양식에 해당합니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황금 장식과 아르누보 양식이 결합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클림트 그림 중 가장 많은 양의 금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르누보 양식의 곡선도 두드러집니다. 아델레의 몸 전체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뤄져 있죠. 덕분에 마치 황금빛 여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클림트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그림에 인물 내면의 심리를 담아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작품에도 아델레의 숨겨진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아델레는 기품 있으면서도 강인한 여성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감추고 싶은 사실이 한 가지 있었는데요. 어릴 때 사고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크게 다친 겁니다. 그림에서 아델레가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고 있는 것은 오른손의 장애를 감추려는 모습입니다. 클림트는 얼굴을 제외한 대부분을 황금 장식으로 표현했지만, 손은 그대로 그렸습니다. 아픔을 숨기려 하기 보다,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을 담아 표현한거죠. 클림트는 아델레의 초상화를 두 번 그렸는데요. 영화에 나온 1907년 작품, 5년 후인 1912년에 그린 작품입니다. 그가 초상화를 두 번 그린 인물은 아델레가 유일합니다.
두 장의 초상화 이외에 다른 작품에도 아델레가 등장합니다. '유디트' 속 인물이 바로 아델레입니다. 이 그림에선 아델레의 모습이 매우 관능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클림트와 아델레가 연인 관계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영화는 실제 이 소송의 진행 과정과 결과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아델레는 세상을 떠나며 페르디난트에게 클림트가 그린 그림들을 전부 오스트리아 정부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나치가 이 그림들을 전부 몰수해 갔습니다.
종전 직후 페르디난트는 세상을 떠나며 그림의 소유권을 조카들에게 넘겼는데요. 그중 한 명인 알트만은 그림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그림 자체에 대한 소유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나치의 위협으로 가족을 뒤로한 채 미국으로 급히 망명해야 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아껴주었던 숙모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찾고 싶었던 거죠. 알트만이 제기한 소송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림은 알트만에게 반환됐습니다. 그림의 주인이 아델레가 아닌 남편이었다는 판결이 난 겁니다. 실제 그림을 요청한 사람도, 그림의 값을 지불한 사람도 페르디난트였으니까요.
이후 이 그림은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미국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 창업자의 아들 로널드 로더가 2006년 1억3500만 달러(당시 1297억원)에 작품을 사들였기 때문입니다. 클림트 애호가였던 그는 역대 최고가로 이 작품을 낙찰 받았습니다.
알트만은 판매 조건으로 그림이 대중에게 공개될 것을 내걸었고, 로더는 이를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작품은 로더가 공동 투자한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됐고,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난 법적 소유권 문제가 아닙니다. 그 속에 담긴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며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 나아가 모두가 함께 그 사실을 되새기며 그림의 감동을 나누고 간직한 것에 주목해야겠죠. 그래서인지 작품 속 황금빛이 더욱 눈부시고 찬란하게 다가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