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법적 성격이 다른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 통합, 가능한가
입력
수정
지면S7
정부가 문제의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별도 직역 연금의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보건복지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 들어 있다. 국민연금은 2056년 전후로 기금이 고갈된다는 위기의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고, 공무원연금 등은 이미 거덜나 국민 세금인 정부 예산에서 매년 지원하는 상황이니 통합해서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얼핏 그럴듯하지만, 아주 편의적인 발상이다. 문제는 이름만 같은 연금을 쓸 뿐, 이들의 법적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사회적 부조’ 시스템이어서 기금이 고갈돼도 현행법 테두리에서는 나랏돈에서 지원할 근거가 없다. 사학연금도 마찬가지다. 반면 공무원과 군인연금은 각각의 독립된 법에 따라 연금가입자에 대한 정부의 지급 의무가 명시돼 있다. 여러 법 개정이 불가피한 어려운 과제를 정부가 국회에 던졌다. 통합은 타당한가.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역시 적자가 심각하다. 현직 공무원과 군인이 내는 보험료로 퇴직자의 연금 지급을 충당할 수 없어 재정에서 부족분을 메꿔준다. 매년 조 단위에 달하는 이 적자는 갈수록 커져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이 두 연금은 나라살림이 아무리 어려워도 정부가 지급해줘야 한다. 모두 노후생활 보장 시스템이라는 측면이나 재정 지원에 대한 요구·압력이 크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 모두를 통합하도록 국민 공감대를 모을 필요가 있다. 국회가 법을 개정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지급이 보장된 연금을 국민연금이나 사학연금의 재정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통합한다면 퇴직 공무원과 군인들이 동의할까. 국민연금이 가입자 숫자만 내세워 통합을 강요·압박하는 것은 공정과 정의에 맞지 않고 법리에도 어긋난다. 사학연금까지 끼워넣는 것도 문제다. 법적으로 지급이 보장된 진짜 연금까지 이름만 연금인 것에 강제로 통합한다면 개별적 부실덩어리를 한데 모으는 것 이상의 의미도 없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찬성] 미룰 수 없는 연금개혁, 한 테이블 올려야…성격 달라도 국민 공감하면 가능
연금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의 중대한 과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입자 수가 2235만 명에 달하는 국민연금 개혁이다. 당분간은 가입자가 늘고 연금보험료도 쌓여가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연금 지급액이 더 커져 2056에는 기금이 고갈될 위기다. 기금 고갈 예상 시기는 계속 앞당겨져 2057년이 됐다가, 2022년도의 새 추계로 또 1년 앞당겨졌다. 문재인 정부 때 국민연금 개혁을 회피한 채 국회로 문제를 떠넘겼으나 유야무야된 결과다. 국민연금이 바닥나도 정부의 지급 의무는 없지만, 많은 국민의 노후가 달린 것이어서 정부가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직장가입자에게 가입을 법으로 강제한 마당이다.사립학교 교사·교수 등 교직원이 가입하는 사학연금도 같은 구조여서 2033년에는 적자로 돌아선다. 사학연금은 사립학교 교직원과 학교재단이 분담해 보험료를 내고 연금을 받는 것이어서 정부와 직접 관련은 없다. 하지만 교사들이 주장하는 교육의 공공성이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요구를 감안할 때 따로 떼어놓고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들 직역 연금이 부실해진 것도 단순히 연금제도의 설계 잘못이라기보다 급격한 고령화로 연금 수령기간이 늘어난 게 큰 요인이다.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역시 적자가 심각하다. 현직 공무원과 군인이 내는 보험료로 퇴직자의 연금 지급을 충당할 수 없어 재정에서 부족분을 메꿔준다. 매년 조 단위에 달하는 이 적자는 갈수록 커져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이 두 연금은 나라살림이 아무리 어려워도 정부가 지급해줘야 한다. 모두 노후생활 보장 시스템이라는 측면이나 재정 지원에 대한 요구·압력이 크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 모두를 통합하도록 국민 공감대를 모을 필요가 있다. 국회가 법을 개정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반대] 명칭만 연금, '사회적 부조'와 '진짜 연금'…각각 개혁이 실현 가능성 높아
연금이라는 명칭만 같을 뿐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어서 통합 자체가 불가능하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적자가 나고 재원이 없어도 정부가 지급하도록 법에 정해져 있다. 반면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부조 시스템이다. 재원이 없으면 그걸로 끝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정부가 지원해주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으나 불발됐다. 국민연금 미가입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컸다. 또 막대한 부족분을 혈세로 지원해주면 모자라는 정부 재정을 메꾸기 위해 세금을 더 걷어야 하니 결국 마찬가지가 된다.대신 정부는 국민연금이 그 자체로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책임을 회피한 5년마다의 국민연금 재정추계 의무가 그것이다. 개혁방안은 가입자들이 연금보험료를 더 내고, 시기적으로 더 늦게, 금액으로는 덜 받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보완적으로 연금기금의 운용수익률을 올리는 방법도 물론 중요하다.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도 재정 지원을 줄이려면 자체 개혁을 해야 한다. 역시 공무원들이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은 덜 받는 쪽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연금도 군인연금도 기존의 연금 수령자의 연금을 줄이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자발적 고통분담이 아니라면 소급입법이 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지급이 보장된 연금을 국민연금이나 사학연금의 재정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통합한다면 퇴직 공무원과 군인들이 동의할까. 국민연금이 가입자 숫자만 내세워 통합을 강요·압박하는 것은 공정과 정의에 맞지 않고 법리에도 어긋난다. 사학연금까지 끼워넣는 것도 문제다. 법적으로 지급이 보장된 진짜 연금까지 이름만 연금인 것에 강제로 통합한다면 개별적 부실덩어리를 한데 모으는 것 이상의 의미도 없다.
√생각하기 - 부실만 모아 미래세대에 넘겨선 곤란…'더 내고 덜 받기'가 고통스러운 해법
연금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 법적 성격이 다른 시스템을 통합하려는 발상의 오류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수령자가 스스로 연금을 적게 받겠다고 하지 않는 한 실익도 없다. 연금 수령 시기와 금액을 그대로 두면서 하는 통합은 부실의 덩치만 키울 뿐이고, 정부의 지급 의무 대상만 확대하게 된다. 연금별 개혁방안도 이미 제시돼 있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은 특히 ‘더 내고 덜 받기’ 외에는 답이 없다. 그러면서 선진국 연금처럼 기금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공무원·군인연금은 신규 가입자 및 보험료를 내는 현직의 본인 부담을 확대하면서 기대(예상) 연금액을 줄여야 재정부담이 최소화된다. 사회에 막 진출하는 신규 가입자를 통폐합할 수는 있지만, 이 역시 기여분을 어느 쪽으로 나눠줄 것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다. 복잡한 사안을 행정 편의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미래 세대 부담 경감이 핵심 쟁점이다.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