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술 전문성 갖추고 인문학 이해하는 초융합 인재 필요"

글로벌 인재포럼 자문회의

기업이 교육시스템에 직접 참여해 변화 이끌어야
디지털 전환 빨라질수록 윤리 교육 더 중요해져
원자력·조선 등 고부가산업 전문인력 양성도 시급
장상윤 교육부 차관(가운데)이 지난 26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22’ 자문위원 정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부와 대학, 기업, 연구기관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은 대전환 시대를 맞아 정보기술(IT), 인문학, 예술 등을 아우르는 융복합 인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허문찬 기자
2022년은 ‘대전환의 해’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탈세계화, 기후위기, 반도체 패권 전쟁 등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미래 세대는 어떤 세상을 맞이하게 될까.

오는 11월 2일 개막하는 세계 최대 HR포럼 ‘글로벌 인재포럼 2022’를 앞두고 지난 26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자문위원 정례회의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은 글로벌 패러다임 전환과 이에 따른 인재상 변화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자문위원들은 “기존의 낡은 교육 시스템으로는 대전환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강한승 쿠팡 대표는 “이제는 물류산업도 인공지능(AI), 드론, 모빌리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한국의 교육이 이 같은 융복합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디지털 전환으로 초연결·초융합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며 “4차 산업혁명의 최전방에 있는 기업이 교육 시스템에 직접 참여해 변화를 이끌고 대학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IT·인문학 융복합 인력 필요

정부와 대학, 기업, 연구기관 등 각계를 대표하는 자문위원들은 이날 회의에서 융복합형 인재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과학기술에 전문성을 갖고 인문사회, 국제 정세 등을 연계해 이해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특정 전공에 국한되는 수직적·전문적인 현재 교육을 수평적 연계 교육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단순 문·이과 통합을 넘어 다양한 분야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하는 인재가 필요하며, 이런 융복합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강 대표는 “융복합 시대에 맞는 인재 채용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 같은 인재를 국내 대학에서 찾는 것이 쉽지 않다”며 “쿠팡의 채용이 해외 인재와 경력직 중심인 이유”라고 설명했다.협업 능력도 대전환 시대의 인재에 꼭 필요한 자질로 꼽혔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은 “단군 이래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우수한 스펙을 갖춘 인재들이 쏟아지고 있다”면서도 “일의 성과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협력 소통 배려 존중 등에서 나오기 때문에 인문학과 인성 교육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승환 연세대 총장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소통하고 정보를 접하며 자신의 생각에 맞는 정보만 편식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로 인한 사회 갈등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서 총장은 “주변 사람들과 진심으로 협업하며 개인의 재능을 사회와 공유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인성 교육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진택 고려대 총장은 “인재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윤리관”이라며 “인재들이 이직하며 경쟁사나 다른 국가에 기술을 유출하는 원인 중 하나는 윤리 교육을 소홀히 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있다”고 지적했다.홍원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은 “유튜브 등 SNS로 세계적인 석학의 강의를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시대에 대학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 제공해야 하는 교육 방향은 결국 인성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재들을 수년간 키워놨더니 이직한다’는 기업들의 고민도 인성 중심 교육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역인재 확충 방안도 고민해야

경제계 자문위원들은 최근 이슈가 된 반도체 분야뿐 아니라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인재 부족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반도체와 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석·박사급 고급 인력을 육성하는 동시에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대폭 줄어든 원자력 인력과 조선 산업의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전문 인력 양성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 부문별로 인재를 균형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손병환 농협금융그룹 회장은 “최근 기후위기 등으로 식량 안보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지만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이 20%도 안 되는 농업 빈곤 국가”라며 “반도체 등 첨단 산업뿐 아니라 기초 산업과 지방의 인력 확충 방안도 고민할 때”라고 했다.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청년들이 지방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실태를 고려해 외국인 고용허가제 쿼터 확대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AI와 메타버스를 중소기업에 전파할 방안도 강구해 달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미국의 올린공대는 도요타, 포드, 화이자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수억달러를 들여 4학년 학생들이 기업 프로젝트에 여러 번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며 “국내 기업들도 대학이 우수한 인재를 공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혁신 시작은 대학 규제 타파

교육혁신 방안에 대한 의견도 다양하게 제시됐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대학에선 공급자 위주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데다 학생 선발 관련 규제가 많아 우수 인재를 길러내는 수월성 교육이 이뤄질 수 없는 환경”이라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과 교육 자치 등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동렬 성균관대 총장은 “등록금 인상 규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대학 교육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어렵다”며 “융복합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AI나 데이터 사이언스를 필수 강의로 만들고 싶지만 수입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변화를 도모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저출산 시대에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원장은 “초저출산 시대에서는 성인 인구가 전체의 75%인 만큼 아이뿐 아니라 성인을 위한 평생 교육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사회 전체 차원에서 필수”라고 말했다.자문위원들은 최근 세계의 화두로 떠오른 기후위기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남성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대구보건대 총장)은 “세계는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겪으며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점점 깨닫고 있다”며 “초등부터 대학까지 생애주기별 의무교육을 통해 미래 인재들에게 환경 보호에 대한 의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했다.

최만수/노유정/정의진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