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길' 될까…차기대권 발판, 당권 거머쥔 이재명

대선 패배 후 5개월여만에…원내 입성 거쳐 '巨野 당수'로
'성공한 당 대표' 여부가 '대권주자 이재명' 운명 좌우할 듯

더불어민주당 이재명(58) 신임 대표가 28일 8·28 전당대회에서 가볍게 당권을 거머쥐며 '거야'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지난 3·9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0.73% 포인트 차이로 분루를 삼킨 뒤 6·1 재보선을 통해 '초선'으로 국회에 입성한지 두달여만에 당권을 거머쥔 것이다.

이 대표는 '개딸'들로 대변되는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고 초반부터 독주 체제를 구가, 일찌감치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을 넘어 '확대명'(확실히 대표는 이재명)을 굳혔고 아무런 이변 없이 결승점에 도착했다.

이로써 이 대표는 차기 대권으로 가는 교두보를 확보했으나, 이번 도전을 통해 다시 한번 중대 시험대에 오르게 된 셈이다. 그 성과에 따라 대표직 수행이 대선 직행 티켓이 될 수도, '독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당 대표를 거쳐 다음 대선에서 승리했던 '문재인의 길'이 될지, 대선 패배 후 곧바로 야당 총재가 됐다가 낙선한 '이회창의 길'이 될지는 현재로선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방탄' 논란을 빚었던 당헌 개정 과정 등에서 빚어졌던 당내 계파 갈등 극복과 사법 리스크 해소, 총선 승리 등 적지 않은 고비들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 대표 본인도 지난달 17일 전대 출마 선언 당시 "많은 분이 저의 정치적 미래를 우려하며 당 대표 도전을 말렸다.

저 역시 개인 정치사로 보면 위험한 선택임을 잘 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대표는 그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걸어왔다. 학교도 가지 못한 채 소년공으로 일해야 했던 흙수저 출신으로, 가난에서 탈출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학을 해 인권변호사가 됐다.

이후 정치권에 투신해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거치며 정치적 체급을 키워오다 대권주자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초접전 싸움에서 아쉽게 패했고, 6·1 지방선거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여의도에 복귀했다.

한때 '변방의 장수'로 불리던 이 대표는 이제 정치의 가장 중심에서 169석 거대 야당을 이끌며 총선 승리 등 정권 교체의 기반을 다져야 하는 중책을 안게 됐다.
경북 안동의 가난한 화전민 가정에서 5남 4녀 중 7번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 남들이 다니는 중학교에 가는 대신 공장에 취직했다.

시계공장에서는 스프레이 작업을 하다가 후각이 상했고,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는 프레스에 왼팔이 끼이는 골절상을 당해 팔이 구부러진 평생 장애를 안게 됐다.

공장 내 구타에도 시달렸던 이 대표는 이런 삶에서 탈출하려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어 관리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해 검정고시를 쳤다.

주경야독 끝에 검정고시를 통과, 장학금을 받고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시절 5.18 민주화운동에 관해 공부하며 공익적인 삶을 살기로 했다고 한다.

1986년에는 사법고시(연수원 18기)에 합격했다.

연수원 동기로 인연이 닿은 4선의 정성호 의원은 정치적인 여정을 함께하는 동지가 됐다.

연수원을 마치고는 성남에서 개업해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했고 시민운동의 길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2005년 8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그는 2006년 지선에서 성남시장 후보로 공천을 받았으나 낙선했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쓴맛을 봐야 했다.

이후 2010년 성남시장에 다시 도전해 당선된 뒤 2014년 재선에 성공하는 등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첫 시장 임기 시작 11일 만에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등 파격적인 시정 운영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재선 성남시장 시절에는 정부와 각을 세워가며 청년 배당, 무상 교복, 공공산후조리 지원 등 정책을 추진했다.

이 시기 그가 추진한 보편적 복지 정책들은 훗날 기본소득 등 그의 대표적인 정책 브랜드인 '기본 시리즈'로 이어졌다.

2016년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는 '사이다 발언'으로 팬덤을 형성하며 정치적 존재감을 단숨에 키웠다.

2017년 민주당 경선에도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당시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친문 진영과 경쟁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은 현재까지도 일부 상처로 남아있다.
경기도정을 이끌면서는 기본 시리즈 정책을 구체화하며 대권 재도전을 준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정부의 방역지침에 협조하지 않는 신천지에 대한 강제 역학조사를 지시하는 등 강경·소신파 행보를 이어갔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 당국과 각을 세우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을 주장하기도 했다.

선명한 노선을 발판으로 지지기반을 넓힌 이 대표는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도 과반 득표에 성공하며 결선투표 없이 집권여당의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부동산 민심, 높은 정권교체 여론, 그리고 대선 막바지에 터져 나온 부인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의 악재로 인해 석패했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 후 암중모색의 시기를 갖던 역대 대선 후보들의 '문법'을 깨고 6·1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선거에 바로 도전해 정치권에 복귀했다.

당장 여권에서는 '사법리스크 방탄용'이라는 공세가 이어지는 당 안팎에서 비판론이 적지 않았지만, 차기를 기약하기 위해선 '0선'의 한계를 딛고 원내에 입성, 여의도내 기반을 탄탄히 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자로 출마해 권리당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박용진 후보를 간단히 제압하고 대표가 됐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이 밟았던 '대선패배→원내입성→당권→총선 승리→대권'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당내에 마땅한 차기 대권 라이벌은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지만, 당 대표의 성패 여부가 대권 재도전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한 당 대표'로 남는데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내 김혜경 씨와 2남.
▲ 경북 안동(58) ▲ 중앙대 법과대학 ▲ 사법연수원 18기 ▲ 경기도 성남시장 ▲ 19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 경기도지사 ▲ 20대 대선 민주당 후보 ▲ 민주당 상임고문 ▲ 21대 국회의원(인천 계양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