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盤陀石(반타석), 李滉(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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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盤陀石(반타석)李滉(이황)
黃濁滔滔便隱形(황탁도도변은형)
安流帖帖始分明(안류첩첩시분명)
可憐如許奔衝裏(가련여허분충리)
千古盤陀不轉傾(천고반타부전경)
[주석]
盤陀石(반타석) : 모양이 널찍하기는 하나 평평하지는 않은 바위를 뜻하기 때문에, 비교적 넓고 평평한 바위를 의미하는 순수 우리말인 “너럭바위”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따로 번역하지 않고 “반타석”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黃濁(황탁) : 누런 탁류(濁流), 곧 누런 흙탕물. / 滔滔(도도) : (물이) 도도하게 흐르다. / 便(변) : 문득, 바로. / 隱形(은형) : 모습을 숨기다.
安流(안류) : (물이) 편안히 흐르다, 고요히 흐르다. / 帖帖(첩첩) : 평온한 모양. / 始(시) : 비로소, / 分明(분명) : 분명하다, 환히 드러나다.
可憐(가련) : 가련하다, 어여쁘다. / 如許(여허) :이처럼, 이만큼, 그처럼, 그만큼. / 奔衝裏(분충리) : 달려와 부딪는 (물결) 속에서.
千古(천고) : 천고에, 천고토록. / 不轉傾(부전경) : 구르거나 기울지 않다.[태헌의 번역]
반타석
누런 흙탕물 도도할 때는
문득 모습 숨기더니
고요히 흘러 평온할 때면
비로소 환히 드러나네
어여뻐라, 그처럼
달려와 부딪는 물결 속에서도
천고토록 반타석이
구르거나 기울지 않은 것이!
[번역 노트]
이 시는 퇴계(退溪) 선생이 환갑이 되던 해인 1561년에 지은 <도산잡영(陶山雜詠)> 18수 가운데 한 수이다. 그리고 반타석은, 낙동강의 상류가 되는 한 물줄기가 도산서원이 있는 산언덕 근처에 이르러 큰 소(沼)를 이룬 탁영담(濯纓潭) 가운데에 있었으며, <도산잡영> 기문(記文)에서 “배를 매어두고 술잔을 돌릴[繫舟傳觴(계주전상)]”만하다고 하였으니, 이 반타석이 소백산(小白山) 죽계구곡(竹溪九曲)에 있다거나 청량산(淸凉山) 축융봉(祝融峰)에 있다고 하는 견해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역자는 이 시를 대학원 시절에 처음으로 읽어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떤 경로로 이 시를 접하게 되었던 건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시를 보자마자 거의 자동적으로 ≪논어(論語)≫ <태백(泰伯)>편에 실린, 아래 구절과 같은 공자(孔子)의 말씀을 떠올렸던 기억은 또렷하기만 하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몸을 드러내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몸을 숨겨야 한다.[天下有道則見 天下無道則隱]
혼탁한 세상은 도(道)가 없는 세상이므로, 몸을 숨기는 것이 군자(君子)의 도리이다. 마치 반타석이 흙탕물이 거셀 때는 모습을 숨기듯이 말이다. 흙탕물이 다 사라지고 맑은 물이 고요히 흐를 때면, 그제야 반타석은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 보인다. 도가 있는 치세(治世)가 되면 군자가 세상에 나와 쓰이기를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시의(詩意)는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는, 공자께서 들려주신 ‘은현(隱現)의 도리’ 그 이상의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거센 탁류(濁流)는, 흐르는 길에 놓인 거의 모든 것을 무지막지하게 쓸어가 버리거나 위치를 바꾸어 놓기 십상인데, 반타석만은 굴러가거나 기울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군자라면 노도(怒濤)와 같은 세파에도 자기의 자리를 알아 그 어떤 흔들림도 없이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말하자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에는 본성(本性) 외에도 본위(本位)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때가 되면 물러나는 것도 기실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지금의 자리가 자신에게 이롭다고 해서 그 자리를 끝까지 고집하는, 다시 말해 이제는 더 이상 자기 자리가 아닌 데서 그 자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런 군상(群像)들을 볼 때면, 역자는 애처롭다 못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는 한 마디로 반타석을 배워 반타석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우리에게 권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억겁의 세월을 두고 수천 번, 수만 번의 탁류를 겪으면서도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킨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일까만, 그러고 있는 바위가 있듯이 그러고 있는 사람 또한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에 죄를 짓지 않고 세상에 훌륭한 덕업(德業)을 남기는 것이, 바로 영원을 사는 저 반타석이 되는 일일 것이다. 공자나 퇴계 선생과 같은 분들이야 말로 바로 반타석과 같은 존재가 아니겠는가!
30여 년 전에 읽어본 이 시를 다시금 감상해보노라니 불현듯 음풍농월(吟風弄月)이나 일삼는 시인들은 절대로 이런 시를 짓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념이 철학이 되고 철학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이런 시가 지어질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일흔 번이 넘는 출사(出仕) 요청에도 번번이 거절하며 제자리에서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던 선생을 생각해보노라면, 정계나 재계에 줄을 대 한 자리 꿰어 차보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이른바 무늬만 학자인 군상들 또한 애처롭다 못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타석은 지금 안동호(安東湖)로 일컬어지는 인공호수 아래에 있다. 흙탕물은 아니라 할지라도 깊은 물속에 잠겨 더 이상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으니, 반타석이야 바위라서 아무 생각도 없겠지만, 그 옛날 선현의 자취를 떠올리며 마주하고 싶은 후인의 마음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다른 곳에 있는 반타석이라도 대신 찾아 감상하며 그 무상한 세월과 허허로움을 달래보고 싶다. 어느 반타석에 앉아 홀로 한 잔 술이라도 기울일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는 않으리라.
역자가 오늘 소개한 이 시는 칠언절구(七言絶句)로 그 압운자가 ‘形(형)’, ‘明(명)’, ‘傾(경)’이다.
2022. 8. 30.<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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