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임지영·황수미…푸른 눈의 감독이 본 'K클래식 돌풍'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K클래식 제너레이션'

벨기에 감독 티에리 로로 작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중계 PD
2012년 '한국 음악의 비밀' 촬영
"그땐 한국인 참가자 많아 신기해
이번엔 우승 휩쓰는 비결 궁금"

K클래식 성공은 '부모 희생' 덕
어릴때부터 각종 대회 출전 지원
"한명의 클래식 연주자 탄생 과정
일종의 가족 프로젝트와 같아"
영화 ‘K클래식 제너레이션'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연주회를 마치고 팬들에게 사인해주는 장면.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소프라노 황수미…. 클래식 음악의 변방에 가까웠던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은 어떻게 세계 주요 국제 콩쿠르를 석권했을까. 오는 31일 국내 개봉하는 벨기에 감독 티에리 로로(사진)의 다큐멘터리 영화 ‘K클래식 제너레이션’은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의 시선으로 ‘한국의 클래식’을 바라본다.

유럽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K클래식

티에리 로로는 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클래식 음악 전문 프로듀서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1996년부터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중계를 담당해 왔다. 이 콩쿠르는 쇼팽 피아노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클래식 음악 콩쿠르’로 꼽힐 정도로 권위 있는 음악 경연대회다.

로로가 한국 클래식 음악과 음악가들을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은 것은 2012년 ‘한국 음악의 비밀’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개봉을 앞두고 방한한 그는 지난 26일 서울 사당동에서 한 인터뷰에서 “첫 번째 다큐멘터리를 찍을 땐 주요 국제 콩쿠르 참가자 중 한국인이 유독 많아서 그 이유를 찾고자 했다”며 “이후 단순히 참가자가 많은 것을 넘어 콩쿠르에서 한국인 우승자가 쏟아지는 등 성과를 내는 것을 보면서 다시 궁금증이 생겨 두 번째 영화를 찍게 됐다”고 말했다.

로로는 2019년 7월부터 12월까지 한국과 독일 등을 오가며 영화를 찍었다. 이번 작품에는 2014년과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황수미와 임지영, 2015년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 2018년 영국 위그모어홀 국제 현악사중주 콩쿠르에서 우승한 에스메 콰르텟 등 젊은 한국 음악가 8명의 이야기 및 심층 인터뷰를 담았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은 그를 가르친 프랑스 교수의 인터뷰 및 자료 화면을 통해 조명했다.이 영화가 꼽은 ‘K클래식’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바로 ‘부모의 희생’이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일약 스타로 떠오른 한국 클래식 연주자의 뒤엔 어린 시절 음악 교육부터 각종 대회 출전까지 부모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공로가 크다는 것이다. 로로는 한국에서 한 명의 클래식 연주자가 탄생한다는 것은 일종의 ‘가족 프로젝트’와 같다고 설명한다. 임지영의 부모는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에서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딸이 우승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소프라노 황수미도 가장 큰 조력자로 부모를 꼽는다.

기계적인 예전 연습 생활에서 벗어나 예술적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젊은 지도자와 연주자가 클래식에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모습도 그린다. 영화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 음대 등 국내 대표 음악 교육기관의 교육 방식을 분석하며 학생들의 개성과 매력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지도 방식을 조명한다. 국제 무대에서 성과를 내는 클래식 스타들을 롤모델로 삼는 학생들의 모습도 비춘다.

클래식 애호가와 관객층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젊다는 점도 ‘K클래식’의 강점으로 꼽는다. 조성진이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입국할 때 공항에 젊은 팬들이 모여들었다. 황수미가 무대에서 내려오거나 모교(서울대 음대)를 돌아다닐 때 학생들의 사진 촬영과 사인 요청이 쏟아진다. 유럽 공연장에선 이처럼 젊은 관객과 열성 팬을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 속 인터뷰에 응한 유럽 음악가들은 입을 모아 “클래식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콩쿠르 우승만이 정답일까

다만 70여분의 러닝타임을 관통하는 ‘K클래식=콩쿠르 우승’이란 방정식은 때때로 관객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쇼팽 콩쿠르 우승이 꿈”이라고 말하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고 찾기 힘들다. 어린 시절부터 작은 연습실에서 10시간 넘게 한 악보만 반복해 연주하게 하거나, 부모의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 등이 과연 정답에 가까운 것인지 의문을 남긴다.

로로는 한국 클래식이 콩쿠르에서 입상하기 위한 교육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에 대해 “영화는 주로 콩쿠르에서 성과를 낸 연주자들이 지금까지 어떤 여정을 거쳐 왔는지를 탐구했다”며 “한국의 모든 클래식 연주자의 이야기를 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영화를 찍으며 만난 연주자들은 어린 시절의 혹독한 교육을 훌륭한 연주자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