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누가, 왜…수상한 '9조 해외송금' 진실은? [여기는 논설실]

사진=뉴스1
9조원대에 가까운 수상한 해외송금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구마처럼 줄기를 따라 새로운 의혹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런 큰 돈을 시중은행을 통해 해외로 빼돌렸는 지가 사건의 핵심입니다. 암호 화폐를 통한 신종 환치기라는 주장부터 비자금 세탁설, 대북 송금자금설까지 의혹이 중구난방입니다. 특히 이전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의 관련 여부에 관심이 쏠립니다.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어떤 경우든 국내 암호화폐와 외환시장의 치부가 드러난 만큼 획기적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슈를 정리해봤습니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사건

이번 사건은 지난 6월 우리·신한은행이 자체 내부 감사에서 드러난 수상한 해외 송금건을 금융감독원에 자진 보고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금감원 조사 과정에서 혐의 거래 규모가 당초 신고 금액 20억2000만달러(약 2조7000억원)보다 배 가까운 33억9000만달러(약 4조500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이 후 KB국민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등 다른 은행으로 조사가 확대되면서 그 액수는 다시 65억4000만달러(8조8000억원)가 됐습니다. 여태까지 드러난 것만 이렇습니다. 앞으로 조사가 더 진행되면 얼마가 될 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진상 파악을 위해 금융감독원은 물론이고 금융정보분석원(FIU), 검찰, 국정원, 국세청까지 금융 관련 사정당국이 총동원된 이유입니다.

조직적 범죄 혐의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① 해외송금 자금이 대부분 국내 암호화폐거래소를 통해 나왔고 ② 이 돈이 무역거래 대금 형식으로 세탁돼 송금됐으며 ③ 송금이 2021년2월부터 2022년 6월까지 1년반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같은 범죄가 상당히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해당 자금은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여러 개인 명의 계좌를 거쳐 22개 법인명의 계좌로 흘러간 후 무역법인을 통해 홍콩·중국·일본·미국 등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송금 과정에 동원된 계좌들이 특정인 또는 그의 친인척 명의로 돼 있는 등 한갈래일 가능성이 큽니다. 무역거래 대금이지만 기본인 신용장 개설도 없이 사전송금 형태로 이뤄졌고, 자본금이 1억원도 안되는 신생법인이 조 단위 무역대금을 송금한 것 등도 특정 조직의 조직적 범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입니다.

누가 주범인가

주도 세력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의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습니다. ①암호화폐 환치기 세력

국내 암호화폐 시세와 해외 시세의 차이를 노린 환치기 세력의 범죄 행각에 국내 은행권이 놀아났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한국의 암호화폐 투자 광풍으로 해외보다 시세가 10%, 최대 20% 가량 높게 형성되는 것을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합니다. 거기다 한국은 암호화폐 거래 관련 과세가 2025년 이후로 미뤄져 있습니다. 차익 거래와 과세상의 이점을 노리고 해외 환치기 세력들이 암호화폐를 국내 거래소에서 판매한후 그 자금을 무역거래 형태를 가장해 해외로 반출했다는 겁니다.국내 은행들은 신용장도 없는 거액의 무역대금 거래를 중재하면서 금융당국에 신고도 안했습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런 해외송금을 했든 국내 은행들에 대한 대규모 제재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②북한 또는 테러단체 관련설환치기 세력의 조직적 범죄도 문제지만 더 큰 우려는 북한이나 마약집단 또는 테러단체 등의 주도 가능성입니다. 국제사회 경제 제재로 외화벌이가 어려워진 북한이 암호화폐 채굴과 해킹 등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북한이 해외서 확보한 암호화폐를 국내서 현금화해 회수한 것 아니냐는 의혹입니다.국정원도 그런 가능성을 주목하고 내사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적 금융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한국에서 그런 대범한 우회송금을 시도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③정치 비자금 등 불법자금 세탁설

주목되는 부분은 새 정부의 사정 드라이브입니다. 이미 직전 문재인 정권의 강제 북송·서해 피살·원전 조작 등 세 가지 의혹을 조사중인 새 정부가 수상한 해외 송금과 이전 정권간 연관성에 대해 혐의를 잡고 사정 당국을 총동원해 조사를 밀어부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국회서는 이미 정치 비자금 세탁설이 제기된 상태입니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확실히 밝혀지지 않다 보니 정치 비자금이다, 북한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각종 불법 자금이 외국으로 나갔을 것 등 여러 소문이 돈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의 조사는

주도 세력을 밝혀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자금원을 확인하려면 송금받은 해외법인과 그 배후까지 수사해야 하는데 홍콩 중국 등과의 실질적인 공조 수사를 장담하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설사 공조 수사가 이뤄지더라도 해당국에서도 이미 돈 세탁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커 실체를 규명하는데는 적잖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당장 불똥은 해외송금에 가담한 국내 시중은행들에게 튈 가능성이 큽니다. 금감원은 이미 지난 5월 하나은행의 외환거래 미신고 및 증빙서류 확인 의무 위반 사례를 적발해 과징금(4990만원)과 정릉지점의 업무 일부를 4개월 정지하는 제재를 내린 바 있습니다. 대구지검도 지난 11일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외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유령 법인 관계자 3명을 구속했습니다. 부실한 내부통제를 이유로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에 대한 제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수상한 해외 송금 사실에 대해 해당 금융기관의 자진 신고전에는 낌새를 감지하지도 못하고, 일이 터지고서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금융 당국의 무능에 대해서도 자성과 함께 책임있는 개선의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박수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