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원 전쟁' 격화…마트 바이어는 1주일간 서해를 훑었다

고물가에 숨가쁜 바이어들

입소문 난 이마트 '800원 꽃게'
전국 500km 돌며 100t 확보

홈플러스 불티난 캐나다 삼겹살
베테랑 바이어의 물량 확대 적중

롯데마트 주력상품 'B+ 과일'
농가에서 숙식하며 판매 설득
경쟁사보다 저렴하게 상품을 공급하기 위한 대형마트 3사 바이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류재현 이마트 수산 바이어(왼쪽부터), 신한솔 롯데마트 과일 바이어, 김민기 홈플러스 축산 바이어가 현장에서 각자 담당한 농수축산물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각사 제공
고물가 시대에 경쟁업체보다 조금이라도 싸게 상품을 선보이기 위한 대형마트 바이어들의 움직임이 숨 가쁘다. 대형마트 3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존심을 걸고 최저가 경쟁을 선언하면서 유통업계에서 ‘10원 전쟁’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어들 사이에는 ‘남보다 단 10원이라도 싸게 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쟁의식이 가득하다.

전국 누비는 바이어들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에서 캐나다산 돈육 판매량은 이달 들어 24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이 삼겹살은 100g당 1624원(홈플러스 멤버십 할인가 기준)으로 국산 삼겹살(2195원)에 비해 26% 저렴하다.

삼겹살 가격이 급등한 여름 휴가철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는 게 홈플러스 측 설명이다. 홈플러스가 재미를 볼 수 있었던 데엔 김민기 축산 바이어가 큰 역할을 했다.

김 바이어는 여름 휴가철 성수기를 앞두고 국산 돼지고기 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중대 결정을 했다. 국산보다 저렴한 캐나다산 돼지고기 계약 물량을 전년 대비 다섯 배 이상 늘린 것이다. 예상만큼 팔리지 않으면 재고 부담을 안고 가야 하는데도 15년간 현장을 누비며 쌓은 감을 믿었다.최근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마트의 꽃게 행사는 이수정 꽃게 바이어의 기획 결과물이다. 올해는 늦장마로 꽃게 생육에 적합한 어장 환경이 조성됐다.

이 바이어는 가을 꽃게 어획량이 많이 늘 것으로 예상되자 이달 초 1주일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인천을 시작으로 태안, 보령, 부안, 진도 등 서해안을 따라 차로 달리며 산지에서 햇꽃게 조업을 준비하는 선주들을 만났다.

수년간 쌓아온 인맥을 총동원해 중간 위탁판매 과정을 생략한 직거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마트는 이 바이어가 확보한 100t의 꽃게를 마리당 800원대에 팔고 있다. 2015년 이후 최저 판매가다.이마트에선 최관용·류재현 이마트 수산 바이어의 활동량도 만만치 않다. 각자 맡은 어종인 참다랑어와 고등어를 저렴하게 판매하기 위해 제주, 삼천포는 물론 통영에서도 40분가량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욕지도까지 제집처럼 드나든다.

롯데마트는 크기가 조금 작거나 흠이 있지만, 맛의 차이는 A급과 별 차이 없는 B+ 과일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롯데마트 B+ 과일의 매입을 맡은 사람은 신한솔 과일 바이어다.

신 바이어는 최근 나주와 천안, 전주, 상주 등 전국의 배 산지 10여 곳을 돌았다.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배를 매입하기 위해 나주에선 사흘 동안 숙소를 잡고, 숙식을 해결하며 농가를 설득했다. 그가 확보한 B+급 배는 ㎏당 3000원대로 A급 배(4500원대)에 비해 30%가량 저렴하다.

뜨거운 마트 10원 전쟁

바이어들이 이처럼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싼 가격이 주 무기인 대형마트가 더는 인플레이션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돌면서다. 생활필수품을 주로 판매하는 대형마트는 인플레이션 타격을 다른 업태보다 비교적 덜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물가가 지금보다 더 오르면 소비자들이 아예 지갑을 닫아버릴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우려다.

쿠팡 등 ‘유통 공룡’으로 성장한 e커머스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되찾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CEO들도 “경쟁사에 져서는 안 된다”며 최저가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10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바이어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며 “신선식품 담당의 경우 전국의 산지를 손바닥 보듯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세계 주요국 산지 현황까지 섭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