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유죄 판결이 배상금 확 줄였다

론스타 청구금액의 4.6% 2800억만 배상 '선방'

4가지 쟁점 중 3가지 기각
HSBC에 매각 무산은 판단 안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1일 론스타 소송 판정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론스타와 10년에 걸쳐 진행했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에서 약 280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정을 받았다. 일부 승소, 일부 패소가 섞인 판정이지만,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약 6조3000억원)의 4.6% 규모라는 점에서 ‘선방’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론스타 측 주장 중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팔 때 한국 정부가 거래가격 인하 압력을 넣으며 매각 승인을 지연시켰다’는 내용 중 일부만 받아들였다.

○‘승부처’ 매각 지연 논란서 선방

매각 지연 논란은 이번 ISDS의 핵심 쟁점이었다. 특히 론스타와 HSBC 간 거래가 무산됐을 때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론스타 측은 “금융당국이 국내 법령에 규정된 심사 기간 안에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함에도 부당하게 매각 승인을 지연해 거래가 무산됐다”며 공세를 펼쳐왔다. 한국 정부는 “당시 론스타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의혹 등 대주주 적격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심사 연기는 정당했다”고 맞섰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소속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부하 검사였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복현 금감원장 등과 함께 외환은행과 론스타 측을 기소했다.

중재판정부는 이 쟁점에 대해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이 발효된 2011년 3월 27일 이전에 발생한 행위이기 때문에 우리 관할이 아니다”며 론스타의 주장을 기각했다. 론스타는 벨기에 법인을 내세워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한국 정부는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 거래에 개입했다는 공격도 잘 방어해냈다는 평가다. 중재판정부는 “공정·공평대우 의무 위반”이라며 정부에 손해배상금 지급 판정을 내렸지만 론스타 측의 책임도 동시에 인정했다. 중재판정부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의 유죄판결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매각 가격이 떨어진 데엔 론스타 측에도 50%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중재판정부 내부에서도 “한국 금융당국의 승인 심사 지연은 론스타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엔 책임이 없다”는 소수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판단을 바탕으로 론스타의 손해 규모는 떨어진 매각가격 폭(4억3300만달러)의 절반인 2억1650만달러로 정해졌다.

○세금 쟁점서도 승리

정부가 론스타에 세금을 매긴 결정에도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정부는 외환은행 매각 후 론스타가 이 거래를 통해 얻은 차익과 국내 부동산 등에 투자해 거둔 수익금 약 4조6000억원에 대해 세금 8500억원을 부과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거래 주체인 벨기에 법인은 한국-벨기에 이중과세방지협정에 따른 면세 혜택을 받는데도 한국 정부가 부당한 조치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벨기에 법인은 조세 회피 목적으로 세워진 실체 없는 ‘도관 회사’기 때문에 실질 과세 원칙을 적용했다”는 정부 주장이 먹힌 셈이다. 중재판정부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과세 처분으로 자의적·차별적 대우에 해당하지 않으며 투자보장협정상 의무 위반도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론스타는 손해배상액에 따라붙는 한국 및 벨기에 세금 약 21억8850만달러도 한국 정부 측이 부담하라고 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래에 부과될 세금까지 감안해 판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중재판정부의 입장이다.

○정부 “한 푼도 못 낸다”…불복

정부는 판정 취소나 집행정지 신청 등을 통해 끝까지 다투겠다는 방침이다. 항소 절차가 없는 일반 중재와 달리 ICSID에는 불복 절차가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중재판정부 소수 의견이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을 봐도 끝까지 다퉈볼 만하다”며 “피 같은 세금이 단 한 푼도 유출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진성/최한종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