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멈추고 쓰레기 수거도 못할 판"…발칵 뒤집힌 日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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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최대 상용차 히노, 엔진성능 검사 부정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이 트럭 부족으로 택배와 편의점 상품 공급, 쓰레기 수거가 멈출 위기에 처했다. 일본 최대 버스·트럭 제조사인 히노자동차에서 엔진 성능검사 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부분의 트럭이 판매 중지됐기 때문이다.
주력 2t 트럭 포함 대부분 차종 판매중단
납품업체 8542곳·종업원 51만명 타격
"소형트럭 많이 의존하는 수도권 물류 영향"
日 대기업 검사부정 2016년 이후 13건
폐쇄적인 조직문화에 연례행사처럼 반복
히노자동차는 2t과 4t 중소형 트럭에서도 엔진 성능검사 부정이 발견돼 출하를 중단한다고 지난 22일 발표했다. 오기소 사토시 히노자동차 사장은 "엔진의 열화 내구력 시험에서 배출가스 측정회수가 부족했는데도 합격 처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소방차·쓰레기차도 못 만든다
올 초 히노자동차는 대형 트럭과 버스에서만 성능검사 부정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소형 트럭에서도 부정이 발견되면서 거의 대부분의 트럭 판매가 중지됐다. 출하정지 대상에 오른 차량은 총 64만대다. 판매를 중지함에 따라 일본 제조공장의 60%는 가동을 중단했다.이로 인해 히노그룹의 납품업체 8542곳, 종업원 51만877명이 타격을 받게 됐다고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분석했다. 히노자동차의 모회사인 도요타의 도요타 아키오 사장도 이날 "극히 유감"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도요타 등 일본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상용차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기 위해 설립한 합작법인 커머셜재팬 파트너십 테크롤로지스(CJPT)는 24일 히노자동차를 제명한다고 발표했다. 도요타 사장은 "히노가 550만명에 달하는 일본 자동차 산업 종사자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히노자동차는 일본 최대 상용차 회사다. 2021년 상용차 시장 점유율은 38%였다. 이스즈, 미쓰비시후소, UD트럭스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화물업계는 특히 주력 모델인 2t 트럭 히노듀트로의 판매 중지를 우려하고 있다. 도심 지역 택배와 편의점 상품 운송, 쓰레기차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스즈메 다카오 도쿄트럭협회 부회장은 WBS에 "중소형 트럭 의존도가 높은 도쿄와 수도권 지역의 편의점 배송 등 물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소비자의 비용 부담도 늘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용하는 소방차와 쓰레기차 등 특장차 공급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일본 소방차의 60%를 공급하는 모리타홀딩스는 "지자체의 소방차와 쓰레기차 납기일을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모리타홀딩스는 특장차의 기반 차량 대부분을 히노자동차로부터 조달한다. 고객인 지자체 상당수는 상용차 1위인 히노자동차를 지정해서 특장차를 주문하기 때문이다. 매년 예산안을 짜는 지자체들은 회계 상반기인 4~9월 소방차 등 특장차를 주문한다. 이 때문에 모리타홀딩스의 납기는 회계 하반기인 10월부터 이듬해 3월에 집중된다.
덤프트럭과 쓰레기차 등을 제작하는 교쿠도개발공업도 "기반 차량이 부족해 출하가 정지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교쿠도개발공업도 전체 차량의 40%를 히노자동차로부터 공급 받는다.
행정 서비스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소방차와 쓰레기차의 납기가 늦어지면 노후차량 교체 등 지자체의 조달계획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예상했다.
닛산·미쓰비시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도
히노자동차의 신차 판매가 중지되면서 중고 트럭 가격도 이미 30% 올랐다. 트럭 부족이 심각해 지면서 신형 트럭은 1년, 중고 트럭은 6개월을 기다려야 차량을 인도받을 수 있다.트럭이 부족해 택배와 편의점, 쓰레기 수거, 소방 등 일상생활이 타격을 받는 사태는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일본 대기업들의 검사 조작과 관련이 깊다. 2016년 이후 일본 대기업의 검사 데이터 조작은 확인된 것만 13건에 달한다. 매년 대기업 2곳 꼴로 검사 조작이 발각되는 셈이다.닛산자동차, 미쓰비시자동차, 도레이, 미쓰비시전기, 스바루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모두 검사 부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본 기업의 검사 데이터 조작이 유독 잦은 원인으로는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지적된다. 구성원이 철저한 연공서열에 따라 오랜 기간 같은 부서에서 일하다 보니 부정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분위기의 지배를 받는다는 지적이다.경영지원 전문 회사인 IGPI그룹의 도야마 가즈히코 회장은 "마을 공동체 같은 조직문화와 시간·인력 부족이 겹치면서 최고경영진이 사태를 알았을 때는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진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