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재난의 교훈

오명숙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msoh@hongik.ac.kr
8월 8일, 월요일 오후 10시께였다. 양조업으로 충북 공장에 내려가 있는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관악구에 있는 건물이 침수됐다고 한다. 깜짝 놀라 서둘러 집에서 출발했다가 곧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 방향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드는 방배역 사거리를 지나 점점 커지는 공포심에 차를 돌렸다. 억수 같은 비를 뚫고 새벽에 도착한 남편은 건물에서, 나는 집에서 밤을 새웠다.

어렵게 구한 펌프 두 대로 수요일 새벽까지 물에 잠긴 지하실의 물을 퍼낼 수 있었다. 가구, 책, 가전제품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된 지하실은 이들을 꺼내기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다른 집 폐기물을 처리하는 업자를 만나 섭외할 수 있었다. 목요일 아침 일찍부터 5명의 인력이 투입돼 폐기물을 큰 트럭 3대에 가득 싣고 떠났다. 너무 힘들어 물에 젖은 책들은 꺼낼 수 없다고 하고 가 버렸다. 금요일, 그나마 건진 물건들을 정리했다. 금속이나 플라스틱 등 씻을 수 있는 것들은 씻어 말리고 버릴 것은 버렸다. 오후에는 지원 나온 군인들 덕분에 젖은 책도 모두 꺼낼 수 있었다.재료공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맨’이었던 남편이 기업에서의 경력을 마무리하고, 어떻게 보면 엉뚱한 양조업을 구상하면서 지하실을 사무실 겸 실험실로 꾸몄다. 바닥을 깔고 내벽도 세우고,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창고를 2개나 만들고 부엌도 설치했다. 여기서 발효를 하고, 증류 실험도 하면서 사업을 준비했다. 시간이 가면서 커다란 회의 탁자와 의자를 들여놓고 나는 여성과학자들과 그룹스터디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대학에서 은퇴하면서 연구실 개인 가구를 이곳으로 옮겨놨다. 소파는 세탁까지 했다. 미국에서부터 가져온 철제 파일 캐비닛도 구석에 자리 잡았다. 이 모든 것을 폐기 처분해야 했다. 주방가구조차 모두 뜯어 버렸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크고 작은 많은 일을 겪으면서 재난은 누구도 비켜 가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번 배웠다. 그때마다 내가 이렇게 했다면 하는 후회를 수없이 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우리가 무엇을 미리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골목의 이웃들이 담담히 대처하는 모습에서도 힘을 얻었다. 무엇보다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것에 안도했다.

일뿐만 아니라 물건에도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공간을 채워나갔던 어리석음을 반성했다. 완전히 비워진 지하실은 홀가분함도 준다. 앞으로 우리가 가구를 다시 산다면 야외용 테이블과 의자를 사자고 남편과 농담했다. 하지만 서로 말은 안 해도 우리 둘 다 앞으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이 공간을 다시 채우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