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악'이라던 기재부 중대재해법 연구용역, 文정부가 발주했다

내용도 지난해 11월 작성된 고용부 해설서와 같아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첫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기재부와 노동계·야당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노동계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윤석열 정부와 기재부가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선임 되면 최고경영책임자(CEO)의 책임이 면제되는 내용의 개선 방향을 고용부에 전달하며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연구용역은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의 필요성을 느낀 당시 문재인 정부가 대선 전에 발주한 것으로 나타났다.노동계가 비판하고 있는 기재부 연구용역의 '경영책임자의 해석'과 관련된 내용도 이미 지난 11월 고용부가 발간한 중대재해법 해설서와 동일했으며, 심지어 연구자도 같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이라는 비판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재부 연구용역, 기존 고용부 해설서와 같은 내용

중대재해법의 핵심인 경영책임자의 정의, 처벌 범위에 대한 규정은 시행령이 아닌 법률로 규정된 사항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기재부가 시행령을 통해 중대재해법을 바꾸려한다"고도 집단 성토에 나섰다.

공개된 연구용역 내용은 노동계의 비판과는 거리가 있었다. CEO의 책임과 관련한 내용을 시행령이 아닌 '법 개정사항'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기재부가 법 개정을 통해 경영책임자의 책임 범위를 제한했다는 비판도 다소 사실과 달랐다.

연구용역서가 공개한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대한 '개선 방안'은 고용부가 지난 11월 내놓은 '중대재해법 해설서'와 일치했다. '기재부발 개악'으로 보긴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기재부 연구용역은 "사업 내 조직, 인력, 예산에 관해 최종적인 결정권한을 가지고 사업을 총괄하는 사람(CEO)이 원칙적으로 책임을 지되, 산업안전 관련 조직·인력·예산에 관해 독자적으로 최종적인 결정 권한 가진 사람을 경영책임자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 관련 최종 결정자를 경영책임자로 본다는 의미다. 고용부 해설서도 경영책임자의 의미에 대해 "안전 및 보건 업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면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경영책임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기재부 연구용역이 "형식적인 명칭만 CSO로 정해둔 경우엔 경영책임자로 볼 수 없다"며 확장 해석을 경계하고 있는 것도 고용부 해설서와 일치한다.

고용부 해설서 작업에 참여한 한 노동법 교수는 "연구용역의 해당 내용만 보면 고용부 해설서와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안전보건과 관련해 최종 책임을 지는 자가 경영책임자라는 해석은 법 시행 전부터 고용부의 일관된 견해"라고 설명했다.기재부의 의견 전달도 정식 서류가 아닌 이메일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재부의 개입이라고 까지 표현할 만한 정황은 없었다"고 말했다.

기재부 연구용역의 발주도 올해 대선 전인 문재인 정부 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용역을 감수한 비교노동법학회 관계자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해 줬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2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해당 연구용역이 문재인 정부 시절인 올해 1~2월 진행됐다면서 이를 새 정부의 친기업 행보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어설픈 대처…노동법학계 "황당"

이런 가운데 기획재정부가 적극 해명하는 대신 봉합하려는 모습만 보여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기재부는 돌연 1일 논란이 된 연구용역 자료에 대한 비공개 방침을 바꾸고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실에 공개했다. 이마저도 제본해서 한정수량만 제공한 탓에, 환노위 일부 의원실은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의원실로부터 '비공개 서약'을 받기도해 보좌진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적극적인 해명 자료를 제공하진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런 기재부의 미흡한 대처를 노동계 등이 공략하면서,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건설적인 논의가 막히고 타 부처들마저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고용부도 해당 연구용역을 입수하지 못하고 간접적으로만 접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노동법학계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노동법학자는 "기재부가 본인들이 감당해야 할 비판을 연구용역을 수행한 학자에게 전가하는 듯한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기재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관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월에는 최저임금 결정 구조 이원화와 관련해 기재부가 연구를 진행하고 직접 개선 방안을 발표까지 한 바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이번엔 공식 서면도 아닌 이메일로 부서 의견을 전달한 기재부에 '개입'이라는 표현을 쓰며 성토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