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이 참모에게 물었다…"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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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독거노인·장애인 찾은 尹"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조직화된 목소리 못 내는 사람이 약자"
'넓고 얕은 복지'보다 '취약계층 두텁게'
민간 통한 사회서비스 혁신에도 방점
윤석열 대통령이 한 참모에게 던진 질문이라고 합니다. 참모가 한참 생각하자 윤 대통령은 "장애가 있는데 부모가 없는 아이, 이런 사람들이 제일 불쌍하지 않겠느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사람들은 누가 대변할 것이냐"라고 다시 물었다고 합니다. 이같은 생각이 구체화된 단어가 바로 '약자 복지'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약자 복지라는 말을 처음 꺼냈습니다. 참모가 써준 게 아닌 대통령 본인의 언어라고 합니다.
자유와 연대의 기초가 되는 이 복지에 관해서 그동안 이런 정치 복지보다는 약자 복지로,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어려움을 한목소리로 낼 수 없는 그런 약자들을 찾아서 이분들의 어려운 삶을 배려하겠다고 국민 여러분께 말씀을 드려왔다. 복지정보시스템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주거지를 이렇게 이전해서 사시는 분들에 대해서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8월 23일 대통령 출근길 회견)
조직화되지 목소리 못 내는 이들 돕는 게 '약자 복지'
'약자 복지'는 윤 대통령의 복지 철학을 설명하는 하나의 기둥입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진정한 약자이고, 이들을 국가가 먼저 나서서 돌보는 것이 '약자 복지'"라고 설명합니다.윤 대통령이 반대 의미로 사용한 '정치 복지'를 이해하면 그 뜻을 이해하기 더 쉽습니다. "정치 복지는 노동조합 등을 통해 조직화된 방식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지"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입니다. 최근 윤 대통령의 행보는 약자 복지가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서울 역삼동 충현복지관을 방문해 발달장애인과 부모 등을 격려했습니다. 지난달 30일에는 다문화·한부모 가족센터를 찾았습니다. 지난 1일에는 서울 창신2동에서 '위기가구 발굴 체계 강화를 위한 현장 간담회'를 개최하고 기초수급생활자인 한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발달장애인·다문화가정·독거노인의 공통점은 정치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정치 복지를 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선거를 겨냥한 '현금성 복지'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는 재정을 통한 무분별한 돈 뿌리기를 지속해 왔다"며 이를 '현금 살포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철학은 다수 유권자에게 보편적인 복지를 제공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한다는 데 가깝습니다. 대통령의 한 참모는 "보편 복지를 하려면 한정된 재원을 얇고 넓게 펼쳐야하는데 그보다는 소수 사회적 약자들에게 두툼한 지원을 한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복지 기조"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내년도 예산안에 △최대 월 70만원 부모 급여 △기초연금 단계적 인상(월 30만원→40만원) 등 현금성 급여 확대가 포함된 것은 이같은 기조와 일부 배치됩니다.
尹 "종교·대학·시민사회 함께하면 재정 효과 몇배 커질 것"
윤석열 정부의 복지를 지탱하는 또다른 축은 '민간 사회서비스 시장 확대'입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직접 사회 취약계층에게 지원했던 사회서비스를 일부 민간 시장의 몫으로 돌리겠다는 구상입니다. 사회서비스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간병·가사·간호·보육·교육·노인수발 등에 대한 현물 지원을 말합니다.덴마크의 정치학자 에스핑 앤더슨은 저서《복지 자본주의의 세 가지 체계》를 통해 복지국가를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각각 북미(미국·캐나다 등)권, 중유럽(프랑스·독일 등), 북유럽(스웨덴 등) 국가들이 이 분류에 해당합니다.
이 중 자유주의적 복지국가는 복지 급여를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하고, 사회복지 전달체계에서 민간의 역할이 극대화합니다. 반대로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는 전 국민에게 보편적 권리로서 복지를 제공하고 국가의 역할을 중시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복지 체계는 '자유주의적 복지국가'에 가깝습니다. 민간을 통한 사회서비스 전달 비중을 확대하고 저소득층에 복지 급여를 집중한다는 점에서입니다.
'사회서비스 혁신 펀드'는 민간 사회서비스 혁신을 위한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입니다. 내년에 신설되는 이 펀드는 100억원 규모로 혁신적인 사회서비스 공급기관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고 사회서비스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사용됩니다.
사회서비스원 역시 민간 사회서비스 혁신을 위한 중추적인 기관 중 하나입니다. 사회서비스원은 앞서 언급한 간병·가사·간호·보육·교육·노인수발 등 현물 복지를 민간 기업이 잘 전달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는 기관입니다. 쉽게 말해 정부는 사회서비스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닌 '플랫폼' 역할을 맡는다는 것입니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생활 사회서비스 투자사업을 위한 예산 212억원이 반영됐습니다. 윤 대통령의 '충현복지관 방문'도 민간 사회서비스 혁신을 강조하는 행보의 일환입니다. 충현복지관은 충현교회가 중심이 된 종교 기반의 복지시설입니다. 기존에 정부가 운영하던 복지서비스 전달 체계를 대학·종교·민간 기업 등으로 확장한다면 그 사회서비스가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충현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가족과의 간담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뜻을 같이 하고 계시는 종교단체라든지, 대학이라든지, 많은 전문가그룹 또 시민사회에서 이런 일을 함께 관심을 갖고 해주신다면 정부가 재정을 쓴다고 해도 그 효과가 아마 몇 배 더 커지지 않겠나"라고 했습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