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에서 배워야 할 디지털 생태계

"알리바바·텐센트 플랫폼 활용해
지속 가능한 창업 생태계 구축
소상공인도 유통망 편입 '주목'"

곽주영 연세대 경영대 교수
바야흐로 지식을 만들어내는 연구개발(R&D) 활동이 기업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뤄지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벤처가 이런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의 좋은 예다. 예전에는 연구 결과를 기업 안에서 상업화하고 돈을 벌면 다시 기존 수익모델을 강화해 후속 기술에 재투자했다. 그러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회사 안의 지식을 바깥 파트너와 연구 협력하거나 회사 밖의 지식을 내부로 들여오는 등 현재 지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분야 중 하나는 디지털 산업이다. 플랫폼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참여자들은 서로 협력하며 지속 가능하게 성장한다. 구세대의 비즈니스 모델이 각자의 경쟁력에 기반한 개별적 성장이라면 비즈니스 생태계는 상호 협력을 기반으로 공동의 성장을 도모한다. 성장 모델의 획기적 전환이다. 이런 점에서 대형 플랫폼이 많은 중국의 경험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산당 집권과 사회주의 규제 속에서도 디지털 유니콘 기업이 계속 생기고 플랫폼 기업이 증가하는 역설적 상황이다.중국의 디지털 생태계는 알리바바와 텐센트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텐센트는 자사가 투자한 핀둬둬(Pinduoduo·多多)를 텐센트의 플랫폼을 이용해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시켰다. 핀둬둬는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이며, 텐센트 플랫폼은 트위터와 유사하다. 텐센트는 자사 플랫폼에 핀둬둬를 노출시키고 플랫폼 사용자들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으로 핀둬둬를 광고하는 방식으로 홍보했다. 이 전략은 곧 성공을 거뒀고 핀둬둬는 농촌지역에서 높은 매출을 올려 유니콘 기업이 됐다. 텐센트는 자사와의 네트워킹 혜택 외에도 허베이성 랑팡시에 벤처타운을 조성해 창업 공간을 제공하는 등 생태계 형성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이 벤처타운 입주 자격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생태계의 또 다른 축인 알리바바는 흔히 볼 수 있는 영세한 소규모 슈퍼 등 소상공인 소매업자와 연결돼 있다. 중국 역시 월마트나 RT마트 같은 대형 외국계 마트와 로컬 슈퍼마켓 체인, 그리고 편의점이 증가하면서 동네 소매상권 자영업자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이들 자영업자는 소정의 기술료를 알리바바에 지급하면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플랫폼인 티몰에 입점할 수 있다. 동시에 알리바바는 티몰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소매 자영업자에게 일정 범위 지역 내에 거주하는 오프라인 소비자가 현재 어떤 제품을 필요로 하는지 알려준다. 이렇게 플랫폼과 빅데이터, 인공지능이라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되 이 과정에서 영세사업자와 소상공인이 소외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통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디지털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사회 영역에 대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국의 디지털 기업들은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인정받는 데 매우 노력을 기울이는데 사회주의 경제라는 제도에서 거대 기업으로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선 정당성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의 인정과 존경이 없으면 어느 정도 부를 모을 수는 있으나 국가의 기업 리더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점점 치열해지는 경영 환경에서 현재의 위치가 얼마든지 다른 기업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을 이들 기업은 잘 인지하고 있다.

경영 전략적 측면에서는 플랫폼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거나 창업 투자를 성공시키려고 하는 것이므로 여러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는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각자도생 시대에 이런 디지털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반기업 정서가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귀감이 될 만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