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시·보도자료 제각각…신뢰 잃은 K바이오

임상 실패 공시 후 '성공' 발표
'아전인수'식 해석 사라져야

이우상 바이오헬스부 기자
“급성췌장염 후보물질의 임상 1·2a상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했다.”

바이오벤처 에스씨엠생명과학은 지난 1일 급성췌장염 줄기세포치료제(SCM-AGH) 임상 결과를 공시하면서 이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함께 배포했다. 회사 측은 “성공적인 임상 결과는 당사의 원천기술 가치를 입증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도 했다. 하지만 공시 이후 이 회사 주가는 30% 급락했다.에스씨엠생명과학은 공시에서 SCM-AGH의 임상 결과가 1차 및 2차 유효성 평가지표 중 2차 평가지표만을 만족했다고 밝혔다. 통상 임상에선 대표 지표인 1차 유효성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하면 실패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 회사는 “1차 유효성 평가지표와 2차 유효성 평가지표는 병렬적인 지표로서 독립적인 1차 평가지표”라고 공시했다. 회사 측은 이를 근거로 임상시험이 성공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병렬지표는 흔치 않은 표현이다. 임상계획 승인 때부터 설정된 지표였는지 따져봤다. 임상시험 승인을 해준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중요한 평가기준은 1차 평가지표”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 회사 측도 “임상시험계획 신청 단계에서 사전 논의한 내용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결과적으로 회사 측이 자의적으로 1차 및 2차 평가지표가 병렬적인 지표라고 설정했다는 얘기다.

이 회사는 유효성이 확인된 평가지표를 1차 지표로 내세워 다음 임상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임상 단계에서 평가지표가 바뀌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신약 효능을 평가하는 데 어떤 기준이 유리할지 개발단계에서 100%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스씨엠생명과학이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은 이유는 따로 있다. 임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앞뒤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먼저 임상 실패를 인정하고 그 이후 임상 계획을 설명했더라면 오히려 시장의 신뢰를 샀을지도 모른다. 실패한 임상을 덮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는 인상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임상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건 국내 바이오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다. 지난 7월 압타바이오는 1차 유효성 평가지표를 만족하지 못했다는 공시를 내면서도 보도자료를 통해선 임상 성공을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박셀바이오도 경쟁력을 잃은 후보물질을 정리하면서 ‘임상 결과는 좋았다’고 자의적으로 평가한 문구로 시장 혼선을 키웠다. 임상이 7년 가까이 지지부진한 데다 경쟁 제품 대비 효능이 부족하다는 업계의 평가와 달라서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바이오 기업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