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 "어디부터 손을 댈지"…청주 곡창지대 벼 초토화

이삭 영그는 벼 80% 드러누워…일손 없어 복구작업 엄두 못 내
"50년 넘게 농사지으면서 이런 태풍은 처음 봅니다. "
6일 충북 청주 오창읍 곡창지대에서 만난 박모(83) 씨는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논바닥에 쓰러진 벼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1만여㎡의 벼 중 80%가량이 성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쪽으로 차곡차곡 드러누웠다.

푸릇푸릇한 이파리 사이로 영글어 가던 벼 이삭도 누군가 억지로 바닥을 향해 찍어 누른 듯 고개를 처박은 상태다. 힘겹게 버티고 선 벼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작은 바람에도 크게 휘청거렸다.
초강력 태풍이 북상한다는 소식에 박씨는 전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최근 잦은 호우로 벼의 키가 웃자란 상태여서 조금 센 바람에도 버티기 어려워 보여서다. 박씨는 "매년 이맘때 태풍이 불어닥치지만, 이번처럼 직격탄을 입힌 적은 없다"며 "수확까지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20%도 건지기 힘들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엎어진 벼는 제때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썩거나 싹이 돋아 못쓰게 된다.

그렇다고 축구장만 한 크기의 논을 휘젓고 다니며 엎어진 벼를 일으켜 세울 일손도 없다. 박씨는 "당장은 그저 지켜봐야 할 뿐 뾰족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이번 태풍으로 청주에는 5∼6일 이틀간 111.9㎜의 비가 내렸다.

최대 순간풍속 초속 17.7m의 강풍도 몰아쳤다.
주변 농가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피해를 줄이려면 쓰러진 벼를 하루빨리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번 태풍에 1만㎡의 벼가 쓰러지는 피해를 본 이모(74) 씨는 "물에 젖어 무거워진 벼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며 "힘 좋은 군 장병 1개 중대가 달라붙더라도 며칠은 걸릴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충북도는 피해 농가 복구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현재 시군별로 농작물 피해조사가 진행되는 중"이라며 "피해가 집계되면 공무원, 자원봉사자 등이 총동원돼 일손 돕기에 나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