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72만명인 1994년생, 이들이 아이 낳을 환경부터 만들어라"
입력
수정
지면A8
줄어드는 인구, 소멸하는 한국“인구 문제는 1994년생이 아이를 낳게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향후 5년이 100년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11)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인터뷰
인구 많은 94년생, 출산기 진입
그들이 아이 낳게 되는 3~5년이
인구감소 문제 해결할 '골든타임'
X세대 중심 저출산 정책 바꿔야
'인구 채우기식' 이민자 확대 반대
2030년엔 정년 65세로 연장 필요
정부, 지역 89곳에 균등 지원보다
생존 가능한 곳에 집중 투자해야
한국을 대표하는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사진)는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구 문제를 풀 핵심 연령대로 1994년생을 꼽았다. 1994년엔 72만 명이 태어나 지금의 3배를 훨씬 웃돈다. 이 연령대가 본격 출산을 하게 되는 앞으로 5년간이 한국의 인구 문제를 좌우할 것이란 게 조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단순히 출산과 보육에 초점을 맞춰온 정책이 이제는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인구와 미래 전략 TF(태스크포스)’ 공동 자문위원장을 맡기도 했다.▷왜 1994년생입니까.
“현재 출산 연령대를 지나고 있는 1988~1990년생은 60만 명 정도가 태어났습니다. 남아 선호 사상이 남아있을 때라 여성 비중은 낮았죠.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이 조금만 생겨도 출생아 수가 20만 명대로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1994년에는 72만 명이 태어났어요. 이 중 여성은 33만 명이었죠. 이들이 출산하게 되는 3~5년간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인구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출산과 보육 중심의 패러다임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는 현재의 저출산 정책은 ‘X세대’에 맞춰져 있습니다. 양성평등 교육을 한다면서 ‘집안일을 남편이 도와주면 출산을 더 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를 언급하는 수준이죠. 하지만 지금은 당연히 가사를 분담하잖아요. 지금 상황에는 맞지 않는 내용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저출산 대책이 ‘Z세대’에 맞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출생아 수를 얼마나 늘릴 수 있을까요.
“예전처럼 40만~50만 명까지 늘어나는 것은 어렵습니다. 5년간 정책이 성공적으로 작동할 경우 출생아 수는 28만~29만 명 수준까지 증가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과거의 출생아 수에 따라 정해진 미래에 가깝습니다.”
▷그런 미래가 정해진 원인은 무엇입니까.
“1970~1980년대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서울과 수도권으로 온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자녀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정부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편 것도 영향을 줬죠. 그 결과 1980년대 출생아 수가 크게 줄었고, 그들이 자녀를 낳는 지금 인구 문제가 극대화된 것입니다.”▷미래를 바꾸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구 정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 합니다. 저출산을 해결하자는 식의 접근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인구 문제를 보육과 여성 문제만으로 보는 것도 곤란합니다. 인구는 이뿐만 아니라 가족, 교육, 도시, 국방 등 모든 문제에 영향을 받습니다. 저는 인구의 개념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어떤 개념이 필요한가요.
“우리는 인구가 줄었다고 말할 때 ‘행정구역에 등록된 사람’을 기준으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교통이 발달하고 생활 권역이 넓어지면서 이 같은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중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주말에는 강원 양양에 가서 이틀간 서핑하면서 노는 젊은이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존의 인구통계로 보면 양양은 고령화로 침체돼 소멸을 걱정해야 할 도시지만 주말에는 활기가 넘치는 젊은 도시입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4~5일 근무하고 금요일에 서울 집에 가 2~3일 지내는 공무원은 세종시민일까요, 서울시민일까요? 이런 생활인구 차원으로 인구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는 행정구역 단위의 지역소멸 대응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방식에 반대합니다.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89곳의 인구감소지역에 균등하게 예산을 투입해 모든 지역을 살릴 수 있을까요? 해당 지역의 지자체장은 그러기를 원하겠지만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용해서는 안 되는 방법입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지역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게 맞습니다.”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지역에 있는 대학을 40여 개로 줄여야 합니다. 180여 개 지방대를 그대로 두고 매년 10%씩 정원을 감축하라고 하는 것은 경쟁력을 높일 기회를 박탈하는 일입니다. 재교육을 통해 고령자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역할도 교육이 담당해야 할 부분입니다. 건축 분야도 도시 설계를 할 때부터 고령자가 많은 축소사회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민청 설립 논의가 한창입니다.
“이민청 설립에는 찬성합니다. 유입되는 외국 인력을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인구를 메우기 위해 이민자를 늘리자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먼저 어떤 외국인을 언제 더 유입시킬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합니다. 다만,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돌봄 인력에 한해서는 외국인을 좀 더 받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생산적인 일을 하고, 노인 돌봄 인력은 해외에서 찾는 것이지요.”
▷생산연령인구 부족, 어떻게 해야 할까요.“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2030년에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2030년이 되면 베이비붐세대의 마지막인 1970년생이 은퇴할 겁니다. 경제에 큰 여파가 발생할 겁니다.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미리 정년 연장을 예고하고 재교육 기회를 줘야 합니다. 임금피크제는 필요하지만 생산성에 완전히 연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률적으로 임금을 깎지 말고 성과를 더 내면 더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정년 연장은 연금 문제를 푸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