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엔선 뚫린 엔화…일본 실질소득 4개월째 '마이너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6일 뉴욕환시서 143엔선 무너져
하루만에 3엔 넘게 떨어지며 24년 최저
20년간 통화가치 하락폭 세계 1위
인플레 여파에 실질소득 4개월째 '마이너스'
식료품 가격만 2만5000개 품목 인상
전문가 "당분간 140엔대 계속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달러 당 엔화 가치가 143엔선 마저 무너지며 24년 만의 최저치를 이어갔다. 한달 만에 엔화 가치가 7% 가량 급락하면서 일본인들의 실질 급여소득이 4개월 연속 감소했다.

6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 당 엔화가치는 143엔대까지 하락했다. 1998년 8월 이후 24년 만의 최저치다. 140.5엔이었던 엔화 가치가 하루 만에 3엔 가까이 하락하며 141~143엔선이 차례로 무너졌다.

日경제 장기침체가 엔화에 반영

니혼게이자이신문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이날 발표한 8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예상을 웃돈 영향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경기 활황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확인됨에 따라 미국의 기준금리가 더 빠르게 인상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일본은행은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올릴 수록 두 나라의 금리차는 커지고 엔화를 팔려는 수요가 늘게 된다.달러 당 엔화 가치는 1개월새 9엔 떨어졌다. 달러 뿐 아니라 신흥국 통화에 대해서도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올들어 태국 바트화에 대한 엔화 가치는 10% 하락했다. 인도 루피와 브라질 헤알에 대해서도 각각 14%와 32% 떨어졌다.

엔화의 추락세는 경제가 파탄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 페소와 튀르키예(터키) 리라보다 가파르다. 일본 조사업체 도탄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엔화의 실질실효환율(통화의 종합적인 실력을 나타내는 환율)은 46.3% 하락했다. 60개 조사대상국 중 낙폭이 가장 컸다.

아르헨티나 페소(-28.9%)와 튀르키예(터키) 리라(-25.1%)보다 통화가치가 더 떨어졌다. 중국 위안화가 42.1% 오른 것과 대조적이었다. 고다마 유이치 메이지야스다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사히신문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엔저 정책을 지속한 결과"라며 "일본 경제의 오랜 침체가 통화 가치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기록적인 엔저(低)는 물가를 급등시켜 일본인들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노동통계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1인당 실질 소득은 4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7월 근로자 1인당 현금 급여 총액은 37만7809엔(약 365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증가했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1.3% 감소했다. 일본 물가가 4개월째 2% 이상 오른 탓이다. 사이토 다로 닛세이기초연구소 경제조사부장은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어 실질 임금이 당분간 2% 전후의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화 140엔대 안착 가능성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 따르면 9월 한 달간 2424개의 식료품 가격이 인상된다. 10월과 11월에도 6532개, 4588개가 오르는 등 올 한 해 동안 2만5000여개의 식료품 가격이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지금과 같은 엔화 약세가 계속되면 올해 일본인 가정은 80만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카이 사이스케 미즈호리서치&테크놀로지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9월 이후에도 140엔대의 환율이 이어지면 정부의 물가대책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올해 한 세대(2인 이상 가구) 당 지출 규모가 7만8000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간 수입이 900만엔 이상인 고소득 세대의 부담 증가율은 1%인데 비해 300만엔대의 저소득층 세대의 부담률은 2%로 두 배 더 컸다.

기업들도 엔저로 인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의 8월 조사에서 '엔저가 실적을 악화시킨다'는 기업이 80%를 넘었다. '실적이 늘어난다'는 기업은 10%에 그쳤다. 중소기업들이 주 회원인 경제동우회의 사쿠라다 겐고 대표는 "과거와 같은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가 사라진 일본에서 엔저는 마이너스 측면이 더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 전반에 고통을 주는 엔저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에노 쓰요시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당 엔화 가치가 145엔을 넘어 1998년 기록한 147엔에 다다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우에노 수석은 "미국이 물가억제를 목표로 내건 이상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도 낮다"며 "구두개입마저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투기 자본의 엔화 매도 공세가 거세질 것"이라고 분석했다.야마모토 마사후미 미즈호증권 수석 외환 전략가는 마이니치신문에 "Fed의 금리 인상이 계속될 전망이기 때문에 연말까지 달러당 엔화 가치가 142엔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