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치 넘은 비에 냉천범람으로 참극…배수시설 제역할 못해

하천 하류, 상습침수 지역엔 둑, 배수펌프 보강해야
국토연구원 "지하공간 침수방지시설 갖춰야"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경북 포항에 큰 피해를 준 것은 한계치를 넘은 많은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수해 방지 대책이나 상습침수지역 대비 등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인명피해와 관련해 지하주차장 침수를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 저지대 비 피해 집중…배수펌프장 문제
7일 포항시에 따르면 태풍 힌남노에 따른 집중호우로 포항에선 현재까지 9명이 숨지고 수천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비 피해는 포항철강산업단지를 비롯해 오천읍과 인덕동, 대송면, 중앙동 등 하천 주변 지역의 저지대에 집중됐다. 피해가 컸던 이유는 무엇보다 많은 비가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내렸기 때문이다.

포항에서는 6일에만 342.4㎜의 비가 내렸고 오천읍 일대에선 한때 시간당 100㎜ 안팎의 강한 비가 내렸다.

이번 태풍이 많은 비를 뿌리면서 오천읍을 지나는 냉천이 범람, 곳곳에 피해를 남겼다. 지하주차장에 갑자기 들이닥친 물로 많은 인명피해가 난 남구 인덕동 아파트단지도 냉천과 가까운 곳이다.

또 포항은 형산강 하구의 삼각주 지역이어서 비가 많이 내리면 배수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곳이다.

그런데도 배수펌프장 등 배수시설이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주장이 많다. 이번 태풍으로 26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대송면의 주민 김일천(56)씨는 "대송면 일대가 지대가 낮은 것도 있지만 배수 펌프장이 역할을 다 못한 게 이번 피해를 키웠다"면서 "펌프장의 구조적 문제로 비가 조금만 많아도 제 역할을 못 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당국에 수년 전부터 얘기했지만, 반영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연구원은 최근 '기후위기시대 도시침수 예방대책' 보고서를 통해 상습침수지역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이 지역에 방재성능 목표를 시간당 100㎜ 수준으로 높일 수 있는 대규모 빗물저류배수시설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상류에 댐·저수지 보강·건설 필요
이번 태풍으로 냉천 상류지역에 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냉천 상류에는 오어지가 있지만 홍수를 제어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포항시는 2017년 오천읍에 총저수량 530여만t 규모 항사댐 건설 추진에 나섰으나 반대에 부딪혀 추진하지 못했다.

환경단체는 "항사댐 위치가 활성단층인 양산단층과 직각으로 놓여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이번에 냉천을 중심으로 주변 둑이나 경사면 침식과 유실이 대거 발생하면서 상류에 물을 담아둘 댐이나 저수지를 보강·건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포항시도 이번 태풍으로 피해가 큰 남구 공단지역과 오천읍 일대 피해를 막기 위해 냉천 상류에 항사댐 건설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7일 밝혔다.
◇ 고향의 강 정비사업이 피해 키웠나
일부 주민은 냉천 고향의 강 정비사업이 비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포항시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고향의 강 살리기 사업을 통해 냉천을 정비한 바 있다.

대형 인명피해가 난 인덕동 아파트단지 주민들은 "오어지에서 물을 미리 방류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라거나 "냉천 고향의 강 살리기 사업 때문에 강폭이 좁아져서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인덕동의 한 주민은 "1995년부터 이곳에서 살았는데 한 번도 이런 피해가 없었다"며 "강 살리기 사업으로 없던 하천변 보행로를 만들면서 강폭을 줄여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소리를 높였다.

포항시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고향의 강 살리기 사업을 통해 강바닥을 준설함으로써 80년 빈도의 한계수량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80년 빈도인 시간당 77㎜를 넘는 100㎜ 안팎의 비가 내리는 바람에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 냉천 상류에 있는 오어지의 경우 태풍이 오기 전만 해도 심한 가뭄으로 바닥이 보일 정도였기 때문에 미리 방류할 일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하천 하류를 보호하기 위한 둑이나 옹벽을 더 높이 쌓고 보를 중간중간에 만들어 유속을 느리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지하공간 침수 방지시설 설치 의무화해야
아파트 주차장 인명사고와 관련해서는 관리 시스템 부족이란 의견이 많다.

국토연구원은 지하공간 침수 방지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2019년 신설된 방재공원의 설치 세부 기준을 마련하는 등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하주차장 배수시설을 충분히 확보하고 지하주차장 앞에 가변 물막이(차수판)를 설치하거나 저지대 아파트 출입로에는 모래주머니를 쌓아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차를 빼라고 한 안내방송이 시기를 놓쳤다는 의견도 많다.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지하 주차장에 물이 찰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숙지하고 차를 미리 지상에 세워둬야 한다. 또 지하 주차장 입구에는 물막이용 모래주머니나 구조물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