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비대위 만능'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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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권의 비정상적 관행과 행태가 툭하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것이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뒤 원내 1, 2, 3당 모두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것은 전례가 없다. 비대위는 말 그대로 비상 수단이다. 그런데 상습적인 비대위 가동은 우리 정당 시스템이 얼마나 부박한지 여실히 말해준다. 정치 4류임을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국민의힘이다. 보통 패배한 정당에 들어서는 비대위를 선거 3연승을 한 정당이 거푸 꾸리는 것은 해괴하다. 국민의힘은 비대위 만능 정당 소리를 들을 만하다.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아홉 차례 비대위를 꾸렸다. 김무성→정의화→박근혜→이완구→김희옥→인명진→김병준→김종인→주호영 비대위 체제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2016년 12월 이후 5년9개월 동안 절반가량을 비대위 또는 권한대행 형태로 운영했다. 당의 리더십에 구멍이 뚫렸고 체질이 허약할 대로 허약해졌다는 뜻이다.법원이 이준석 전 대표가 낸 비대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주호영 체제가 무너진 뒤 국민의힘은 오늘 또 비대위가 출범한다. 그러나 ‘비대위 시즌2’가 순탄할지는 미지수다. 이 전 대표가 이 건을 비롯해 건건이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예고하면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몇 개월째 아귀다툼으로 자책골을 넣으면서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종부세 부담 완화, 연금 개혁, 반도체 입법 지원 등 주요 현안을 여당으로서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비대위원장을 고르는 데도 애를 먹었다. 외부에서 찾다가 여의치 않아 다시 내부로 눈을 돌려 어렵사리 정진석 국회부의장을 낙점했다. 그 많은 소위 ‘중진’ 의원 중 당을 이끌 만한 사람을 고르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게 국민의힘이 처한 현주소다.
전당대회 때 분열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방탄엔 똘똘 뭉쳤다. 대통령 고발, ‘김건희 특검’ 등 연일 미사일, 대포를 쏘며 대여 투쟁에 나서는데 국민의힘은 지휘관도 없이 소총 들고 우왕좌왕하는 꼴이었다. 국민의힘 헛발질에 국민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정진석 비대위원장 체제마저 난파한 당을 정상화해 집권 여당 본연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면 국민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홍영식 논설위원
특히 주목되는 것은 국민의힘이다. 보통 패배한 정당에 들어서는 비대위를 선거 3연승을 한 정당이 거푸 꾸리는 것은 해괴하다. 국민의힘은 비대위 만능 정당 소리를 들을 만하다.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아홉 차례 비대위를 꾸렸다. 김무성→정의화→박근혜→이완구→김희옥→인명진→김병준→김종인→주호영 비대위 체제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2016년 12월 이후 5년9개월 동안 절반가량을 비대위 또는 권한대행 형태로 운영했다. 당의 리더십에 구멍이 뚫렸고 체질이 허약할 대로 허약해졌다는 뜻이다.법원이 이준석 전 대표가 낸 비대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주호영 체제가 무너진 뒤 국민의힘은 오늘 또 비대위가 출범한다. 그러나 ‘비대위 시즌2’가 순탄할지는 미지수다. 이 전 대표가 이 건을 비롯해 건건이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예고하면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몇 개월째 아귀다툼으로 자책골을 넣으면서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종부세 부담 완화, 연금 개혁, 반도체 입법 지원 등 주요 현안을 여당으로서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비대위원장을 고르는 데도 애를 먹었다. 외부에서 찾다가 여의치 않아 다시 내부로 눈을 돌려 어렵사리 정진석 국회부의장을 낙점했다. 그 많은 소위 ‘중진’ 의원 중 당을 이끌 만한 사람을 고르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게 국민의힘이 처한 현주소다.
전당대회 때 분열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방탄엔 똘똘 뭉쳤다. 대통령 고발, ‘김건희 특검’ 등 연일 미사일, 대포를 쏘며 대여 투쟁에 나서는데 국민의힘은 지휘관도 없이 소총 들고 우왕좌왕하는 꼴이었다. 국민의힘 헛발질에 국민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정진석 비대위원장 체제마저 난파한 당을 정상화해 집권 여당 본연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면 국민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홍영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