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역수지 적자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에너지 가격 급등에 '일시적 악화' 현상
한은 "경상수지 흑자 기조 이어갈 것"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
공직 입문 첫해인 1991년, 한국의 무역수지는 96억5000만달러(당시 GDP의 2.9%) 적자였다. 당시만 해도 무역수지 흑자가 오히려 이례적이었다. 경상수지도 항상 적자였다. 매년 쌓여가는 외채를 줄이는 것이 국가적 화두였다. ‘근검절약 통해 외채상환 동참하자’라는 포스터가 흔한 시절이었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국내 무역구조는 180도 달라졌다. 무역수지는 2008년을 제외하고 매년 흑자였고, 경상수지도 1998년부터 24년간 흑자가 지속되는 중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재무건전성 제고, 수출경쟁력 강화, 자유변동환율제 채택이 흑자국으로 탈바꿈하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무역수지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 경제가 위기 아니냐’는 우려를 여러 경로에서 접하고 있다.

먼저 최근의 무역수지 적자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위 3050클럽 국가(1인당 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7개국) 중 독일을 제외한 6개국이 모두 무역적자를 기록 중이다. 지난 31년간 매월 흑자를 기록한 독일마저도 올해 5월에는 속보치 기준으로 적자가 발생했다. 모든 에너지 수입국이 무역적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과거 우리 사례를 봐도 고유가 시에는 무역수지가 일시 악화했으나 에너지 가격 안정 후에는 빠르게 흑자로 전환했다. 국내 기업이 탄탄한 제조업 역량을 바탕으로 수출경쟁력을 지속 확보해 온 덕이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에너지 수입이 전년보다 589억달러 증가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무역수지 악화 폭 454억달러를 크게 상회한다. 이를 감안하면, 향후 에너지 가격이 진정되는 대로 무역수지도 흑자 기조로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또 하나 생각해 볼 점은 대외건전성 판단 시 어떤 지표를 중점적으로 살펴야 하는가다. 매월 1일 발표되는 무역수지는 속보성이 뛰어나 대외거래 동향 점검에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국내 기준 재화수출입만을 포함하는 한계가 있다.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반도체, 스마트폰 등 주력 품목 상당수가 외국에서 생산되는 최근 무역 구조를 감안할 때, 해외 생산 수출까지 포함하는 상품수지가 재화수출입을 보다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상품수지와 무역수지 간 격차는 2000년 36억달러에서 2021년 469억달러로 크게 벌어졌다.

또한 해외직접투자와 해외주식 등으로부터의 배당 수입 같은 투자 소득 비중이 상당히 커지며 대외건전성의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됐다. 상품수지 외 소득수지까지 포함한 경상수지는 올해 상반기 248억달러 흑자다. 과거 유가가 급등한 2008년 상반기 경상수지가 72억달러 적자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소득수지 개선 등으로 에너지 충격에 대한 경상수지 내성이 강해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8월 4일 발표한 ‘대외부문 보고서’에서 올해 국내 경상흑자를 GDP의 2.8%인 490억달러로 전망했고, 한국은행도 올해 경상수지가 흑자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수출 대상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부진하고 주력 품목인 반도체 단가가 하락하는 등 대외 불확실성이 상당하며, 일시적으로 관련 지표가 악화할 수 있다. 정부는 수출 지원을 보다 강화하면서 외채 등 대외건전성 지표를 면밀히 점검해 위험 요인의 선제적 관리와 대외신인도 유지에 만전을 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