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드리언 청 "서울, 블록버스터 아트페어 하나 더 열 만한 체력 충분하다"

한경 인터뷰

홍콩을 '문화 실리콘밸리'로 만든
에이드리언 청 뉴월드개발 부회장

서울, 아시아 미술중심지의 하나로 입지 굳혀
예술작품은 세상을 앞서 보게 해주는 도구

쇼핑몰, 박물관으로 만들었더니 MZ세대 열광
변화에 대비하는 최선은 변화를 계획하는 것
에이드리언 청 홍콩 뉴월드개발 부회장은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기간 동안 한국 MZ세대의 열정에 놀랐다”며 “이들은 미술시장의 신규 컬렉터로 진입하는 동시에 열정적으로 도시의 혁신을 이뤄가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의 재벌 3세, 세계 미술 시장의 큰손, 신개념 쇼핑몰을 만든 개척자….

에이드리언 청 뉴월드개발 부회장(43)에게 붙는 수식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 부회장이 뉴월드개발에 합류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를 두고 ‘할아버지 잘 만난 재벌 3세’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남들과 다른 혁신적인 스타 사업가’로 인정받고 있다.세계 최초로 쇼핑몰과 뮤지엄(박물관)을 결합한 ‘K11뮤제아’를 세워 홍콩이 아시아의 ‘문화 실리콘밸리’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K11뮤제아를 만든 K11그룹 덕분에 뉴월드개발의 매출은 2011년 6조원대에서 지난해 12조원대로 두 배 뛰었고, 홍콩의 3대 그룹으로 위상을 공고히 했다.

청 부회장을 만난 건 지난 5일 서울 신사동 안다즈호텔 강남에서였다.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의 첫 서울 진출(2~5일)을 계기로 방한한 그는 추석 연휴 때까지 한국에 머물 계획이라고 했다. 청 부회장은 “서울 전체가 전 세계 예술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된 것 같다”며 “한국인들의 미술 열정에 놀랐다”고 말했다.

▷프리즈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는 잘 둘러봤습니까.“뉴욕 파리 홍콩 등지에서 열린 예술 주간 때 볼 수 있었던 친구들과 비평가, 큐레이터들을 서울에서 모두 만났습니다. 모두가 열정적이었고, 다들 전시회 수준과 한국 사람의 미술 열정에 놀란 모습이었어요. 이번 전시로 서울이 ‘아시아 미술 중심지’ 중 하나로 입지를 굳힌 것 같습니다.”

▷다른 아시아 도시와 비교해 서울의 경쟁력은 어떻습니까.

“서울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 최고 ‘예술 허브’ 중 하나라는 걸 이번에 두 눈으로 확인했어요. 그 열정과 체력을 보면 프리즈 외에 블록버스터급 아트페어를 하나 더 열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쇼핑몰과 박물관을 결합하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요.

“문화는 사회와 경제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예요. 제 생각은 미국 실리콘밸리가 ‘혁신과 기술의 수도’인 것처럼 홍콩을 문화예술 수도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K11뮤제아예요. 실리콘밸리가 기술 분야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름이 된 것처럼 K11뮤제아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칸 영화제, 소더비 등과 연계해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됐다고 자부합니다.”▷‘K11뮤제아 모델’이 늘고 있습니다.

“벤치마킹하는 곳이 많아졌어요. 2008년 K11뮤제아가 문을 열 때만 해도 세상에 없던 콘셉트였는데…. 하지만 쇼핑몰에 값비싼 예술품을 마구잡이로 갖다놓는다고 될 일은 아닙니다. (국가든 기업이든) 고급 문화의 저변을 넓히려는 생각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술을 바라보고, 작가들을 이해해야 할지 일상 속에서 알려줘야 해요. 그런 생각을 갖고 K11뮤제아를 만든 겁니다. 전 세계 100여 명의 유명 크리에이터들이 10년에 걸쳐 만든 쇼핑몰 건물의 모든 곳이 박물관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쇼핑을 하면서, 주변 길을 걸으면서 세계적인 작품을 만나 전문가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떤 효과가 있었나요.

“K11뮤제아는 2년 만에 기존 일반 쇼핑몰 대비 매출이 두 배 늘었습니다. 문화예술을 접목하자 20~40대 ‘남들과 다른 영감’을 찾는 세대들이 충성고객이 됐습니다. 임대료가 인근 대형 쇼핑몰 대비 20~30% 비싼데도 서로 입점하기 위해 줄을 설 정도니까요. 단지 쇼핑몰에만 예술품을 전시한 게 아닙니다. 도시 곳곳에도 예술 작품을 두고 안팎으로 연결되는 아트 투어 프로그램으로 ‘공부하는 거리 예술’을 만들었어요. K11뮤제아로 오고 가는 모든 여정을 예술 중심으로 설계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영향을 받았을 텐데요.

“서서히 회복하고 있지만, 더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K11에 돌아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주는 데 예술품만 한 것은 없습니다. 새로운 영감을 주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에도 K11뮤제아의 프리미엄 멤버십은 3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곳에서 열리는 새로운 전시와 문화 예술, 아트 상품에 ‘충성고객’이 점점 늘고 있다는 얘기죠. 명품 브랜드를 한데 모아 대형 패션 전시회를 열고, 아시아판 칸 영화제 위크를 만들고, 아티스트와 협업한 한정판 제품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습니다. 장기간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예술계와 네트워크를 다져온 결과들이죠.”

▷예술이 돈벌이가 되는 시대인가요.

“저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항상 3년 뒤를 생각합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트렌드를 읽다 보면 예술 수요는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MZ세대는 다른 어떤 세대보다 더 많이 예술품을 구매하고 즐기잖아요. 앞으론 이 수요가 더 늘어날 것입니다. K11이 요즘 대체불가능토큰(NFT) 아트와 미디어 아트에 힘을 쏟는 것도 미래에는 이런 수요가 늘어날 걸로 봤기 때문입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어떤 점이 다르다고 보나요.

“MZ세대는 전 세계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문화적 취향을 실시간으로 공유하죠. 자기애도 강합니다. 개인의 건강과 복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죠.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K11그룹과 뉴월드개발은 소비재부터 부동산, 바이오까지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그 중심엔 언제나 MZ세대 등 새로운 세대가 있습니다. 그들을 공통적으로 열광시키는 것은 예술이고요. 예술이 도시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시대이고, 그런 면에서 서울은 홍콩과 함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K11그룹은 영국왕립아카데미, 뉴욕현대미술관 등과 연결돼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항상 우리보다 큰 통찰력을 갖고 있습니다. 한 작가의 예술 세계가 어떻게 발전돼 왔는지 바라보고, 글로벌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피면 앞으로의 세계가 앞서 보이기도 합니다. 예술을 공간에 도입할 때 ‘예술’과 ‘자연’과 ‘사람’이 균형을 찾도록 합니다. 이때 예술 작품은 단지 벽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볼 것인지, 어떻게 앞으로 움직일 것인지를 알려주는 도구가 됩니다.”

▷경영 원칙으로 ‘3A’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변화를 스스로 계획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고객의 소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먼저 예측하고(anticipate), 변화에 적응하고(adapt), 빠르게 가속하는 것(accelerate)이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어요. 예술경영 역시 ‘3A’로 키울 수 있습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