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매출 10억인데 "남는 게 없다"…유명 빵집도 문 닫아 '절규'

"매출 늘어도 남는 게 없다"
올 6월까지 1200여 곳 문 닫아

빵집 집기로 폐업처리업체 창고도 꽉 차
밀가루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 원부자재 값이 폭등하면서 제과·제빵업체들의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강서구에서 지역 빵집으로 유명했던 한 가게는 지난달 매장을 철거했다. 연매출 10억원 이상을 거뜬히 올린 잘나가는 가게였지만, 최근들어 이익률이 4분의 1토막 정도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밀가루 값이 지난해 30% 급등한 데 이어 올해 40% 뛰는 등 원재료 값이 줄줄이 올라 이익이 많이 남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건물주로부터 월세 인상 통보를 받으면서 가게를 유지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다. 이 가게 사장 김모 씨는 “이대로 가게를 운영하다간 직원들 월급도 제때 지급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매장 운영을 접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1인당 하루 빵 섭취량은 2012년 18.2g에서 2018년 21.3g으로 늘었고 85g 단팥빵 1개를 기준으로 연간 소비량은 78개에서 91개로 증가했다. 가구당 월평균 빵 및 떡류 소비지출액도 2020년 2만2000원으로 2015년(1만9000원)보다 16.6% 늘었다. 그러나 빵집 경영은 녹록지 않아졌다. 밀가루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 원부자재 값이 폭등하면서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어서다.

1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전국에서 폐점한 제과·제빵 매장 수는 1263건(지방자치단체 인허가 기준)에 달한다. 매달 전국에서 210곳 이상이 문을 닫았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서울시 내에서 신고된 폐업 건수만 해도 최근 5년 내 가장 많은 378건에 이른다. 창업 전문가들은 “밀 설탕 식용유 가격이 급등하는 바람에 이를 원재료로 많이 쓰는 업소들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의 한 상가에 '폐점' 문구가 붙어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뉴스1
수입 곡물 가격 상승세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곡물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3∼6월 구입 물량이 시차를 두고 국내로 들어오고 있는 데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데 따른 것이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국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점도 밀 가격을 끌어 올리는 요인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시카고상품거래소(CBT)에서 12월물 밀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3.3% 오른 부셸당 8.4425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 7월11일 이후 최고치다.

수입 곡물 가격이 오르면 이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국내 식품이나 사료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 빵을 비롯해 밀가루를 주로 사용하는 제품들은 벌써 큰 폭으로 올랐다.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 상가에서 약 16㎡(5평)짜리 소규모 빵집을 운영하는 이모 씨(38)는 “밀가루나 식용유, 유제품, 과일 등 원자재 값이 전반적으로 많이 뛰어 매출 대비 재료비 비중이 월평균 70%를 넘는 수준까지 높아졌다”며 “이 와중에 월세가 인상되면서 고정 지출도 많아져 아무리 빵을 많이 팔아도 매달 수입이 급감하는 추세를 보이니 폐업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급격히 증가한 인건비, 월세, 대출 부담 등은 자영업자를 짓누르는 또 다른 요인이다.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원에 육박(9620원)한 수준으로 확정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 잔액(가계대출 포함)은 1051조2000억원으로,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 말(737조5000억원)보다 42.5% 불어났다.폐업한 가게들이 늘면서 집기를 사는 업체들의 창고는 대부분 꽉 찼다. 특히 문 닫은 제과·제빵업체의 오븐, 냉장고, 작업대 등 주방용품이나 탁자, 의자 등 가구가 많다. 경기 김포의 한 폐업처리업체 대표는 “최근에도 이 지역에서 장사가 잘되기로 손꼽히던 번화가의 한 대형 빵집이 문을 닫았다”며 “폐업 문의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오지만 창고가 꽉 차 이제 받아주기도 어렵다”고 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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