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마저 TSMC로 떠날 판"…삼성, 이대로 가면 '치명상' [강경주의 IT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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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주의 IT카페] 64회세계적인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 퀄컴이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맡기던 물량을 대만 TSMC로 돌릴 것이란 외신 보도가 나왔다. 퀄컴이 떠날 경우 삼성 파운드리가 치명상을 입을 것이 확실시된다.
삼성이 만든 스냅드래곤8 1세대 발열 문제 불거져
스냅드래곤8+ 1세대, 스냅드래곤8 2세대 TSMC 생산
"삼성 3나노 지지부진하면 TSMC 쏠림 현상 가속화"
◆ "퀄컴이 모든 걸 TSMC에 맡길 수도"
10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기즈모차이나는 최근 "퀄컴이 앞으로 삼성전자를 떠나 모든 것을 TSMC에 맡기길 원할 수도 있다"며 "TSMC가 제조를 맡은 퀄컴의 SoC(System on Chip·시스템온칩) 스냅드래곤8 2세대는 경쟁사인 대만 미디어텍의 디멘시티9000 시리즈를 능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앞서 올 초 출시된 스냅드래곤8 1세대는 전량 삼성 파운드리 4나노(nm·나노미터) 공정으로 만들어졌고 해당 칩은 갤럭시S22에 탑재됐다. 이후 퀄컴은 올 1분기 처음으로 삼성전자의 5대 고객사에 이름을 올리며 양사의 동맹 관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지만 퀄컴은 스냅드래곤8 1세대의 발열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다음 모델인 스냅드래곤8+ 1세대에 이어 오는 11월 출시될 스냅드래곤8 2세대도 TSMC에 위탁생산를 맡겼다.스냅드래곤8+ 1세대는 스냅드래곤8 1세대보다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을 최대 10% 끌어올리면서도 전력 효율성은 30%가량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이 TSMC 4나노 공정에 만족했다는 말도 들린다.중국 IT 업계에서도 퀄컴이 차세대 중급 칩인 스냅드래곤7 2세대 위탁 생산을 TSMC에 맡길 것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다. 웨이보에 올라온 한 보고서에는 퀄컴이 내년 플래그십(최고급 기종) 및 중급 칩 △스냅드래곤8 2세대 △스냅드래곤7 2세대 칩을 모두 TSMC에서 위탁 생산할 계획이라고 돼 있다.
◆ "퀄컴, 삼성 3나노 아직 지켜보는 중"
퀄컴 물량을 경쟁사에 빼앗길 가능성이 언급된 것만으로도 삼성 파운드리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냅드래곤8 시리즈는 퀄컴이 전사적인 역량을 결집해 만든 작품으로, 이를 삼성전자가 수주하면서 파운드리 기술력이 TSMC에 비견될 만큼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자연스레 미디어텍과 애플을 4나노 고객사로 확보한 TSMC, 퀄컴과 밀월 관계를 굳힌 삼성전자와의 양강 구도가 그려지면서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희망도 싹텄다.당시 삼성전자와 손잡은 퀄컴의 전략은 공정 안정성에 대한 신뢰와 생산 연속성에 기반한 수율 등을 고려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칩 개선 버전을 다른 파운드리에 맡긴 사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스냅드래곤8 개선 버전도 삼성 파운드리에서 양산할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는 예상과 다르게 흐르면서 삼성 파운드리의 안정성과 수율 문제가 재점화되는 모습이다.실제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전자기기 성능측정 전문사이트 '긱벤치(Geekbench)'에서 스냅드래곤8+ 1세대를 탑재시킨 갤럭시Z폴드4의 점수는 싱글코어 1312점, 멀티코어 3996점 수준을 보였다. 이는 스냅드래곤8 1세대가 들어간 갤럭시S22울트라의 싱글코어 1247점, 멀티코어 3461점보다 훨씬 높은 점수다. 스냅드래곤8+ 1세대는 TSMC의 4나노, 이전 모델인 스냅드래곤8 1세대는 삼성전자의 4나노 공정으로 제조됐다. 두 제품이 기본적으로 같은 설계 기반인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결과는 삼성전자와 TSMC의 파운드리 기술력 차이에 따른 성능 격차가 다시 한 번 증명됐다는 평가다.
해외 유명 IT팁스터(정보유출가) 아이스유니버스는 "퀄컴은 이미 올해 말에 공개할 스냅드래곤8 2세대 물량도 모두 삼성전자가 아닌 TSMC에 맡겼다"며 "이는 TSMC에 위탁생산을 맡긴 스냅드래곤8+ 1세대의 성능이 이전 모델보다 크게 개선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기즈모차이나 역시 "삼성전자 4나노 공정으로 제조된 스냅드래곤이 발열과 효율성에서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 퀄컴은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도 아직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삼성 파운드리 최대 고객이었던 퀄컴이 TSMC와 협력을 확대하면 이재용 부회장의 '파운드리 초격차' 전략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부터 4나노 공정으로 구글 2세대 SoC '텐서'를 양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퀄컴 물량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4나노 공정 설비에 수조원을 투자했기 때문에 퀄컴 등 대량으로 제품을 발주하는 팹리스로부터 수주를 확대하지 못하면 매출에도 타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 "삼성 파운드리 낮은 수율로 퀄컴 인내심 한계"
파운드리는 고객사에 정해진 물량을 제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삼성전자 4나노 공정은 올 상반기에 수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퀄컴 물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것이 퀄컴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렸다는 뒷말이 나온다. 안정성이 중요한 파운드리에서 TSMC가 압도적인 수율로 고객사들의 마음을 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가 4나노 공정의 대량 생산을 위해 TSMC보다 낮은 가격에 파운드리를 서비스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파운드리에서는 고객사 확보가 가장 중요해서다.기즈모차이나는 "퀄컴은 스냅드래곤8 1세대의 발열 및 효율성 문제 이후 파운드리를 삼성전자에서 TSMC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며 "현재 TSMC 4나노는 애플, 퀄컴, 미디어텍 제품을 모두 생산하며 분명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TSMC는 삼성전자에 세계 최초 3나노 양산 타이틀을 뺏겼지만 미세 공정 기술력과 고객사 확보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최근 3나노 양산을 시작한 TSMC는 애플이라는 초대형 고객사를 확보했다. 삼성전자가 비트코인 채굴 주문형반도체(ASIC)를 만드는 중국 팹리스 판세미(PanSemi)를 3나노 최초 고객사로 확보한 것과 대조적이다. TSMC는 3나노 공정 수율도 80%를 달성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업계에서는 파운드리 80% 수율은 '신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라고 보고 있다.삼성전자 출신의 한 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정보 공개가 어려운 파운드리에서 고객사 명단은 현재 기술력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며 "삼성전자가 3나노에서 뭔가 보여주지 못한다면 TSMC 쏠림 현상을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