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과 말단 직원, '이것' 같다고?…"2인자가 가장 행복" [노경목의 미래노트]

스트레스의 U자 곡선

9년간 유인원 사회 관찰한 논문
최상위와 최하위의 스트레스 지수 동일

상승의 종착점에서 스트레스 급증 역설
"행복을 바란다면 승진도 적당히"
조직 내에서 말단 직원과 조직을 이끄는 최고경영자의 직급간 거리는 가장 멀다. 하지만 이들이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 바로 스트레스 수준이다.

다른 조직원들에 비해 적은 보상을 받으며 혹사 당하는 말단 직원과 각종 의전을 받으며 군림하는 CEO의 스트레스가 비슷하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각 조직에 한명 밖에 없는 CEO는 직급별 스트레스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만큼 말단 직원의 그것과 비교하기도 어렵다.이와 관련해 참고할만한 논문이 유력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에 2011년 실렸다. 케냐 사바나에서 유인원들을 오랜 기간 추적조사한 결과다.

등급별 스트레스 호르몬 살펴보니

프린스턴대의 진화생물학 교수인 로렌스 제스퀴르와 듀크대 생물학 교수인 니키 런 등은 9년에 걸쳐 개코원숭이 125마리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측정했다. 글루코코르티코이드로 코르티솔이라고 널리 알려진 호르몬이다.코르티솔은 급성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물질로 평소보다 많은 포도당을 뇌에 보내며 염증은 낮추고, 식욕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남성호르몬 분비를 줄이는 등 장기적으로는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제스퀴르 교수 등은 개코원숭이의 조직내 위계를 14가지로 나눠 코르티솔 분비 정도를 분석했다. 조직내 위계가 높을수록 스트레스가 줄어들어 코르티솔 분비 역시 감소할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다.
이같은 가설은 어느 정도 사실로 나타났다. 가장 낮은 위계인 14등급과 13등급 등에서 가장 높았던 코르티솔 수치는 위계가 올라갈수록 줄어들었다.지만 마지막에 기대했던 것과 크게 어긋나는 결과가 나왔다. 조직 내에서 가장 위계가 높은 1등급, 흔히 '알파 메일(alpha male)'에 해당되는 개코 원숭이의 코르티솔 수치가 조직내 하위 집단의 그것과 비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1등급 알파 메일이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조직내 최하위인 13등급과 14등급 개코원숭이가 받는 스트레스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등급이 낮을수록 적은 식량이 돌아가고 번식 기회가 적은 유인원 사회의 특성상 낮은 등급 개코원숭이의 스트레스가 높은 것은 이해하기 쉽다. 적은 자원을 두고 더 많은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등급 개코원숭이의 스트레스가 높은 것은 어째서일까. 분석 결과 두 가지 이유로 정리됐다. 1인자를 유지하기 위한 경쟁과 함께 더 많은 암컷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감이었다.연구에서는 1등급 알파 메일은 다른 개코원숭이들과 비교해 적대적인 경쟁자와 마주칠 확률이 17%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등급이 낮은 수컷 원숭이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가운데 암컷 원숭이를 돌보기 위해 29% 더 많은 시간을 썼다.

2인자가 가장 행복

경쟁자와 결투를 벌이고 왕성한 자식 생산을 위해 암컷 원숭이를 관리하는 알파 메일의 일상은 현대의 CEO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조직의 번성을 위해 경쟁 업체와 피 말리는 투쟁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보다 생산적이 조직을 만들기 위한 조직 및 직원 관리 등의 스트레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개코원숭이 연구에서 스트레스가 가장 적은 단계가 알파 메일 바로 다음인 2등급 원숭이라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개코원숭이 사회 내에서 적당한 대우는 받으면서 경쟁과 번식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은 위치다.

하대룡 서울대 고고학 박사는 "인간 사회를 수천년간 관찰하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크게 바뀌지 않는 근본적인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며 "안정을 위해 더 높은 신분을 원하지만 조직 최상층에 다다르면 최하위 계급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 역설은 현대 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힘겹게 사다리를 올라서고 나서는 우울감이나 허무함을 호소하는 사례를 흔히 본다.개인의 행복만 생각하면 승진이나 출세도 적당한 시점까지 오르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스트레스의 압박을 넘어설 수 있을만한 확실한 목표를 갖고 도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개코원숭이를 다룬 해당 논문은 시사해 준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