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과 횡'의 법칙으로 관찰하라"…성공한 VC의 두번째 투자 비법 [긱스]

김기준의 'VC 투자 비책'
벤처캐피털(VC)은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할까요. 급변하는 시장에서 성공한 VC의 변하지 않은 투자 원칙은 무엇일까요. 카카오의 투자 전문 계열사인 카카오벤처스를 국내 대표 VC로 이끈 김기준 부사장이 한경 긱스(Geeks)를 통해 두 번째 투자 비법을 공개했습니다.

제가 딥테크(Deep Tech) 영역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회사에 선언했던 2014년을 돌이켜 보면 투자자로서 기술 자체를 검토하는 ‘종의 구간’은 없었습니다. 이미 기술이 ‘횡의 구간’으로 진입했거나 아니면 상당 수준 상용화된 상태에서 딥테크를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물방울들은 꾸준히 출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물방울은 과연 어떤 것일까?’를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먼저 그림을 통해 1화에서 언급했던 종과 횡의 법칙을 돌아보겠습니다.

1. 기술 자체가 발전하고 성숙하는 단계가 있고, 이런 단계가 마치 물방울이 수면으로 떨어지는 것과 유사하다고 판단해 ‘종의 구간’으로 명명했습니다. 이 구간에서는 기술이 유의미하게 성숙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적극적 투자 검토를 하게 됩니다.
2. 충분히 성숙한 기술 물방울은 수면 위에 산재해있는 현실 세계의 다양한 'Pain point'(해결 과제)들을 만나 물결처럼 퍼져나갑니다. 문제들을 해결하고 큰 사업으로 성장하는데 이를 ‘횡의 구간’으로 명명했습니다.
3. 이 둘이 합쳐져 ‘종과 횡의 법칙'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PC·디지털, 웹, 모바일의 물방울을 경험해왔고 이후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물방울은 출현할 것입니다. 그 물방울을 찾기 위한 저의 여정을 ‘웹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맛집을 찾았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웹 이전의 시대에 사람들이 맛집을 찾고 약속을 정하던 시기로 돌아가 볼까요?

우리가 매일 일상적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발견하는 구글, 네이버, 다음 같은 검색엔진이 없는 시절, 상상이 가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맛집을 갈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이전에 먹었을 때 좋았던 곳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경험에 의존하는 거죠.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거나 신문과 방송에서 보았던 곳들을 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아니라면 무작정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요. 결국 이때는 다양한 정보를 한가운데 놓고 최선을 고민하기보다는 정보 자체를 많이 모으는 것이 훨씬 중요한 때입니다.

그러다 웹과 검색엔진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지금과 비교해 'POI(Point of Interest·관심 지점)' 자체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전화번호부 속 정보가 웹에 업로드되고 검색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획기적인 개선이지 않았을까요. 목록에 따라 일일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상호명을 찾지 않아도 되니까요. 브라우저의 작은 검색창에 ‘OO동 중국집'을 입력하기만 하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양의 정보를 쉽게 취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보가 부족합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그중 고르는 것 자체가 사용자에게 부담을 주는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하지만 웹 2.0시대나 모바일의 시대를 지나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달라집니다. 웹 2.0 시대에 사용자의 참여를 강조하는 UGC(User-generated Contents·사용자 생성 콘텐츠)가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내 머리와 지인의 머리, 그리고 내 수첩 속에 기록되어 있던 맛집 정보들이 더 이상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웹의 공간에서 공유되며 검색의 대상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검색 가능한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1인 1기기를 소유하는 모바일의 시대에는 모두가 똑같은 선택지가 아니라 본인의 취향, 현재 위치, 시간에 따라 적합한 훨씬 더 세분된 정보를 제공받게 됩니다. 단순히 한식, 일식, 중식 정도를 고르면 되는 문제에서 ‘오늘 동반하는 지인은 이런 분위기를 좋아할까?’, ‘주차는 편하게 될까?’, ‘메뉴는 어떤 것이 독특하고 내 취향에 맞을까?’ 등을 고민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을 함께 제공받게 되는 거죠. 한 번 약속 장소를 정하려면 정보의 수집보다는 ‘선택' 그 자체에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겁니다.

실제로 사용자들이 잠재적으로 소비 가능한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당시 구글이 수집하는 웹페이지의 숫자가 어떻게 증가했는지를 찾아봤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2008~2014년 6년 동안 10배 가까이 그 수가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4년 기준으로 무려 30조 개의 웹페이지가 수집되고 있었습니다.
출처: https://www.scribblrs.com/increase-number-pages-indexed-google-years/
2014년 웹사이트 수는 10억 개 정도로 집계됐다. 그 이후로 폭발적으로 늘어나 2021년 웹페이지 수는 18억 8000여 개로 늘었습니다. 정보의 폭발적인 증가가 여전히 진행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statista.com/chart/19058/number-of-websites-online/
단순한 맛집 찾기 외에 다른 종류의 정보 검색과 선택에서도 상황은 동일합니다. 웹이 없던 시절과 비교해 훨씬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근본적으로 이런 상황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PC·디지털, 웹, 모바일 모두 정보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연결되고 검색 가능한 방향으로만 진행됐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정보 선택의 고민을 해소해주는 방향으로는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사용자 관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늘어난 정보를 소비하는 환경은 무엇이 변했을까요? 점점 더 큰 화면을 통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고 쉽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변화가 함께 일어났을까요?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들 아시는 것처럼 그 반대 방향으로 정보 소비 환경은 변화했습니다.

맨 처음 컴퓨터가 생기고 사람들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서 PC와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를 가지고 정보를 넘겨보고 선택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모바일의 물방울이 확산한 순간부터 모두의 손에 스마트폰이 하나씩 주어지고, 이제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화면 안에서 훨씬 더 증가한 정보를 검색하고 넘겨보고 선택하게 됐습니다. 편안하게 앉아서 기기를 사용하기보다는 이동하며 다른 일과 함께 짧은 시간 집중력을 분산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이제는 화면없이 AI스피커에 대고 음성으로 질문을 하고 음성으로 답을 들어야 하거나, 심지어는 손목 위에 2인치가 되지 않는 작은 화면의 시계를 조작하며 정보를 소비하는 상황까지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이 두 관찰을 토대로 저는 다음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용자가 어떤 선택을 위해 소비해야 하는 정보의 양은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이것을 소비하는 환경은 점점 더 불편해지고 있다.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 그다음 물방울이 반드시 풀어야 하는 문제겠구나.’

많은 분이 2016년 알파고의 등장으로 머신러닝과 AI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그 물방울이 무엇인지 정답을 알고 계실 겁니다. 결국 대량의 정보를 정리하고 거기서 시사점을 뽑아서 사용자가 꼭 소비해야만 하는 정보를 스스로 찾아 제공해줄 수 있는 머신러닝과 AI가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왔습니다. PC·디지털, 웹, 모바일에 이은 머신러닝·AI 물방울 출현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종과 횡의 법칙 그림에 맞춰서 아래와 같이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사례를 생각해보면 이번 머신러닝과 AI의 물방울이 문자 형태로 저장된 대규모의 정보 중에서 선택하는 문제에 국한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참고가 될 만한 흥미로운 회사를 소개하며 이 물방울의 범위가 얼마나 더 광범위한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소개할 회사의 이름은 오비탈 인사이트입니다.
이 회사는 위성사진, 드론 촬영, 항공기 촬영 사진 등의 이미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합니다. 고객은 금융, 에너지, 소비재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속해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문제를 예시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중국에서 경제 발전의 정도를 기준으로 10대 도시를 뽑고, 각 도시의 경제 발전 정도를 수치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통적인 방법론으로 생각하면 저는 일단 막막할 것 같습니다. 공개된 자료가 많지 않을 것 같고, 후보가 되는 수많은 중국 도시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이나 소요 시간 또한 막대한 수준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정보의 선택과 인사이트 추출에 앞서 정보의 수집에서부터 큰 장벽에 부딪힙니다.

오비탈 인사이트가 사용하고 있는 위성 사진과 항공 사진들을 제공받는다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한 땀한 땀 사진 속에서 의미있는 정보를 수작업으로 카운팅하는 작업으로 해결해갈 수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과 비용이 들지는 역시나 막막한 상황일 겁니다. 결국 기술의 발달로 대량의 정보가 수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음의 물방울이 없다면 이것을 유의미한 인사이트로 만들어내는 것은 비용효율적이지 않은 무의미한 방법론입니다.

오비탈 인사이트는 머신러닝과 AI의 물방울 중에서도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 관련 AI 기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위성 사진들을 연속적으로 수집한 뒤, 그 정보 속에서 우리가 답을 찾고자 하는 문제에 필요한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뽑아냅니다. 예를 들면 고속도로에 화물 차량이 얼마나 많이 다니고 있는지, 산업화를 위한 건설 현장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공항이나 항구에는 수출입 관련 물동량이 얼마나 되는지, 밤에도 불이 켜져 업무가 진행되는 사무실은 얼마나 되는지, 번화가들은 얼마나 크고 넓게 형성되어 활성화되었는지 등의 정보들을 추출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들을 조합하여 통계 처리한다면 우리가 원했던 인사이트를 매우 빠른 시간 안에 도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오비탈 인사이트 홈페이지
맛집 검색 사례에서 생각해봤던 필요한 물방울과 모습이 다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결국 그 중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같습니다. 핵심은 수많은 정보 중에서 사용자에게 필요한 것과 인사이트를 빠르게 추출해서 제공하는 것과 사용자가 고민하는 시간을 대폭 감소시켜 주는 것일 겁니다.

이런 고민을 하고 2014년부터 머신러닝과 AI를 키워드로 하는 훌륭한 팀이라면 어떻게든 투자하고자 돌아다녔습니다. 너무나 운이 좋게도 그런 팀들을 많이 만났고 결과적으로 의미있는 투자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만나서 함께 했던 팀들입니다.

•루닛: 시드 투자 포함 6번 투자. 2022년 7월 상장
•데이블: 시드 투자 포함 4번 투자. 2021년 11월 야놀자에 피인수
•하이퍼센스: 시드 투자 포함 3번 투자. 2020년 10월 EPIC에 피인수
•스탠다임: 시드 투자 포함 4번 투자. 상장 준비 중개인적으로는 꾸준한 관찰과 구조화의 덕을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제가 좋은 팀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김기준 | 카카오벤처스 부사장
김기준 부사장은 개발자 출신입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정보대학원 디지털경영 석사를 받았습니다. 2004년 아이디어웍스를 공동 창업했습니다. 2011년부터는 CJ홀딩스 전략기획실에서 사업 기획, 전략 업무를 맡았습니다. 2012년 카카오벤처스에 합류했습니다. 2018년 부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김 부사장은 기술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 자율주행 전문업체 모라이,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 등의 투자를 주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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