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성과금 2000만원 걷어찬 기아 노조

75세까지 車값 25% 할인에
"평생 30% 깎아달라" 반발

김일규 산업부 기자
기아는 지난달 사상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안에 잠정 합의했다. 기본급 월 9만8000원 인상, 경영성과금 200%+400만원, 생산·판매 목표 달성 격려금 100%, 품질 브랜드 향상 특별 격려금 150만원 등을 담았다. 기본급을 제외하고도 2000만원이 넘는 금액으로, 타결되면 곧바로 1000만원가량 지급되는 조건이었다. 업계에서는 역대급 인상안인 만큼 조합원 찬반 투표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지난 2일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부결됐다. 기아 노조는 다른 완성차 업체와 달리 임금안과 단협안을 분리해 투표한다. 이번 투표에서 임금안은 58.7% 찬성으로 가결됐으나 단협안이 57.6% 반대로 부결됐다. 둘 중 하나라도 부결되면 재협상을 해야 한다.단협안이 부결된 것은 은퇴를 눈앞에 둔 50대 이상 직원들의 불만이 컸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기아는 25년 이상 근무한 퇴직자에게 평생사원증을 지급하고 차량 할인 등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 단협안에선 차량 할인 조건이 기존보다 까다로워졌다.

합의안은 차량 구입 때 할인 횟수를 2년 주기에서 3년으로 늘리고, 평생 할인 대신 75세까지로 연령을 제한했다. 할인율은 30%에서 25%로 낮췄다. 차량 할인 혜택 감소에 따른 손실이 1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소문까지 퍼졌다.

조합원 찬반 투표 부결 소식에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기본급과 성과금, 격려금 등에서 낮은 연차 직원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받는 50~60대 직원들의 은퇴 이후 혜택 이슈로 임금 인상이 불확실해져서다. 한 직원은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지도 모르는데 퇴직 이후 차량 할인 문제 때문에 당장 성과금을 못 받게 됐다”고 토로했다.사측도 당황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사측은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위험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했다. 대신 만 60세 임금을 59세 기본급의 90%에서 95%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담은 만큼 조합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무엇보다 역대급 임금 인상으로 재정 부담이 커진 가운데 은퇴자들의 혜택까지 유지하면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기아는 작년 기준 50세 이상이 1만8874명으로, 전체의 53.2%에 이른다. 2019년 40.0%에서 2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늘었다. 50~60대 퇴직자는 2019년 570명에서 지난해 904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일각에선 기아 노조의 몽니에 피해는 소비자가 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재협상 과정에서 노조가 파업 등과 같은 강성 투쟁을 펼칠 가능성이 있어서다. 가뜩이나 출고 대기가 최장 1년 이상인 차종도 여럿이다. 추석 이후 재협상이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