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영국 식민지 국민들, 여왕 서거로 상기된 과거 역사에 '씁쓸'

케냐 독립투쟁 영웅 유족 "여왕에 도움 요청했지만 묵살"
남아공 작가 "식민지배는 우리에겐 현재형…여왕, 다른 선택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타계하자 옛 식민지국 국민들은 여왕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면서도 과거 식민지배의 아픔을 상기하며 복잡한 심경을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보도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면에 들자 케냐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등 옛 식민지국의 수장은 일제히 추모와 헌사 메시지를 전했지만 현지에선 제국주의 군주였던 여왕의 모습을 반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여왕이 영국의 상징적인 존재로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따랐다고 해도 식민지배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지가 새삼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여왕의 통치 시기이던 1950년대 케냐에서 일어난 독립투쟁인 '마우마우 봉기'를 이끌었던 데단 키마티의 유족도 마찬가지 심경이다.당시 영국은 봉기를 잔혹하게 진압해 수많은 케냐인이 고문과 강간, 거세, 살해, 구금 등을 당했다.

데단 키마티도 1957년 식민 당국의 결정에 따라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 처형됐다.

영국군에 고문당하기도 했던 그의 아내는 이후 남편의 처형을 막아보고자 영국 정부에 수차례 호소했지만 결국 무위에 그쳤고, 이후 남편에게 적절한 장례를 치러주고자 여왕에게 여러 번 편지를 보내며 간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케냐 독립투쟁 영웅의 무덤은 60여년이 지난 2019년에야 나이로비의 카미티 교도소에서 발견됐다.

데단 키마티의 딸은 "여왕은 여성이자 엄마였고, 아내이기도 했다"면서 "동년배 여성이자 아내한테 자비를 베풀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남아공 작가인 시포 흘롱과네는 "서방인들이 진정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식민지배가 서방에서나 과거일 뿐, 우리 국가에서는 현재라는 점"이라고 일침했다.그는 과거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상당수 정책이 영국에서 유래했고 오늘날 빈부격차는 대체로 인종에 의해 나뉘었으며, 영국인과 그 후손이 여전히 남아공의 광산 산업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흘롱과네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선택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여왕의 타계를 계기로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중심으로 영국이 과거 약탈해간 자국 유물을 돌려달라는 목소리도 커졌다.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중 하나로 '아프리카의 거대한 별'로 불리는 컬리넌 다이아몬드도 그중 하나다.

컬리넌 다이아몬드는 1905년 남아공 백인 소유의 광산에서 발견돼 현지 정부가 사들였고, 이후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의 생일에 맞춰 선물로 건네져 영국 왕실 소유가 됐다.
이에 대해 흘롱과네는 "(선물 증정은) 차 한잔과 악수 한 번으로 이뤄졌을 것"이라며 "올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공정한 거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왕에 대한 세대별로 다른 시각은 세대갈등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방글라데시계 미국인 사다프 칸은 여왕의 서거를 두고 가족끼리 언쟁을 벌여야 했다고 WP에 전했다.

1947년 인도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한 파키스탄에서 떨어져나온 동파키스탄이 1971년 독립한 게 현재의 방글라데시다.

여왕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 5년 뒤인 1952년 즉위했다.

그는 조부모와 부모가 과거 영국의 식민지배 뒤 찾아온 정치적 혼란 때문에 가난과 폭력에 시달렸을 텐데 여왕의 별세에 슬퍼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전했다.자신은 어른들과 논쟁에서 대영제국이 남아시아에 가져온 끔찍한 재앙과 여전히 남아시아 문화에 남아있는 백인 우월주의 등 식민잔재를 거론하며 반박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