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사보다 가해자 걱정한 군…절망감에 극단 선택(종합)

피해 신고하자 "좀 이상하다" 뒷담화…사망 후엔 남편과의 불화설 제기
전익수 등 윗선 수사 무마 의혹 끝내 못 밝혀…유족 "한으로 남을 것"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 사건을 수사해온 안미영(56·사법연수원 25기) 특별검사가 13일 전익수(52·준장) 공군 법무실장 등 군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기며 100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안 특검은 5만여 쪽의 자료검토와 10여 차례의 압수수색·연인원 164명에 대한 조사 끝에 군검찰 단계에서 처벌을 피한 2차 가해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다만 특검 수사의 '본류'로 여겨진 수사 무마 의혹은 끝내 밝혀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 성추행 가해자도, 공군본부도…이 중사 괴롭힌 2차 가해
특검팀은 생전 이 중사가 근무한 공군 20전투비행단 김모(44) 대대장(영관급)과 김모(29) 중대장(위관급)이 '가해자·피해자 분리 원칙'을 뭉개고, 근거 없는 비방으로 이 중사에게 2차 가해를 했다고 봤다. 특히 김 중대장은 성추행을 당한 이 중사가 15특수비행단 전입을 앞둔 상황에서 해당 부대 중대장에게 "이 중사가 좀 이상하다", "20비행단을 언급만 해도 고소하려고 한다"는 등 허위사실을 퍼뜨린 것으로 조사됐다.

성추행 가해자인 장모(25) 중사의 명예훼손 혐의도 새롭게 밝혀졌다.

그는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직후부터 '나는 성추행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 중사가 자신을 고소했다'며 부대 내 다른 군인들에게 허위사실을 퍼뜨린 것으로 드러났다. 공군본부 공보담당 장교였던 정모(45) 씨는 이 중사 사망 후 공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피해자는 부부 사이 문제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며 3명의 기자에게 허위 사실을 전달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그러나 심리 부검 결과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남편과의 불화 때문이 아니라 성추행과 2차 가해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전에 없던 자살위험이 강제추행 이후 급격히 고위험군에 이르렀고, 15비행단 전입 뒤 증상을 악화시키는 2차 가해를 겪고 좌절감과 무력감이 심해져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고 봤다. 특히 피해자인 자신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입을 닫으라'는 압박이 이어지는 상황을 벗어나려고 부대를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계속되는 험담과 따가운 시선이 이 중사에게는 삶을 포기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안 특검은 "(주변 군인들이) 다 가해자 걱정을 한다.

누구도 이 중사를 살갑게 대하지 않고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며 "군대 내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특검팀은 이 중사 휴대전화 기록이나 남편과의 대화가 담긴 차량 블랙박스 등을 분석한 결과 두 사람은 이 중사 사망 당일까지도 친밀한 관계였다고 설명했다.
◇ 공군 부실 수사…국방부 수사 과정서는 수사 정보 유출
이 중사 사망사건의 핵심 의혹 중 하나였던 공군의 부실 수사 의혹도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사건 당시 20비행단 군 검사였던 박모(29) 법무관(위관급)은 지난해 4월 이 중사 사건을 송치받은 뒤, 이 중사를 상대로 2차 가해가 벌어지는 정황을 확인하고, 그의 심리 상태가 악화한 상황을 알고도 휴가 등을 핑계로 조사 일정을 미뤄 직무를 유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상급자인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장이 수사 지연 이유를 보고하라고 하자 이 중사가 조사 연기를 요청한 것처럼 허위보고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공군 차원의 수사에 한계를 느껴 시작된 국방부 수사에서도 곳곳에서 허점이 나타났다.

가해자 장 중사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던 6월 2일 국방부 군사법원 군무원 양모(49) 씨는 전익수 실장에게 심문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적 사항과 심문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나 재판에 넘겨졌다.
◇ 변수 된 '녹취록 조작'…결국 묻힌 '윗선' 수사 무마 의혹
피의자 중 유일한 장성급으로 기소 여부에 관심이 쏠렸던 전익수 실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면담강요 등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전 실장은 자신에게 성추행 가해자의 영장 심사 내용을 전달한 군무원 양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담당 군 검사에게 전화해 자신이 양씨에게 범행을 지시했다고 기재한 영장 범죄 사실이 잘못됐다고 따지며 계급·지위를 앞세워 위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다.

특가법은 본인 형사 사건의 수사와 관련해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위력을 행사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전 실장이 장 중사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는 의혹은 끝내 밝히지 못했다.

의혹의 핵심 근거가 된 이른바 '전익수 녹취록'이 위조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결정적으로 '스텝'이 꼬이게 됐다.

특검팀은 그 책임을 물어 군인권센터에 녹취록을 제보한 김모(35) 변호사를 증거위조·사문서위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특검팀은 "(김 변호사가) 공군 법무관 시절 받은 징계로 전 실장에게 사적 앙심을 품은 게 범행의 동기"라고 설명했다.

다만 군인권센터는 녹취록을 폭로할 당시까지 조작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해 별다른 법적 처분을 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20비행단 군사 경찰이 초동 수사할 때 상부에 보고서를 올리며 '불구속 수사 예정'이라고 명시한 것도 선례에 비춰 특이한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2019년∼2022년까지 공군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 자료를 보면 다수 사건의 초동 단계 보고서에 '불구속 수사' 문구가 관행처럼 기재돼 있다는 것이다.

이 중사 사건 때도 20비행단 군사경찰 초급 수사관이 기존의 보고서 양식을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특검 수사의 결정적 계기였던 군 지휘라인의 수사 무마 의혹을 끝내 밝히지 못하면서 '미완의 100일'이란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특검팀은 "수사무마·은폐 의혹 같은 본류를 수사하기 위해 녹취록의 진실성을 수사하며 쫓아가다 보니 녹취록 조작 의혹을 밝혀낸 것"이라며 "수사무마 등 의혹도 부족하지 않게 충분히 수사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이 중사 유족은 "이 중사 사망 전후로 가해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가 계속된 이유를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며 "윗선을 법정에 세우지 못한 점은 유가족의 한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