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대용신탁은 초고액 자산가들의 전유물? 누구나 부담없이 할 수 있다[조웅규 변호사의 품격있는 상속]
입력
수정
남편과 이혼한 A씨, 장애있는 아들 홀로 키워
만약의 상황 대비하기 위해 미리 유언 준비
‘맞춤형 상속 설계’ 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 추천
유언대용신탁은 수수료 부담 커 일반인들 거부감
초고액 자산가들의 전유물로 잘못 알려져 있어
수탁자를 신탁회사로 할 경우 상당한 비용 발생
피상속인 스스로 수탁자가 되는 ‘자기신탁’의 경우 비용절감
설정보수, 관리보수, 실행보수 등 금융기관에 신탁할 때 드는 비용 ‘제로’
유언대용신탁 선언서 공증할 때 발생하는 공증비용만 발생
‘조웅규 변호사의 품격있는 상속’은 상속‧자산관리와 관련된 핵심 내용을 살펴봅니다. ‘완벽한 상속’을 계획하는 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들을 유형별로 들여다봅니다.한스 홀바인의 회화 작품 ‘대사들’은 영국에 파견된 프랑스 외교관 장 드 당트빌과 프랑스 라보르의 주교 조르주 드 셀브의 초상화다.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일반적인 초상화와 달리 이 작품은 인물을 화면의 중심이 아닌 양쪽에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대신 가운데에 펼쳐진 찬송가, 줄 끊어진 악기, 지구의, 해시계, 천문학 기구들 등 여러 오브제를 배치해 당시의 시대상과 그들의 뛰어난 학식을 부각시켰다. 그런데 중앙 하단에는 명료하게 표현된 다른 부분과 달리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납작한 물체가 있다. 바로 해골이다.원근법의 극단적인 왜곡으로 형태를 재해석한 ‘왜상기법’에 따라 정면에선 형상이 숨어 있다가 특정한 각도에서 보면 해골 모양이 확연히 드러난다. 홀바인은 권력과 지식을 두루 갖춘 대사의 초상에 해골과 같은 여러 ‘죽음의 상징(Memento mori)’들을 넣었다. 죽음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항상 곁에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법무법인 바른의 상속 및 자산관리 전문가인 조웅규 변호사가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상속분쟁 동향, 분쟁 방지를 위해 고려해야 할 점, 분쟁 발생 시 대응법 등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상속 준비 단계에서의 효과적인 자산관리 방안도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 주]
이를 통해 부와 권력의 덧없음을 깨닫고 좀 더 겸허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다짐하게 한다. 더불어 인간은 유한하기에 우리의 죽음 이후에 놓일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A씨는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다. 남편은 자녀인 B씨를 내버려 둔 채 외도를 했다. A씨는 이혼 후 B씨를 키우고 있다. B씨는 선천적인 질환으로 계속적인 치료와 간호가 필요하다. A씨는 최근 지인의 교통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문득 자신도 언제든 떠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홀로 남겨질 B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미리 유언을 준비한다면 A씨의 재산을 B씨에게 상속할 수는 있다. 하지만 B에게는 보다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대안을 찾다가 주변의 소개로 금융기관에서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추천받았다.
하지만 유언대용신탁 상품은 상속재산 중 현금성 자산이 30억원 이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상당한 수수료도 부담이다. B씨에게 필요한 상속을 설계해 줄 방법으로 유언대용신탁이 적절해 보이는데, 어쩐지 유언대용신탁은 초고액자산가들의 전유물인 것만 같다. 그렇다면 A씨는 유언대용신탁을 포기해야만 할까.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A씨도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B씨를 위한 상속을 설계할 수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을 대신하는 신탁이다. 위탁자가 자신이 사망한 때에 수익자에게 수익권을 귀속시키거나 위탁자가 사망한 때부터 신탁이익을 취득할 수 있는 수익권을 부여하는 형태의 신탁을 말한다.사람이 사망하면, 그의 재산적인 지위가 법률의 규정에 의해 특정의 사람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되는 상속이 일어난다. 상속에 있어 사망한자(피상속인)의 지위를 누구에게 이전시킬 것인지를 피상속인이 스스로 정하는 것이 유언 또는 유언대용신탁이다.
피상속인이 제3자에게 재산을 승계할 때, 유언은 재산권을 그대로 이전하는 방식을 취한다. 유언대용신탁은 수탁자라는 제3자를 개입시켜 수익권의 형태로 재산상의 이익을 부여한다. 예컨대 A씨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B씨에게 승계하고자 할 때, 유언을 하면 A씨가 사망하고 유언이 집행되면 집의 소유권이 곧바로 B씨에게 이전된다.만약 B씨가 미성년인 동안에 이혼한 배우자가 친권을 회복한다면 B씨가 상속한 집의 처분권한은 사실상 이혼한 배우자가 행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A씨가 원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만약, 유언대용신탁을 하면 A씨의 집은 수탁자 명의로 이전된다. 수탁자는 B씨가 그 집에서 거주하거나 그 집을 임대해 B씨가 차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후 A씨가 지정한 시점, 예컨대 B씨가 30세가 되는 때 B씨의 소유로 이전하도록 정할 수 있다.
신탁은 재산권의 이전 과정에 제3자를 개입시켜 수익권의 형태로 재산상의 이익을 부여한다. 수익권은 특정인에게 어떠한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채권이기 때문에 위탁자의 요구를 반영해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다. 이외에도 유언대용신탁은 유언보다 자녀를 위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상속설계를 하는데 유리하다.
첫째, 유언은 엄격한 요식성으로 인해 유언장의 효력, 내용에 관한 다툼으로 분쟁이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또 상당한 사례에서 유언자의 진의에 부합함에도 그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또한 유언은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다. 때문에 그것이 최후에 작성된 것인지 확인되기 전에는 집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은 대부분 변호사 또는 신탁업자 등의 전문가가 참여하여 체결하게 되므로 분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
둘째, 유언은 피상속인의 재산이 특정인에게 귀속된 후 그가 사망했을 때 해당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귀속되도록 정하는 게 불가능하다. A씨 사례에서, 만약 B씨가 A씨의 재산을 상속받은 후 질환이 악화해 사망하면 B씨의 부모인 A씨의 이혼한 배우자가 그 재산을 모두 상속받게 된다. 이것 역시 A씨가 원했던 결과는 아닐 것이다.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하면 상속으로 수익권을 행사하던 B씨가 사망할 경우, B를 대신하여 해당 수익권을 행사할 사람을 미리 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셋째, 유언자인 피상속인의 경제력이 급격하게 나빠져 유언의 목적물이 채권자들에게 넘어간다면, 해당부분 유언은 집행되기 힘들다.
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은 그 성립과 동시에 수탁자에게 재산권이 이전되고 신탁된 재산은 독립성이 인정된다. 때문에 위탁자의 재산상태가 변하더라도 유언대용신탁에서 정한 내용대로 온전히 집행될 수 있다. 이는 신탁의 중요한 기능인 신탁재산의 독립성에 근거한 효과다.
이처럼 유언대용신탁은 종래의 상속설계 방법인 유언의 단점을 극복한 진화되고 효과적인 상속수단으로서, 다양한 상속설계와 통합자산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효용에 비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A씨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유언대용신탁이 매우 고비용의 제도로서 초고액자산가들의 전유물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탁자를 신탁회사로 하는 계약 방식의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할 경우 실제로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피상속인 스스로 수탁자가 되는 신탁선언 방식의 유언대용신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신탁선언에 의한 유언대용신탁은 자기 또는 제3자 소유의 재산 중에서 특정한 재산을 분리하여 그 재산을 자신이 수탁자로 보유하고 수익자를 위하여 관리·처분한다는 것을 선언함으로써 설정하는 신탁으로 ‘자기신탁’이라고도 한다. 즉,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하면서 스스로를 수탁자로 만드는 것이다.이렇게 하면 수탁자를 신탁회사로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비용이 절약된다. 예를 들어 신탁선언 방식의 유언대용신탁은 신탁을 설정할 때 발생하는 설정보수, 신탁의 대상이 되는 재산의 소유권이 수탁자로 이전됐기 때문에 발생하는 관리보수, 피상속인이 사망한 이유로 발생하는 실행보수 등이 발생하지 않는다.
단지,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하는 선언서를 공증할 때 발생하는 공증비용만 발생할 뿐이다. 물론, 유언대용신탁이 좀 더 법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되기를 희망한다면 변호사의 법률 비용이 추가될 수 있다(이는 종래처럼 신탁회사를 수탁자로 하더라도 발생하는 비용이다).
신탁선언 방식의 유언대용신탁의 경우 평생 노력해서 일군 재산의 소유권을 피상속인의 생전에 제3자에게 이전할 필요가 없게 되므로 심리적인 거부감도 덜하다. 신탁선언 방식의 유언대용신탁은 신탁의 본고장인 영국, 미국에서 상속의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대륙법계 국가인 한국에 영미법에서 유래한 신탁은 이질적인 제도다. 같은 이유로 그동안 법률가들의 신탁에 관한 연구는 매우 보수적이고 조심스러웠다. 이에 반해, 금융권에서는 이를 금융상품의 하나로 보고 매우 적극적으로 연구했고, 그 결과 신탁이라는 제도가 아니라 금융기관의 신탁상품이 유언대용신탁을 대변하게 됐다.
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은 본래 피상속인의 지속적이고 유연한 상속설계를 돕기 위한 법제도다. 초고액자산가들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 누구라도, 민법상 상속제도가 갖는 여러 한계를 극복하고 국민들이 희망하는 구체적이고 유연한 상속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남겨질 가족들의 미래를 보다 정교하고 유익하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민법/신탁법)
제41기 사법연수원 수료
한국신탁학회 상임이사
중견기업연합회 기업승계 담당 변호사
상속신탁연구회 회장
Estate Planning Center 상속설계 본부장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