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경기 얼어붙는데…기업들은 일손이 부족하다고?

고용 있는 침체
미국 기업의 구인 건수는 지난해 여름 이후 매달 1000만 건을 웃돌고 있다. 버지니아주의 한 레스토랑에 붙은 채용 광고. /AFP연합뉴스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건설회사는 지붕 설치 작업에 시간당 20달러를 지급하겠다며 멀리 떨어진 텍사스주는 물론 카리브해 푸에르토리코에서까지 인부를 구하고 있다. 이 지역 거리에서는 채용 공고 현수막을 내건 상점을 쉽게 볼 수 있는데, KFC 매장은 시급 15달러에 장학금 혜택까지 약속했다. 10월 핼러윈데이에 ‘한철 장사’를 준비하는 코스튬 판매업자는 일찌감치 호텔방 수백 개를 예약해놓고 도시 밖에서 임시직 직원을 모으고 나섰다. 구직자가 ‘귀한 몸’ 대접을 받고 있는 미국 노동시장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실업률만 보면 완전고용, 성장률은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와중에 실업률은 낮게 나오는 이른바 ‘고용 있는 침체(jobful recession)’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가라앉으면 기업의 활동이 위축되면서 고용도 침체에 빠진다는 경제학 통념과 정반대다. 올 들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감률(연율 기준)은 1분기 -1.6%에 이어 2분기 -0.9%로 집계됐다. 성장률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해 기술적 경기침체의 요건을 충족한 상태다. 반면 미국의 실업률은 3%대 후반(8월 3.7%)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50년 새 가장 낮은 수준이다.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수수께끼 같은 일이 다른 선진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은 2분기 성장률이 0%로 고꾸라졌는데도 실업률은 4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절반에 가까운 기업이 직원을 못 구해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뉴질랜드 역시 1분기 경제가 역성장했지만 실업률은 3%대 초반에 그쳤다.

경제학자들은 노동인구 감소를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대다수 선진국이 고령화를 겪으면서 노동시장에서 ‘수요’보다 ‘공급’이 더 크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이 부진해진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국가 간 이동에 제약이 많아진 데다 미국의 불법 이민자 단속,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같은 정책적 변수도 있었다.

미국 65세 이상 인구의 노동참여율은 2020년 초 26%에서 최근 23%로 감소했다. 독일 등에서도 향후 10년간 수백만 명이 은퇴를 앞두고 있어 노동력 부족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시적 현상일 뿐 … 결국 고용도 나빠질 가능성”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는 성장률만 오르고 실업률은 고공행진하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각국의 고민거리였다. 또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경험한 12번의 경기침체는 모두 경기 위축과 실업률 상승을 동반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일각에서는 ‘고용 없는 침체’가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은 경기의 후행(後行) 지표라는 특성이 있어 경기침체가 본격화하면 결국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타라 싱클레어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일상과 노동의 거의 모든 측면이 교란됐기 때문에 재조정을 거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