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 대성당에 '천지의 빛' 뿌리고 떠난 추상의 대가, 방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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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60년 활동한 '빛 그림' 추상의 대가
프랑스 남부 아죽스 작업실에서 15일 별세
서울대 미대 졸업 후 대한민국 국비 장학생 1호
장욱진 사사하고 이응노 선생과 파리서 교류
김환기 법정스님 등과 인연...'빛의 구도자'로
한지와 닥종이 황토 등 한국적 재료로 자연채색
2018년 샤르트르대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 선발
유네스코세계유산에 영원히 남을 '빛의 생명력'
한 줄기 빛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리듯
이념과 종교 넘어 '빛 그림'으로 세상에 희망과 힘
프랑스 성지에 영원히 남을 '빛' 남기고 빛이 되다
![빛의 탄생 728x705cm, 2019](https://img.hankyung.com/photo/202209/01.31240709.1.jpg)
재불 원로화가 방혜자 씨는 15일(현지시각) 노환으로 입원 중이던 프랑스 파리 병원에서 영면했다고 16일 유족이 밝혔다. 올해는 그가 프랑스로 떠나 활동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올 봄 건강이 악화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방 화백은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약 150회에 걸쳐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한국적인 자연채색의 대가이자 추상 대작들을 남겨 세계 화단에서 '빛의 구도자'로 불렸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209/01.31240703.1.jpg)
"세상에 한 줌의 빛이라도 줄 수 있어 행복하다"
경기도 고양군 능동(현재는 서울) 아차산 아래 마을에서 태어난 방 화백은 마을의 맑은 개울 속에 잠겨 반짝이던 자갈돌들의 투명한 빛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7남매 중 가장 몸이 약하게 태어나 죽음의 문턱에 간 경험도 있다.
어린 나이에 식민지와 전쟁 등을 겪으며 평화와 사랑, 생명의 가치에 대해 일찍 눈떴다. 어린 시절의 악몽이 평생을 따라다녔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빛'을 탐구했다. “일생동안 가장 고심해온 것은 어떻게 하면 예술을 통해 평화에 이르는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죠. 세상에 환한 빛을 고루 비추는 것이지요.”
서울대 미술대학 재학시절에 그린 첫 작품 '서울풍경(1958)'이 그에게 평생 작품의 주제가 된 ‘빛’과의 인연을 시작한 계기였다.
밥 굶어도 물감부터 샀던 파리의 60년대
1961년 봄 파리 유학 시절은 고달팠다. 남의 집 다락방에서 살며 빵 한 조각으로 버틴 날도 많았다. 학교 사감이 아픈 방 화백을 발견해 기숙사로 데려간 뒤에도 배고픈 날들을 무수히 견뎌야 했다.
첫 전시회에 작품이 거의 다 팔렸고, 쿠르티용은 91세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방 화백을 후원했다.
장욱진의 제자, 이응노가 스승...1호 국비유학생
방 화백은 근현대 미술사에 빼놓을 수 없는 1세대 여류 화가다. 서울대 미대 재학시절 장욱진 화백에게 그림을 배웠다. 당시 이우환, 송영방 선생과 함께 수학했다. 장욱진 선생이 학교를 그만 뒀을 때도 명륜동 집까지 찾아가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눈 열성적인 학생이기도 했다.장학생으로 선발된 뒤 그는 파리행 항공료를 모으기 위해 졸업을 앞두고 첫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박수근 선생, 법정 스님 등이 찾았다. 법정스님은 방명록에 마음을 그리는 화가라는 뜻의 '심여화사(心如畵師)'라는 글씨를 써주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파리 길상사가 문을 열었을 때 그곳의 후불탱화를 추상으로 그렸다. 서울 보각사와 개화사의 후불탱화도 방혜자의 빛 그림으로 채워졌다.
파리 유학 시절 고암을 다시 만나 1989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방 화백은 한 가족처 지내며 예술적 스승으로 그를 따랐다.
천체 물리학자들도 놀란 한 방혜자의 '빛'
그는 평생 프랑스에 머물며 작품 활 외에도 한국 문화 알리기에 힘썼다. 동양 예술에 관심이 깊은 친구들을 시작으로 일반인들에게 붓글씨를 가르쳤다. 시인 샤를 줄리에 등 프랑스 여러 현대 시인들과 시화집을 내기도 했다.프랑스 비평가 질베르 라스코는 “우주를 경탄하는 방혜자의 시선은 우리가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도록 도모한다. 그녀는 또 우주의 아름다움, 조화, 다양함을 증언하기 위해 깨어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에서 알게 된 한국의 아름다움…자연채색의 대가
방 화백이 빛의 입자까지 그려낼 수 있었던 데는 '한지'가 있었다. 이전까지 유화를 그리던 그는 서양의 기법에 한지, 닥종이, 황토 등의 한국적 재료를 갖고 작품을 하기 시작했다. 종이를 접고 구기고 다시 펼친 뒤 한지 앞뒤로 그림을 그리면 인간이 손으로만 구현할 수 없는 깊은 색들이 배어난다고.수십 번을 칠하면 뒤에서 배어들고 앞으로 우러나는 자연채색의 기법이 완성된다. 종이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마치 빛이 번져 나가는 것을 표현했다고 그는 말해왔다.
"세상이 허망하고 고통스럽고 전쟁이 많고, 아픔이 가득한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항상 고뇌했어요. 나날이 더 깊은 마음으로 작업하면서 세상에 한 줌의 빛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행복합니다."
붓을 놓으면 아프다…꿈 속에서도 그렸다
그는 꿈 속에서도 빛을 그렸다. 어느 날은 출렁이는 바다를, 어느 날은 잔잔한 물에 비친 빛들이 꿈 속에서도 펼쳐졌다.2018년 3월 샤르트르 대성당 종교 참사회의실에 새로 설치되는 4개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엔 방혜자 화백의 작품이 선정됐다. 대성당의 창과 같은 청색 바탕의 4개 창에 각각 빛, 생명, 사랑,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
지난해 완공된 이 작품은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방 화백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기념식을 올해 하반기로 미뤄왔다.
아래는 시를 즐겨 쓰던 방혜자 화백이 2008년도에 쓴 시다. <안으로 가는길 > -방혜자
마음을 비우고
우주의 중심으로 걸어간다
텅빈 가운데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안으로 가는길은
마음이 깨어나는길
어둠을 다 거두고
밝게 피어나는 시작의 길
세포 하나 하나까지도
활짝 깨어나
새로 태어나는 길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