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살인 또 반복…法·檢·警이 만든 인재

현장에서

"촬영물 유포" 협박에도 불구속
사건 터질때마다 다짐만 쏟아져
법무부, 뒤늦게 구속수사 등 발표

오현아 사회부 기자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가해자 전모씨가 16일 구속됐다. 그는 오후 3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약 30분간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피해자에게 죄송하다”는 짧은 답변을 남겼다. 가해자가 뒤늦게 구속됐으나 달라질 것은 없다. 피해자는 지난 15일 그의 피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건은 법원과 경·검 수사기관의 안일함이 만든 인재라는 지적이 많다. 전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지난해 10월, 불법촬영 때문이었다. 당시 전씨는 피해자에게 “불법촬영한 신체 영상과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도망과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영장을 기각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가 있을 시 구속 사유가 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 사건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수사기관의 안일함도 도마에 올랐다. 전씨는 올해 1월 스토킹 혐의로 다시 한 번 기소됐다. 그러나 이번엔 경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검찰도 기소 이후 재판을 진행하고, 구형까지 했으면서도 전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따로 청구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합의 등을 핑계로 다시 접근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검·경은 피해자를 살릴 기회를 잃었다.

스토킹 범죄 문제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올해만 해도 경찰에 신변보호를 받다가 살해당한 스토킹 피해자가 4명이다. ‘은평구 공인중개사 살인 사건’ ‘김병찬 사건’ ‘이석준 사건’ ‘서초구 19층 베란다 살인 사건’ 등에서 살릴 수도 있었던 생명이 꺼져간 것이다.

전씨 영장 실질심사가 열린 날, 법무부는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피해자의 의사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죄)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수사기관이 사건 초기에 개입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스토킹 범죄의 구속수사 원칙과 가해자 위치 추적 등 잠정 조치도 신설하기로 했다.불안감은 여전하다. 스토킹 범죄가 터질 때마다 수사기관 등의 다짐도 쏟아져나왔지만, 사건은 반복됐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반의사불벌죄를 가장 큰 문제로 짚었지만, 피해자 의사를 묻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분리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접근 금지나 구치소 유치 등의 조처가 대표적이다. 결국 관심과 의지가 문제라는 얘기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 연구위원은 “스토킹 범죄 특성상 가해자는 사후에 어떤 처벌을 받는지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영장을 담당하는 법원도 재범 가능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법무부의 다짐이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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