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정책'이 필요하지 '정치'는 필요 없습니다[심형석의 부동산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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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반지하 거주가구 32만가구 달해…서울에만 20만가구
'타워팰리스급 임대주택' 보다는 소유 가능한 임대주택이 먼저
사진=연합뉴스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비정상 주거문제에 대한 관심을 키웠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전국의 지하, 반지하 거주 가구는 32만7320만가구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글로벌 경제도시인 서울에만 무려 20만1000가구가 있다는 점입니다.

원래 반지하는 주거공간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닙니다. 유사시 방공호 또는 대피소로 사용하기 위해 정부가 1970년 건축법을 개정, 신축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에 지하실을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제 지하, 반지하 거주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1만 가구에 불과한 비정상거처 거주자 우선 공급 물량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마저도 과거 6000가구에서 늘린다고 예정된 수치이니 비정상 주거문제 해결에 더 큰 관심이 필요합니다. 우선 공급물량을 서울에만 적용한다고 해도 20만 호의 비정상 거처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무려 20년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동안에 또다시 수해가 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생존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걸려있는 시급한 임대주택 문제 해결이 눈앞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은 ‘타워팰리스급 임대주택’을 이야기합니다. 싱가포르의 주택 상황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임대주택 고급화를 이야기합니다. 임대주택도 고급화되어야 한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정책은 우선순위가 있고 재정의 사용처는 시급함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특히나 임대주택에 10~20년씩 편안한 주거를 하게 되면 무주택 입주민들의 자산축적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부동산 자산 가격이 폭등하는 시기에는 소위 벼락 거지가 됩니다. 타워팰리스급 임대주택보다는 자가 소유로 전환될 수 있도록 임대주택의 장기적 로드맵이 더욱 필요합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16일 주택공급대책이 발표됐습니다.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이란 제목에서 느꼈던 의심은 46쪽에 달하는 내용을 보고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온갖 정치적 술사로 점철된 대책을 읽으면서 학자들이 써놓은 보고서를 읽는 느낌을 받은 건 필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연구용역, 실태조사, 마스터플랜 수립 등 부문별 계획이 다시 나와야 하는 대책은 대책이 아닙니다. 그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다면 정권이 바뀌지도 않았을 겁니다.시급한 대책은 뒷전이고 급하지 않은 정책이 앞서는 것을 보면서 윤석열 정부도 '부동산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떨치기가 힘듭니다. 5년 내내 부동산정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택수요자들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5년이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부동산과 정치는 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들의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자산이 부동산이기 때문입니다. 선거가 다가오면 우리들은 정치인들의 입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번에는 어떤 공약이 나올까. 우리 동네에 돈이 되는 개발사업이 발표될까. 부동산정책과 개발사업은 대선이나 총선 등 각종 선거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 공약 중 하나입니다. 정치인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좌파 정부이지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감세 등 갖은 감언이설을 쏟아 놓습니다. 우파 정부도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임대주택이 갑자기 타워팰리스가 되기도 합니다.

내 집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주거를 마련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누구나 속으로는 내 집 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며, 부동산정책에 울고 웃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집을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은 정치 성향에서도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부동산을 정치에 활용합니다. 표가 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만 부동산을 정치에 활용하면 할수록 부동산 정책은 사라지고 부동산정치만 남을 겁니다.부동산은 가장 중요한 민생이며 생존의 필수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표를 얻기 위한 용도로만 활용한다면 주택수요자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청약 대기자로 희망 고문을 당하고 종부세(종합부동산세)로 골치 아픈 생활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동산 정치가 아닌 정책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부동산정치 시즌2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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