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英여왕 관 안치된 웨스트민스터 홀 직접 들어가보니

한국 언론 첫 취재 허가…12시간 줄서 기다린 조문객 5초 참배
사람 붐비는 데도 압도적 적막…거대한 공간에 절제된 화려함과 권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관은 현재 런던 템스강 옆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돼 있다.영국 왕실은 14일(현지시간) 오후부터 19일 아침까지 관을 공개하고 일반인이 직접 여왕과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17일 오후 1시께 웨스트민스터 홀에 들어서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900여년 역사를 품은 웨스트민스터 홀은 길이 70m, 폭 21m, 높이 28m에 기둥이 없이 뚫려 웅장한 느낌을 주는 구조다.이 거대한 공간이 한가운데 마치 섬처럼 놓인 여왕이 관이 내뿜는 강력하고 묵직한 권위로 가득 찼다.

관은 빨간색 8각형 모양 단상 위에 3단으로 다시 쌓인 4각형 단상과 높이가 1m가 넘어 보이는 보라색 관 받침대(관대·캐터펄크) 위에 놓여있었다.

관에는 적색, 황색의 왕실 깃발(로열 스탠더드)이 덮였고 여왕의 보라색 제국 왕관(Imperial State Crown), 흰 장미로 꾸민 화환, 국왕의 상징인 지팡이와 구(orb)가 올려져 있었다.홀의 출구를 향해 놓인 여왕의 머리 쪽에는 세로로 긴 웨스트민스터 은색 십자가가 서 있고 네 귀퉁이에는 그보다는 조금 높이가 낮은 촛대에서 촛불이 일렁이며 관을 밝혔다.

관 주변은 국왕 근위대 4명, 런던탑 근위병 4명, 왕실 의장대 2명이 지킨다.

빨간색 제복에 검은색 높은 모자를 쓴 국왕 근위대 4명이 관에 가장 가까이 네 모퉁이에 섰고, 바닥에는 런던탑 근위병 4명이 배치됐다.모자에 흰 깃털을 꽂은 의장병 2명은 출구를 향해 나란히 서 있었다.

경찰관 4명이 따로 런던탑 근위병 근처에서 마주 보는 자세로 경계를 섰다.

전날 한 남성이 관을 향해 달려들었다가 경찰에 바로 붙잡히는 소동이 벌어졌다.

참배객은 기다란 직사각형 형태의 홀을 따라 관 양쪽 옆으로 두 줄씩 총 네 줄로 걸어가며 여왕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이들이 관 앞에서 멈춰서 예를 표한 시간은 대개 5초. 관을 향해 방향을 틀어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굽혀 인사를 하고는 바로 돌아서야 했다.

가슴에 성호를 긋고서 고개 숙여 조문했다면 10초. 더 지체하면 연미복을 입은 안내요원이 정중하게 다가와 조용히 퇴장을 권했다.

관 앞에서는 잠시 앞사람과 섞여 모여있다보니 대체로 1초에 1명꼴로 조문한 뒤 출구로 향하는 듯 했다.

참배객은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가며 아쉬운 듯 연신 관 쪽으로 돌아보거나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조문은 몇 초에 그쳤지만 이들의 노력은 대단하다.

이 짧은 인사를 위해 최저 6도의 새벽 추위를 견디며 12시간 넘게 8㎞에 달하는 줄을 서서 기다렸다.

가만히 서 있거나 잠시 앉은 것도 아니다.

줄은 앞으로 계속 이동하기 때문이다.

휠체어 이용자 등을 위한 줄은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1.3㎞ 떨어진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부터 시작하지만 대부분 나이가 많고 몸이 불편한 점을 감안하면 고되기는 마찬가지일 테다.

이날 연합뉴스와 로이터통신 등 기자 6명은 출구로 들어가면 바로 나오는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 벽에 붙은 발코니에서 참배 장면을 지켜봤다.

초가을 햇빛이 입구 쪽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참배를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자세히 보였다.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자 '딱, 딱' 천천히 두 번 바닥을 치는 근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정확히 박자를 맞춘 발걸음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더니 맞은 편 오른쪽 계단 위에 제복을 입은 경비병 10명이 등장했다.
이들은 천천히 발맞춰 관 쪽으로 걸어와 각자 같은 복장을 한 경비병 옆 혹은 뒤에 섰다.

관 오른쪽 위 발코니에 있는 경비병이 긴 칼끝을 바닥에 다시 두 번 내리치자 기존 경비병들이 자세를 풀고는 열을 맞춰 빠져나갔다.

새로 교대한 경비병은 세워서 들고 온 칼과 창을 돌려 바닥에 대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고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미동도 없는 '동상'이 됐다.

이 교대식은 당초 20분 간격이었는데 참배 인원을 늘리려고 30분으로 늘렸다고 한다.

교대식 중에는 참배를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국내외 언론사에 약 30분간 웨스트민스터 홀 취재를 허용했다.

한국 언론이 조문실인 웨스트민스터 홀 내부에서 취재 승인을 받은 것은 연합뉴스가 처음이다.

여왕 장례 일정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취재 신청 안내는 참배 시작 전날인 13일에서야 공지됐다.

이후 웨스트민스터 홀 참배를 담당하는 영국 의회의 미디어 담당 부서에서 보낸 승인 이메일은 현장 취재 약 12시간 전인 16일 밤 11시 59분에 도착했다.

1시간 단위로 기자 10∼12명을 배정하는데 미처 메일을 확인하지 못했거나 다른 일정 때문에 못 온 경우도 꽤 있었다.

이번 웨스트민스터 홀 취재에는 별도의 승인 패스는 없었고 주요 포인트에 명단이 공유돼 이름만 대면 통과할 수 있었는데 참배객 줄 사이를 지나 의회 교육센터 건물로 들어가자 공항 수준으로 보안 검사를 했다.
앞 팀의 한 기자가 취재 중 스마트폰을 꺼냈었는지 검열에 가까운 수준의 확인을 받고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홀에서는 사진 촬영을 포함해 스마트폰 이용이 엄격하게 제한됐다.

홀 앞에서는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시민을 마주쳤지만 말을 걸지 못하게 했다.

까다로운 취재 제한을 조건으로 하면서도 왜 외국 기자들을 웨스트민스터 홀 내부까지 들어오도록 허용했을까 의아했는데 끝나고 나올 때는 잠시나마 영국을 지탱하는 '혼'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식 없이 거대한 공간 속에 절제된 화려함과 극도로 엄격한 격식은 왕실의 권위를 체감케 했다.

10시간 이상 인내하며 기다린 끝에 여왕의 관에 참배하고 차분히 나오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웨스트민스터 홀을 가득 채운 침묵은 압도적이었다.

카펫이 깔려 소음을 흡수했지만 200∼300명이 동시에 움직이는데도 옷자락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여왕의 백성들'은 코가 빨개질 정도로 슬픔이 밀려오는 데도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조차 조심스럽게 경건하게 닦았다.

웨스트민스터 홀 밖으로 나오자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 한 것 같았다.담장 밖 윈스턴 처칠 동상이 있는 공원에서는 한 여성이 영국 국가 '하느님,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를 부르고 있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