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살장·태양광·루프톱바 변신…옥상의 '화려한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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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됐던 옥상의 부상경남 창원에서 물류 창고를 운영하는 A씨는 지난해 한 태양광 업체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들었다. 노는 공간이었던 창고 옥상(1만6000㎡)을 월 400만원에 빌려달라는 것. 해당 업체는 두 달 동안의 공사 끝에 옥상을 태양광발전 시설로 완전히 바꿔놨다. 발전 용량은 시간당 1479.36㎾. 6가구가 한 달 동안 생활할 수 있는 규모다. A씨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임대료를 버는 거라 (나에겐) 로또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창고·공장에 태양광 발전 시설
월 수백만원 임대료 수익 창출
수영장 등 체육시설로도 인기
도심 옥상 '몸값'도 격상
‘애물단지’ 옥상이 ‘금싸라기’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넓은 옥상은 태양광발전소나 풋살장으로, 좁은 도심 옥상은 루프톱바나 통신중계소 등의 수익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식이다. 건물의 숨은 부가가치가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접근성이 좋은 옥상을 갖춘 건물의 몸값도 덩달아 꿈틀거리고 있다.
태양광·풋살장 품는 옥상
‘옥상 재테크’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건 태양광 사업이다. 물류 창고·제조 공장 옥상을 태양광발전 사업자에게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다. 기존 건물 옥상은 산림 등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고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있어 최근 더욱 인기가 높아졌다. 경기 화성에서 철강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B씨는 지난해 말 9274㎡의 옥상을 빌려주고 한 달 200만원의 임대료를 받고 있다. 공장 지붕을 옥상으로 바꾼 뒤 패널을 깔았다. 충북 음성의 한 플라스틱 공장은 이달부터 업체에 5700㎡가량을 임대하고 연 2547만원을 받고 있다. B씨가 투자한 금액은 한 푼도 없다. 태양광발전 전문업체인 S사 관계자는 “민간 기업이 전액 투자하는 방식이어서 최근 문제가 된 정부의 부실 지원 시비도 없다”고 설명했다.최근 들어 옥상을 새롭게 채우는 게 체육시설이다. 풋살장이나 수영장을 만들어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서울 양평동 롯데마트 양평점은 6년간 주차장으로 썼던 옥상 공간을 지난 4월부터 풋살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풋살장 2개를 짓는 데 3억원가량을 투자했다. 햇빛이 절대조건인 태양광과 달리 야간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강점. 회사는 투자 비용을 5년 안에 회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들어 상가·백화점의 옥상 부지를 풋살장 등 체육시설로 조성한 사례는 총 12건에 달했다.
옥상이 뒤바꾼 건물의 가치
루프톱바는 태양광, 스포츠시설과 함께 3대 ‘옥상 비즈니스’로 꼽힌다. 정부가 2020년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바꿔 안전·위생 기준을 충족하면 옥상에 루프톱바를 지을 수 있도록 한 조처가 루프톱바 전성시대의 문을 연 신호탄이 됐다. 서울 충정로3가 C와인바가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옥상을 루프톱바로 전환해 와인바 수용인원을 기존 30명에서 60명으로 늘렸다. 박모 대표(35)는 “전체 손님의 70% 이상이 옥상 루프톱바를 이용한다”고 말했다.루프톱바를 보유한 건물의 임대료, 매매가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 용산 해방촌 공인 관계자들에 따르면 루프톱이 포함된 상가 임대료는 일반 상가보다 3.3㎡당 10만원 높게 형성돼 있다. 예를 들어 해방촌에 루프톱 술집으로 운영되는 한 상가(실내 3층 66㎡, 옥상 50㎡)는 보증금 3000만원, 월세 350만원을 내고 있다. 총면적이 비슷한 실내 상가가 월세를 200만~250만원 내는 것에 비해 30% 이상 임대료가 높다. 인근 K 공인 관계자는 “임대료가 높아진 만큼 건물 가격도 덩달아 뛴다”며 “전망 좋은 곳 건물주들은 무조건 세입자에게 루프톱을 운영하는 조건으로 계약하고 있다”고 말했다.통신사들의 ‘품질경쟁’도 옥상의 몸값을 높이는 숨은 요인이다. 5G(5세대 통신)는 기존 3G, 4G에 비해 주파수가 높아 통신에 필요한 전파 도달범위가 더 짧다. 기지국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전국 기지국 수는 2015년 91만6836개에서 2022년 150만4606개로 급증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서울의 경우 월 200만~500만원, 지방은 50만~100만원 수준의 임대료를 줘야 옥상에 중계기를 설치할 수 있다”며 “주변이 탁 트인 옥상은 부르는 게 값이어서 통신사들 간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아예 설계부터 옥상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건물도 늘고 있다. 옥상에 작은 실내공간을 마련하고 바로 아래층과 연결하는 식이다.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코로나19 이후 국내 건축업계가 밀집 규제가 덜한 야외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민기/장강호/김우섭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