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진짜야?…'애플페이'가 한국에 온다면 [빈난새의 한입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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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페이 한국 상륙설 재점화, 이번엔 진짜일까애플페이의 한국 상륙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2014년 애플페이 등장 이후 수년간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단골 소문이었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제법 진지합니다.
현대카드 1년 독점 계약
연말부터 서비스 개시 관측
애플도 새 iOS에 애플페이 추가
"지금 아니어도 결국 시간문제"
관건은 비용과 가맹점 커버리지
애플페이 수수료 높게 책정되면
소비자에 부담 전가 불가피
NFC 결제 인프라 확보도 난제
지난달 초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현대카드의 애플페이 독점 도입설(設)'은 시간이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애플이 현대카드에 1년간 애플페이의 국내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올해 12월부터 일부 대형가맹점을 시작으로 애플페이 서비스를 개시한다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물론 현대카드는 강력 부인했고 지금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애플의 비밀 유지 요구에 따라서겠죠. 그런데 최근에는 애플도 '떡밥'이라 할 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주 업데이트를 시작한 아이폰용 운영체제 iOS16의 월렛(지갑) 서비스에는 '애플페이 시작하기' 메뉴가 추가됐습니다. 이제까진 애플이 국내 iOS에 도입하지 않았던 기능입니다. 최근 국내용 애플 미디어 서비스 이용 약관의 '지불·세금·환불' 관련 내용에 "지불 방법을 애플 지갑에 추가했을 경우 애플은 애플 페이를 사용하여 귀하가 선택한 애플 지갑상의 지불 방법에 청구할 수 있다"는 문장이 추가된 사실도 포착됐습니다.
애플페이 도입을 기다려온 한국 아이폰 사용자들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기분으로 소식을 기다리는 모양새입니다. 삼성 갤럭시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73%)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만 고집해온 사용자들에게도 애플페이의 부재는 상당한 아쉬움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SNS 등지에선 애플페이 도입에 대비해 벌써부터 현대카드에 가입했다는 아이폰 사용자들의 인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아이폰을 쓰고 싶지만 삼성페이의 압도적인 편리함 때문에 갤럭시를 쓰던 사용자들에게도 애플페이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습니다.
63개국에 출시된 애플페이
왜 한국엔 여태껏 못 들어왔나
이제껏 적잖은 수요와 거듭된 시도에도 애플페이의 한국 도입은 현실화하지 못했습니다. 애플페이가 출시된 국가는 총 63개국, 아시아 지역만 봐도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 이미 서비스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접촉 결제를 위해 NFC(근거리무선통신) 기술을 쓰는 애플페이의 작동 방식 때문입니다. NFC는 특정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해 10cm 안팎의 짧은 거리에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술입니다. 스마트폰과 결제 단말기 사이에서 결제 정보를 전달해 비접촉 결제도 가능하게 하는 원리입니다. 이를 위해선 따로 NFC 기능을 갖춘 단말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카드 결제가 가능한 대부분의 가맹점은 마그네틱 신용카드를 긁어서 결제하는 MST(마그네틱 보안 전송) 방식과, 카드를 꽂아서 결제하는 IC칩 방식의 단말기를 쓰고 있습니다. NFC 단말기의 보급률은 10%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나마도 NFC 단말기는 있지만 소프트웨어가 없어 실제 결제가 불가능한 가맹점이 대부분입니다. 애플페이를 들여오려면 NFC 단말기가 필수인데 결제 인프라가 아예 다른 겁니다.NFC 단말기는 구축 비용도 비쌉니다. 지금도 NFC 단말기의 가격은 1대당 15~20만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애플은 과거 협상에서도 이 NFC 단말기 보급 비용을 카드사가 부담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액도 카드 결제가 보편화된 한국에선 영세 가맹점까지 모두 NFC 단말기를 갖추는 게 이상적인데, 국내 299만 신용카드 가맹점에 NFC 단말기를 깔려면 그 비용만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동안 국내 카드사들이 애플페이 도입을 성사시키지 못한 이유입니다. 2015년 등장한 삼성페이도 있습니다. 삼성페이는 NFC 방식뿐 아니라 이미 기존 가맹점에 깔려 있던 MST 단말기로도 결제가 가능하도록 해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스마트폰이 신용카드 마그네틱 띠와 같은 기능을 하도록 구현했기 때문에 새로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그 결과 삼성페이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간편 결제 서비스로 이미 완전히 자리매김 했습니다. 카드사들이 큰 비용을 들여 새로운 비접촉 결제 방식을 지원할 유인이 약해진 것입니다.
더욱이 삼성전자는 삼성페이를 통해 발생하는 거래에 대해 카드사들로부터 별도의 수수료를 받지 않습니다. 반면 애플은 애플페이로 이뤄진 결제에 대해 건당 최대 0.15%의 수수료를 해당 카드사나 은행에 부과하고 있습니다. 카드사엔 비용이 늘어나는 셈이죠. 여기에 NFC 결제 규격의 국제 표준인 'EMV 비접촉 결제' 기술을 사용하려면 약 1%의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유로페이·마스터카드·비자카드가 제정해 세 회사의 머리글자를 따 이름을 붙인 EMV는 글로벌 카드사와 애플페이, 글로벌 버전의 삼성페이, 구글페이 등이 글로벌 시장에서 채택하고 있는 결제 기술의 표준 규격입니다. 반면 국내 카드사들은 자체적으로 한국형 규격(KLSC)을 만들어 올해 말부터 비접촉 결제 서비스에 적용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애플페이가 이를 허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입니다. 만약 애플페이가 한국에도 EMV 비접촉 결제 규격대로 도입된다면 카드사들은 EMV 수수료도 추가로 내야 합니다. 안 그래도 가맹점 수수료율이 갈수록 하향 조정되고 있는 카드사들 입장에선 애플페이와 제휴를 했다가 오히려 수익성이 더 나빠질 수 있으니 꺼려왔던 겁니다.
"애플처럼 생태계 만들것"
현대카드, 애플페이 승부수
이런 만만치 않은 장애물에도 현대카드는 꾸준히 애플페이 도입을 추진해 왔습니다. 여기에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정 부회장이 이달 초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애플페이 독점 계약 관련 마무리 협상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정 부회장이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지지자(?)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업계에서 해오던 관행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단 애플처럼 새롭게 생태계를 만들겠다"며 '금융권의 애플'을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현대카드의 인기 상품인 '현대카드 제로'를 처음 출시한 2011년엔 정 부회장이 직접 자신의 SNS에 제로카드를 소개하며 "만들고 보니 딱 스티브 잡스 취향"이라고 하기도 했죠. 이렇게 '애플에 진심'인 현대카드에도 애플페이 국내 도입은 어려웠지만, 지금은 예전보다도 더 현대카드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한때 업계 2위(순이익 기준)까지 치고 올랐던 현대카드는 올 상반기 롯데카드에 역전을 허용하며 4위로 떨어졌습니다. 코스트코 독점 계약을 가져온 데 이어 스타벅스 대한항공 배달의민족 등과 최초 사업자전용신용카드(PLCC)를 내놓으며 일으켰던 신선한 돌풍도 이제 힘이 다한 모양새입니다.
이 시점에 현대카드가 엄청난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애플페이를 독점으로 들여올 수 있다면 판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카드 시장은 물론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간편결제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입니다. 현재 국내 오프라인 비접촉 결제 시장은 삼성페이가 사실상 독점 상태인데, 현대카드가 애플페이를 독점으로 제공하면 여기에 대항할 만한 경쟁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서비스 수수료·소비자 비용
현대카드가 정말로 애플페이 독점 제휴에 성공한다면 첫 번째 관심사는 수수료입니다. 애플페이는 제휴 은행이나 카드사에 애플페이 사용에 따른 수수료를 결제 건당 부과하고 있습니다. 수수료율은 국가별로 다른데 체계가 가장 단순한 미국에선 건당 0.15%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서비스가 중단된 러시아의 경우 수수료율이 0.05%(현금카드)~0.12%(신용카드)로 좀더 낮지만 대신 애플페이에 카드가 새로 등록될 때마다 금융사가 애플에 일정 금액을 추가로 내야 합니다.이렇게 애플이 전 세계에서 애플페이 수수료로 거둬들이는 금액은 연간 10억 달러(1조3000억 원) 규모입니다. 일부 해외 카드사들은 애플이 아이폰에서 간편 결제 수단으로 애플페이 사용만 가능하도록 경쟁을 막아두고 수수료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최근 미국 법원에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애플은 당초 금융사들로부터 적잖은 애플페이 수수료를 건당 받는 대신 직접 카드를 출시하지는 않기로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었지만, 애플이 이를 뒤집고 2019년 골드만삭스와 '애플 카드'를 내놓자 금융권에서도 반격을 모색하는 분위기입니다.)
어쨌든 관건은 한국의 애플페이 수수료가 어떻게 책정될지 입니다. 만약 0.15%만 돼도 카드사 입장에선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국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은 0.5~1.5%입니다. 기존에 카드사가 거둬들인 수수료 수입의 10~30%를 애플에 넘겨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EMV 수수료 약 1%도 있습니다.
일부에선 중국의 애플페이 수수료율이 0.03%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기도 하지만 현실성은 낮아보입니다. 중국은 위챗페이 알리페이 등 국내 간편 결제 서비스의 점유율이 높아 애플페이의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데다, 거대한 중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애플이 몸을 낮춘 것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0.03%는 중국이어서 가능한 가격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업계에선 현대카드와 애플페이가 협의 중인 수수료율이 0.15%보다 더 높다는 소문도 벌써 돕니다. 수수료가 중요한 건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애플페이 도입 초기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선 "자판기에서 1달러짜리 상품을 샀는데 1.25달러가 결제됐다"거나 "어떤 가맹점에선 애플페이에 등록된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10센트를 추가로 받는다"는 등의 말이 많았습니다. 은행이나 카드사들이 수수료 일부를 가맹점과 소비자에게 물린 겁니다.
현대카드가 높은 수수료를 주고 애플페이를 들여온다면 '애플페이 전용 카드'를 통해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대카드는 애플페이와 전용 PLCC를 만들 계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카드가 애플페이 도입에 따른 초기 비용 부담을 만회하기 위해 해당 카드만 애플페이에 등록 가능하도록 하고, 소비자가 부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실적 조건을 높게 설정하거나 연회비를 높이는 식으로 카드를 설계할 수도 있습니다.
애플페이 도입은 결국 시간문제
"한국 결제업계 업그레이드 시점"
또 하나의 관건은 애플페이의 국내 가맹점 커버리지입니다. NFC 결제 인프라가 미비한 한국에서 애플페이를 쓸 수 있는 가맹점을 얼마나 많이,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막상 애플페이를 들여왔는데 실제로 결제할 수 있는 가맹점이 적으면 사용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더욱이 애플페이 독점 계약 기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현대카드로선 초기 가맹점 확보 속도전이 필수일 겁니다. 현대카드는 일단 스타벅스 이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 가맹점 위주로 오프라인 NFC 결제 인프라를 확보하고, 온라인 결제망 구축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NFC 단말기 보급 비용을 고려하면 보편화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서나 카드 결제가 익숙한 소비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초반엔 성에 안 찰 수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한국에 애플페이가 도입될 지 여부는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비접촉 결제가 '뉴 노멀'이 되고, 글로벌 결제 표준이 NFC 방식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애플페이가 들어오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일 겁니다. 한 카드업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페이 사례가 보여주듯 모바일 기기 공급자가 제공하는 간편 결제 서비스는 태생적으로 소비자 접근성과 사용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애플페이가 실제로 국내에 들어오면 파급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 경험을 중심에 놓고 국내 결제업계가 어떻게 더 업그레이드 해나갈 것인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