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아파트 외벽 칠하고…빅데이터가 건설현장 위험 미리 파악

세계는 지금 DX혁명
(6) 생존 위해 DX 선택한 건설업

건설산업 생산성, 제조업의 절반
산업 혁신도는 최하위 수준
오명 벗으려 디지털 전환에 사활

고위험 작업은 로봇이
롯데건설, 지하에 드론 보내 촬영
대우건설은 웨어러블 로봇 개발
무거운 물건 드는 근로자 도와

AI 활용해 생산성 높인다
현대건설, 빅데이터로 재해 예방
포스코건설은 철근·무연탄 등
주요 건설 자재값 AI로 예측
현대엔지니어링 외벽도장로봇.
19일 찾은 청계천 인근 서울 중구 을지로3가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 공사 현장. 도심의 대표적 낙후지 세운지구를 일신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 단지는 ‘고위험 작업 무인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외벽 도장(도색) 작업을 사람이 아니라 로봇에 맡긴 것이다. 도장전문업체 제이투이앤씨와 공동 개발한 외벽도장 로봇은 건물에 설치한 와이어(줄)를 따라 수직으로 오가며 도료를 분사한다. 테스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분진 저감, 세 배 빠른 도장 작업 속도, 근로자 추락사고 방지의 장점이 도드라졌다.
그래픽=허라미 기자

디지털화 ‘낙제점’ 건설업

‘디지털 혁신 최하위’라는 오명을 들어온 건설업계가 ‘디지털 대전환(DX)’을 적극 수용하며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110년 전 철근콘크리트 공법을 도입한 이후 큰 틀의 변화가 없었던 건설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따른 자재난, 고위험 육체노동 기피 현상이 겹치면서 건설업계가 더는 변화를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건설산업 디지털 전환 로드맵’ 보고서는 “건설산업 생산성이 20년째 정체 상태로 제조업의 절반 수준인 데다 산업 혁신도 다른 직군 대비 최하위 수준으로 뒤처졌다”고 지적했다. 작업 대기, 재작업 등으로 낭비되는 시간이 전체 공정의 절반 이상(57%)인 데다 디지털화를 통한 산업 혁신도 지지부진하다는 것. 이상호 한미글로벌 사장(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은 “생산가능 인구 감소와 숙련공 부족, 높은 인건비와 복잡한 노사 문제 등을 해소하려면 현장 투입인력을 줄여야 하고 그 핵심이 디지털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위험 현장에선 사람 대신 드론

하지만 눈에 띄는 변화도 적지 않다. 건설업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디지털 전환 차원에서 ‘BIM(빌딩 정보 모델링)’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BIM은 계획, 설계, 시공, 유지관리 등 건설 전 단계에 걸쳐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개념이다. BIM을 도입하면 설계도면을 2차원(2D)이 아닌 3차원(3D)으로 구현할 수 있고, 자동화 장비 로봇이 인공지능(AI)을 통해 시공 현장에서 학습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디지털 전환은 근로자의 위험 대체 작업에서부터 가시화하고 있다. 경기 시흥시 신안산선 지하철 5-1공구 시공을 맡은 롯데건설은 굴착 후 지하공간에 드론을 내보내고 있다. 사람이 해야 하는 사진 측량에 드론을 띄워 영상을 촬영한 뒤 구조물을 3D로 구현해 확인하는 것이다. 드론이 구석구석 촬영해온 영상을 종합하면 마치 건강검진 때 주요 장기나 척추 상태를 MRI(자기공명영상) 장비로 촬영한 것과 같은 3D 입체 도면이 나온다. 롯데건설 기술연구원은 “지하를 깊게 파는 수직 구조물의 시공 품질 관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로봇작업.
현대건설은 건설 현장의 과거 위험 요인을 분석해 당일 시공 현장의 위험도를 낮음·보통·위험·매우 위험 등으로 알려준다. 이를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한다. 과거 10년간 재해에 영향을 미친 사건·사고 데이터(3900만 건)를 수집하고, 특정일 작업 공정이 ‘철근공사’라면 과거에 철근공사 때 있었던 사고사례(45건)를 불러와 유사재해 케이스를 분석한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과거 현장 사례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철저히 분석하는 방식으로 재해 예방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는(웨어러블) 로봇’도 나오고 있다. 대우건설은 로봇 개발기업 위로보틱스와 협업해 건설 현장 근로자를 위한 웨어러블 로봇 개발·보급을 추진한다. 총무게가 1.5㎏인 허리 보조 로봇과 보행 보조 로봇은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할 때 하중을 지지해준다.

자재값 아끼고 오염물질 줄이고

치솟는 자재값을 절감하고 오염원을 줄이는 데도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철근, 무연탄, 철스크랩, 레미콘 등 주요 소재의 가격 변동을 예측하는 AI 기반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후, 전쟁, 생산력 등 수출 국가의 자재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분석해 미래 가격과 수요량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예측값에 기반한 소재 시황을 위험, 불안, 정상, 안정 등급으로 분류해 경고등을 띄운다. 철근의 경우 이달 시점에서 올해 10월부터 내년 3월까지의 예측가격을 볼 수 있다.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의 오염 저감 기술도 디지털 전환의 좋은 사례다. 충남 당진시에서 운영 중인 소각장 충청환경에너지에 아마존웹서비스(AWS) 시스템을 적용했다. 200여 개 센서와 폐쇄회로TV(CCTV) 정보를 종합해 AI가 소각로를 학습하는 방식이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9개월 동안 학습을 거쳐 소각로가 950도와 1050도 내외를 유지하지 않으면 불완전연소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소각로 온도가 떨어지면 폐기물을 투입하고 너무 높으면 ‘투입 대기’를 안내해준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사람의 직관에 의존했던 소각장 운용이 AI의 도움을 받으면서 배출되는 일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이 각각 66%, 36% 감소했다”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