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연의 딜 막전막후] 진단키트社 랩지노믹스…신생 PE에 경영권 넘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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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연 증권부 기자“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진단키트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란 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이오 사업 경험이 없는 사모펀드가 진단키트 회사를 인수해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업력 2년차의 신생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루하프라이빗에쿼티(루하PE)가 지난달 체외 진단키트 회사인 랩지노믹스를 깜짝 인수한 거래에 대해 최근 바이오업계 관계자가 사석에서 한 얘기다. 2002년 설립된 랩지노믹스는 코로나 시국에 폭풍 성장한 대표적인 진단키트 회사다. 루하PE는 지난달 19일 최대주주인 진승현 랩지노믹스 대표가 보유한 지분 12.7%를 900억원에 인수하고, 제3자 배정 방식으로 94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업계 일각에선 업력 20년이 넘은 창업자가 은퇴를 위해 바이오 업종을 잘 모르는 사모펀드에 회사를 비싸게 판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거래는 주당 1만1000원 선에서 체결됐는데 당시 주가는 6000원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미래 내다본 '윈윈' 거래
속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설명은 다르다. 진 대표가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에는 어디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할지 고민할 때 가장 가까이서 조언을 건넨 사람이 이종훈 루하PE 대표라고 한다. 둘은 이미 경영자와 투자자로서 10여 년 넘게 다양한 논의를 하면서 신뢰를 쌓아온 사이다. 이번 거래는 회사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이뤄진 ‘준비된 거래’였던 셈이다.랩지노믹스가 처음부터 매각을 추진했던 것은 아니다. 진 대표는 이 대표와 함께 코로나 시국에 늘어난 현금을 토대로 신사업 방안을 다방면으로 검토했다. 신사업을 하려면 대규모 투자금이 필요했다. 투자금을 받을 경우 진 대표의 보유 지분이 낮아 경영권 매각이 불가피해 고심하던 때였다.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는 지난 4월께 진 대표에게 경영권을 넘길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진 대표는 큰 고민 없이 수락했다. 이 대표는 랩지노믹스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높았던 만큼 향후 사업에 대한 성장성과 사업성을 자신했다. 진 대표 역시 이 대표만한 적임자는 없다고 판단했다.
사모펀드, 경영능력 입증할까
이 대표는 갓 회사를 창업한 30대의 젊은 투자자지만, 바이오 업계에서는 10여 년 넘게 몸담은 전문가다. 중앙대 약대 출신인 그는 졸업 후 증권사 애널리스트, SV인베스트먼트 바이오 심사역을 거쳐 지난해 루하PE를 창업했다.진 대표가 선뜻 사모펀드에 매각 결정을 한 데는 그의 출신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진 대표는 중앙대 사진과,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드문 예체능 출신이다. 그는 친형의 영향을 받아 졸업 후 2002년 바이오 회사인 랩지노믹스를 창업했다. 비전문가인 그는 직접 병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회사를 키웠다. 현시기에 랩지노믹스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신약 개발 능력뿐 아니라 경영자의 투자 판단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거래는 순탄하게 진행됐지만 위기도 있었다. 올해 금리 인상 등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신생 운용사가 자금 조달을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우군으로 나선 것은 바로 진 대표다. 진 대표는 매각 후 경영에선 물러날 예정이지만 담보 없이 인수 자금 일부를 빌려주기로 했다.
랩지노믹스의 경우 이 대표는 경영에만 집중하고, 신약 개발 등 사업과 관련한 부분은 기존 경영진에 전적으로 맡길 예정이다. 통상 국내 바이오 기업은 교수 출신 창업자가 신약 개발과 경영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루하PE가 사모펀드의 바이오 기업 인수 성공 사례를 만들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