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쟁터' 실리콘밸리에서 유니콘이 되는 3가지 방법[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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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현지 시각 18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실리콘밸리에서 현지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미국 벤처캐피털(VC) 스트롱벤처스, 노틸러스벤처스 등과 한국벤처투자 등 국내 기관, 그리고 현지 스타트업 대표들이 함께했습니다.
센드버드는 이런 자리의 ‘단골손님’입니다.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기업 최초 유니콘으로 성장했다는 타이틀을 지닌 센드버드는 이제 업계가 선망하는 해외 진출 성공사례가 됐습니다. 미국을 포함해 글로벌 지사가 위치한 한국·싱가포르·런던을 오가며 바쁘게 지내는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를 이달 초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센드버드코리아 사무실에서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실리콘밸리 유니콘’은 현지 성공 비결을 묻는 말에 “바퀴벌레처럼 살았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지난해 6월 한국지사가 생긴 이래 처음 현장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강조 끝에 그는 3가지 ‘성공 비결’을 공개했습니다.
김 대표의 미국 생활은 그야말로 ‘배수진’이었습니다. “안 돌아갈 생각으로 한국 집을 팔았다”고 했습니다. 2015년 해외 진출을 결심한 때였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으면 마음이 약해진다”가 이유였습니다. 당시 센드버드는 막 ‘피벗(Pivot·사업 전환)'을 마친 신생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해외 사업을 먼저 시작하라”고 조언하는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김 대표는 연쇄 창업가입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재학 시절, 일인칭 슈팅(FPS) 게임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게임단 ’삼성 칸‘ 소속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제법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이후 병역특례로 NC소프트에서 일했던 김 대표는 본격적인 창업의 길로 들어섭니다. 첫 회사 ‘파프리카랩’은 소셜 게임과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펼쳤는데, 2012년 일본 모바일 게임사 그리에 매각되며 엑시트(Exit)에 성공합니다.2013년에 곧바로 두 번째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첫 회사 동료들과 만든 회사인 스마일패밀리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소셜 커뮤니티 서비스 ‘스마일맘’을 운영했습니다. 아내가 임신하게 되며 육아맘 커뮤니티 사업 가능성을 엿봤던 것입니다. 하지만 돈이 벌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마일맘을 위해 개발해 놓은 채팅 프로그램의 반응이 더 좋았습니다. 피벗을 결정한 계기였습니다.
2015년 국내에선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용 채팅 API를 제공하는 해당 서비스는 센드버드 주력 사업의 초기 모델이었습니다. 당연히 구독형을 전제하고 있었는데, 기능은 차치하고서라도 요금 방식과 서비스 형태에 대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SaaS가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저희 서버에 설치해주세요”라는 불가능한 요청부터 “돈을 왜 매달 내야 하나요?”란 반응까지, 고객사에 계약서를 보낼 때마다 난처한 상황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SaaS는 첫 창업 때부터 글로벌 서비스를 하던 김 대표에게나 익숙한 단어였고, 고객이 어색해하니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김 대표는 첫 번째 비법을 밝힙니다. 센드버드가 이후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틀고, 해외 업체로서 영문 계약서를 보내자 이런 반응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것이 김 대표 말입니다. “해외에서 투자받고 주요 현지 업체에 대한 레퍼런스를 쌓으면, 서비스가 같더라도 반응이 달라집니다. 글로벌 회사가 현지에서 서비스할 때는 형평성도 중요 문제가 되니까 한국만 따로 무언가 개발해 주기도 어려워집니다.”“이런 건 시스템통합(SI) 업체가 개발해 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업체들도 ‘해외 트렌드’ 앞에선 우호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서비스에 자신이 있다면, 해외 진출과 ‘영문 계약서’를 통해 얼마든지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셈입니다. 그는 “나는 한국에서 사업을 끝낼 생각이 없다는 분은 오히려 더 빠른 고속도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고객사 수주 소식을 물었을 때 김 대표는 ‘레딧’을 떠올렸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소셜 미디어 기업 레딧은 국내에선 ‘미국 개미(개인투자자) 놀이터’로도 유명합니다. 지난해 말 비공개로 기업공개(IPO) 신청 서류를 제출한 적이 있는데, 당시 시장이 예상한 기업가치가 150억달러(약 20조8500억원)에 달했습니다.“‘빡세게’ 일하는 게, 인간적인 수준을 넘어가면 사람들이 감동합니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같은 거요. 야근은 글로벌 공용어입니다.” 레딧은 센드버드가 아무런 현지 인연 없이 직접 접촉해 수주한 대표적 고객사입니다. 2017년 레딧 수주를 위해 김 대표와 팀원들은 첫 부사장 미팅을 마친 후 레딧 건물로 출퇴근했습니다. “나오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계속 출근하고, 직원들 회의하는데 근처에서 계속 일하고, 그 직원들 다 퇴근할 때까지 남아서 일했어요.” 나중엔 보안팀 직원이 나와서 “인제 그만 좀 나오시라”고 말렸다고 합니다.김 대표는 “열심히 일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처음엔 ‘너희가 우리(레딧)를 따라올 수 있겠냐’는 반응이었는데, 나중엔 사람들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까칠했던 엔지니어 책임자도 격려의 말을 건네고, 건물 출입을 위한 보안 수준도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레딧이 트래픽 장애를 겪을 때는 엔지니어를 파견해 약 두 달가량 숙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센드버드의 든든한 고객사 중 하나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마련한 센드버드 사무실은 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8명 정도가 2개 방을 연결해서 주저앉아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그는 이 당시 생활을 사자성어 ‘파부침주’에 비유했습니다.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입니다. 결사의 각오로 적과 싸우겠다는 결의를 나타내는 말이죠. “술 먹고 싸우고 일하고, 밤에는 또 일하면서 밥 먹고. 저희라고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사무실 카펫은 체취로 퀴퀴해졌다고 했습니다.
그 사이 많은 경쟁사가 사라져갔습니다. 센드버드의 핵심 사업모델은 기업이 자사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는 채팅 프로그램 API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당시까지 미국에는 이런 형태의 스타트업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스타트업은 무언가 하나 터지기를 기다리는데, 매번 절박한 순간에 고객사와 인연이 열리고 거기서 인정을 받는 것이 시작이다”며 “점쟁이도 3년은 판 깔고 있어야 입소문이 난다는데, 버티는 힘과 집착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의 두 번째 비결입니다.
벤처투자업계 전설이자, ‘창업 사관학교’ 와이콤비네이터(YC)의 창립자 폴 그레이엄과 연을 맺을 때도 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2016년 1%의 합격률을 뚫고 선정된 YC의 초기창업 지원 프로그램은 김 대표가 “마른하늘의 단비”로 표현할 정도로 센드버드의 기틀을 형성했습니다. 사실 김 대표는 2016년 이전에도 폴 그레이엄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마일맘을 운영할 때 YC의 지원 프로그램의 서류 전형을 통과해 폴 그레이엄의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며 “그땐 한국에 있는 남자 넷이 미국에 있는 엄마들 대상 사업을 하겠다고 하니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팀은 아닌 것 같다’며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YC는 센드버드의 아이템은 편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센드버드가 YC 프로그램을 통과됐을 때는 폴 그레이엄이 고문 일을 할 때였어요. 한번은 행사장에서 만나 왜 떨어졌냐고 물었더니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 들어봐도 아닌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김 대표는 투자를 유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놀랄만한 시장의 ‘데이터 포인트’를 보여주거나, 특정 아이템을 우리 팀이 최고로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출신 남자들은 오히려 문화적 의존성이 낮은 남자로서, 정보기술(IT) 기업 간 거래(B2B) 솔루션을 이성적이고 범용성 있게 제작할 수 있는 창업가로 인정받았습니다.YC를 등에 업은 센드버드는 날개를 달았습니다. 다양한 교육과 지원책도 좋았지만, 가장 수혜를 본 것은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얻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치 메이트’라고 불러요. 일종의 기수제 개념인데, 여름이랑 겨울로 나뉩니다. 저희 기수가 잘 된 회사들이 많습니다.” 그를 ‘반성’하게 만드는 회사도 있다며 웃었습니다. “YC에 와서 초음속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한 거예요. ‘바보들인가?’ 생각했다가, 정말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훌륭한 분들을 못 알아보고’ 하죠. 더 한 곳도 있어요. 이번엔 로켓을 쏘겠다는 겁니다. 설명을 들으면 논리적으로 이해는 되는데, ‘이게 된다고?’ 싶었죠. 해내더라고요. 결국 저도 투자사랑 같은 마음이었던 거예요.” 김 대표를 놀라게 한 스타트업 ‘붐 슈퍼소닉’과 ‘랠러티비티 스페이스’는 미국 스타트업 업계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들이 됐습니다. 이제는 ‘동기’가 된 이 업체들은 김 대표에게 큰 배움이 됐습니다.
김 대표는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그것도 ‘거짓 없는’ 네트워킹을 할 것을 권장했습니다. 그의 세 번째 비결입니다. “스타트업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불안합니다. 아무 행사나 나가면서, 자꾸 바빠지려고 해요. 기본은 영업을 잘하고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이고, 그러고 나서 좋은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것은 분명 힘이 됩니다.” 그는 “어차피 사업하는 사람들은 주변 친구들 공감을 얻기 쉽지 않다”며 “꼭 글로벌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마음고생을 털어놓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창업가들과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면 좋다”고 했습니다. “‘뻥카’ 안쳐도 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용기를 얻어간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참 한 가지 더
한국의 ‘실리콘밸리 유니콘’, 누가 언제 탄생했나센드버드가 유니콘 반열에 오른 것은 지난해 4월입니다. 시리즈C 투자 유치를 마무리하며 기업가치 10억5000만달러(약 1조4600억원)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당시 투자에는 스테드패스트캐피털벤처스, 이머전스캐피털·소프트뱅크 등이 참여했습니다. 2016년 YC의 투자 이후, 2019년 미국계 대형 헤지펀드 타이거글로벌 등으로부터 1억달러(약 1400억원) 규모 투자를 끌어내며 이미 유니콘으로의 도약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몰로코는 지난해 8월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누적 투자 금액은 2억달러(약 2800억원)에 달합니다. 인정받은 기업 가치는 15억달러(2조원)로, 센드버드와 나란히 '실리콘밸리 유니콘'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몰로코는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기반 광고 솔루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안익진 몰로코 대표는 구글 엔지니어 출신입니다.베어로보틱스와 팬텀AI는 미래 유니콘 기업으로 각광받는 곳들입니다. 베어로보틱스는 지난 3월 10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국내외 운용사들로부터 유치한 바 있습니다. 서빙 로봇 '서비' 등을 만드는 곳입니다. 자율주행 솔루션 업체인 팬텀AI는 지난달 르네상스자산운용으로부터 150억원의 추가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뇌 질환 진단 소프트웨어(SW) '뉴로매치'를 개발한 스타트업 엘비스는 SK네트웍스로부터 투자를 받았습니다. 한국 여성 최초 스탠퍼드대 교수로 임용된 이진형 대표가 이끄는 곳입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센드버드는 이런 자리의 ‘단골손님’입니다.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기업 최초 유니콘으로 성장했다는 타이틀을 지닌 센드버드는 이제 업계가 선망하는 해외 진출 성공사례가 됐습니다. 미국을 포함해 글로벌 지사가 위치한 한국·싱가포르·런던을 오가며 바쁘게 지내는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를 이달 초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센드버드코리아 사무실에서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실리콘밸리 유니콘’은 현지 성공 비결을 묻는 말에 “바퀴벌레처럼 살았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지난해 6월 한국지사가 생긴 이래 처음 현장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강조 끝에 그는 3가지 ‘성공 비결’을 공개했습니다.
영문 계약서의 힘…"해외부터 나가라"
“절박하잖아요. 정말 구석진 방에서 냄새나는 카펫이랑 일했어요. 시간 됐으니까 퇴근하는 게 아니라 자정까지 일하고, 술이랑 치킨 사 와서 사람들이랑 또 일했어요.”김 대표의 미국 생활은 그야말로 ‘배수진’이었습니다. “안 돌아갈 생각으로 한국 집을 팔았다”고 했습니다. 2015년 해외 진출을 결심한 때였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으면 마음이 약해진다”가 이유였습니다. 당시 센드버드는 막 ‘피벗(Pivot·사업 전환)'을 마친 신생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해외 사업을 먼저 시작하라”고 조언하는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김 대표는 연쇄 창업가입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재학 시절, 일인칭 슈팅(FPS) 게임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게임단 ’삼성 칸‘ 소속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제법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이후 병역특례로 NC소프트에서 일했던 김 대표는 본격적인 창업의 길로 들어섭니다. 첫 회사 ‘파프리카랩’은 소셜 게임과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펼쳤는데, 2012년 일본 모바일 게임사 그리에 매각되며 엑시트(Exit)에 성공합니다.2013년에 곧바로 두 번째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첫 회사 동료들과 만든 회사인 스마일패밀리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소셜 커뮤니티 서비스 ‘스마일맘’을 운영했습니다. 아내가 임신하게 되며 육아맘 커뮤니티 사업 가능성을 엿봤던 것입니다. 하지만 돈이 벌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마일맘을 위해 개발해 놓은 채팅 프로그램의 반응이 더 좋았습니다. 피벗을 결정한 계기였습니다.
2015년 국내에선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용 채팅 API를 제공하는 해당 서비스는 센드버드 주력 사업의 초기 모델이었습니다. 당연히 구독형을 전제하고 있었는데, 기능은 차치하고서라도 요금 방식과 서비스 형태에 대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SaaS가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저희 서버에 설치해주세요”라는 불가능한 요청부터 “돈을 왜 매달 내야 하나요?”란 반응까지, 고객사에 계약서를 보낼 때마다 난처한 상황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SaaS는 첫 창업 때부터 글로벌 서비스를 하던 김 대표에게나 익숙한 단어였고, 고객이 어색해하니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김 대표는 첫 번째 비법을 밝힙니다. 센드버드가 이후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틀고, 해외 업체로서 영문 계약서를 보내자 이런 반응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것이 김 대표 말입니다. “해외에서 투자받고 주요 현지 업체에 대한 레퍼런스를 쌓으면, 서비스가 같더라도 반응이 달라집니다. 글로벌 회사가 현지에서 서비스할 때는 형평성도 중요 문제가 되니까 한국만 따로 무언가 개발해 주기도 어려워집니다.”“이런 건 시스템통합(SI) 업체가 개발해 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업체들도 ‘해외 트렌드’ 앞에선 우호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서비스에 자신이 있다면, 해외 진출과 ‘영문 계약서’를 통해 얼마든지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셈입니다. 그는 “나는 한국에서 사업을 끝낼 생각이 없다는 분은 오히려 더 빠른 고속도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사의 각오를 다지는 '파부침주' 정신
서비스에 대한 꾸준한 노력은 이미 성공한 창업가들이 많이 설파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질릴 정도의 끈질김”은 일반적인 노력과 다소간 차이가 있습니다.인상 깊었던 고객사 수주 소식을 물었을 때 김 대표는 ‘레딧’을 떠올렸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소셜 미디어 기업 레딧은 국내에선 ‘미국 개미(개인투자자) 놀이터’로도 유명합니다. 지난해 말 비공개로 기업공개(IPO) 신청 서류를 제출한 적이 있는데, 당시 시장이 예상한 기업가치가 150억달러(약 20조8500억원)에 달했습니다.“‘빡세게’ 일하는 게, 인간적인 수준을 넘어가면 사람들이 감동합니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같은 거요. 야근은 글로벌 공용어입니다.” 레딧은 센드버드가 아무런 현지 인연 없이 직접 접촉해 수주한 대표적 고객사입니다. 2017년 레딧 수주를 위해 김 대표와 팀원들은 첫 부사장 미팅을 마친 후 레딧 건물로 출퇴근했습니다. “나오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계속 출근하고, 직원들 회의하는데 근처에서 계속 일하고, 그 직원들 다 퇴근할 때까지 남아서 일했어요.” 나중엔 보안팀 직원이 나와서 “인제 그만 좀 나오시라”고 말렸다고 합니다.김 대표는 “열심히 일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처음엔 ‘너희가 우리(레딧)를 따라올 수 있겠냐’는 반응이었는데, 나중엔 사람들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까칠했던 엔지니어 책임자도 격려의 말을 건네고, 건물 출입을 위한 보안 수준도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레딧이 트래픽 장애를 겪을 때는 엔지니어를 파견해 약 두 달가량 숙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센드버드의 든든한 고객사 중 하나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마련한 센드버드 사무실은 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8명 정도가 2개 방을 연결해서 주저앉아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그는 이 당시 생활을 사자성어 ‘파부침주’에 비유했습니다.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입니다. 결사의 각오로 적과 싸우겠다는 결의를 나타내는 말이죠. “술 먹고 싸우고 일하고, 밤에는 또 일하면서 밥 먹고. 저희라고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사무실 카펫은 체취로 퀴퀴해졌다고 했습니다.
그 사이 많은 경쟁사가 사라져갔습니다. 센드버드의 핵심 사업모델은 기업이 자사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는 채팅 프로그램 API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당시까지 미국에는 이런 형태의 스타트업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스타트업은 무언가 하나 터지기를 기다리는데, 매번 절박한 순간에 고객사와 인연이 열리고 거기서 인정을 받는 것이 시작이다”며 “점쟁이도 3년은 판 깔고 있어야 입소문이 난다는데, 버티는 힘과 집착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의 두 번째 비결입니다.
'사이코'와 창업가, 종이 한 장 차이…"믿을 동료 만들라"
실리콘밸리에 있으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투자사의 태도였습니다. 김 대표가 국내 투자사를 상대로 느꼈던 가장 큰 어려움은 “투자사의 고정된 생각을 바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은 실리콘밸리의 액셀러레이터(AC)나 벤처캐피털(VC)도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일종의 투자사 속성인 셈입니다. 다만 그는 “미국에는 개개인이 독특한 사람이 많고, 투자사도 이 사람이 ‘사이코’인지 잠재력 있는 창업가인지 섣불리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사업이나 창업자가 ‘대박’이 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 ‘내가 바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둔다”는 것입니다.벤처투자업계 전설이자, ‘창업 사관학교’ 와이콤비네이터(YC)의 창립자 폴 그레이엄과 연을 맺을 때도 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2016년 1%의 합격률을 뚫고 선정된 YC의 초기창업 지원 프로그램은 김 대표가 “마른하늘의 단비”로 표현할 정도로 센드버드의 기틀을 형성했습니다. 사실 김 대표는 2016년 이전에도 폴 그레이엄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마일맘을 운영할 때 YC의 지원 프로그램의 서류 전형을 통과해 폴 그레이엄의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며 “그땐 한국에 있는 남자 넷이 미국에 있는 엄마들 대상 사업을 하겠다고 하니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팀은 아닌 것 같다’며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YC는 센드버드의 아이템은 편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센드버드가 YC 프로그램을 통과됐을 때는 폴 그레이엄이 고문 일을 할 때였어요. 한번은 행사장에서 만나 왜 떨어졌냐고 물었더니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 들어봐도 아닌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김 대표는 투자를 유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놀랄만한 시장의 ‘데이터 포인트’를 보여주거나, 특정 아이템을 우리 팀이 최고로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출신 남자들은 오히려 문화적 의존성이 낮은 남자로서, 정보기술(IT) 기업 간 거래(B2B) 솔루션을 이성적이고 범용성 있게 제작할 수 있는 창업가로 인정받았습니다.YC를 등에 업은 센드버드는 날개를 달았습니다. 다양한 교육과 지원책도 좋았지만, 가장 수혜를 본 것은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얻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치 메이트’라고 불러요. 일종의 기수제 개념인데, 여름이랑 겨울로 나뉩니다. 저희 기수가 잘 된 회사들이 많습니다.” 그를 ‘반성’하게 만드는 회사도 있다며 웃었습니다. “YC에 와서 초음속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한 거예요. ‘바보들인가?’ 생각했다가, 정말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훌륭한 분들을 못 알아보고’ 하죠. 더 한 곳도 있어요. 이번엔 로켓을 쏘겠다는 겁니다. 설명을 들으면 논리적으로 이해는 되는데, ‘이게 된다고?’ 싶었죠. 해내더라고요. 결국 저도 투자사랑 같은 마음이었던 거예요.” 김 대표를 놀라게 한 스타트업 ‘붐 슈퍼소닉’과 ‘랠러티비티 스페이스’는 미국 스타트업 업계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들이 됐습니다. 이제는 ‘동기’가 된 이 업체들은 김 대표에게 큰 배움이 됐습니다.
김 대표는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그것도 ‘거짓 없는’ 네트워킹을 할 것을 권장했습니다. 그의 세 번째 비결입니다. “스타트업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불안합니다. 아무 행사나 나가면서, 자꾸 바빠지려고 해요. 기본은 영업을 잘하고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이고, 그러고 나서 좋은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것은 분명 힘이 됩니다.” 그는 “어차피 사업하는 사람들은 주변 친구들 공감을 얻기 쉽지 않다”며 “꼭 글로벌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마음고생을 털어놓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창업가들과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면 좋다”고 했습니다. “‘뻥카’ 안쳐도 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용기를 얻어간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참 한 가지 더
한국의 ‘실리콘밸리 유니콘’, 누가 언제 탄생했나센드버드가 유니콘 반열에 오른 것은 지난해 4월입니다. 시리즈C 투자 유치를 마무리하며 기업가치 10억5000만달러(약 1조4600억원)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당시 투자에는 스테드패스트캐피털벤처스, 이머전스캐피털·소프트뱅크 등이 참여했습니다. 2016년 YC의 투자 이후, 2019년 미국계 대형 헤지펀드 타이거글로벌 등으로부터 1억달러(약 1400억원) 규모 투자를 끌어내며 이미 유니콘으로의 도약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몰로코는 지난해 8월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누적 투자 금액은 2억달러(약 2800억원)에 달합니다. 인정받은 기업 가치는 15억달러(2조원)로, 센드버드와 나란히 '실리콘밸리 유니콘'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몰로코는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기반 광고 솔루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안익진 몰로코 대표는 구글 엔지니어 출신입니다.베어로보틱스와 팬텀AI는 미래 유니콘 기업으로 각광받는 곳들입니다. 베어로보틱스는 지난 3월 10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국내외 운용사들로부터 유치한 바 있습니다. 서빙 로봇 '서비' 등을 만드는 곳입니다. 자율주행 솔루션 업체인 팬텀AI는 지난달 르네상스자산운용으로부터 150억원의 추가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뇌 질환 진단 소프트웨어(SW) '뉴로매치'를 개발한 스타트업 엘비스는 SK네트웍스로부터 투자를 받았습니다. 한국 여성 최초 스탠퍼드대 교수로 임용된 이진형 대표가 이끄는 곳입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